이 그림 1000원어치만 살게요

최동현 2021. 11. 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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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Z세대의 미술 투자법 '조각투자'
이우환 '선으로부터' 소유권 79만개 분할
1576명 구입..작품 무료 관람·판매 가능
2018년 도입 이후 플랫폼 투자 업체 급증
유명 작가 작품 48일만에 수익률 600%도
"유사금융투자업 아닌 새로운 대체투자법"
김형준 테사 대표 "거래내역 등 잘 살펴야"
테사가 19일 공모해 완판한 이우환의 '선으로부터'(1979).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최근 미술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미술품 조각투자'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액으로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 유명 작가의 고가 미술품을 소유하고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어 '아트테크(예술+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갤러리나 경매시장보다 투자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조각투자를 유치하는 플랫폼 업체들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커피값으로 거장 작품 소유하고 감상도

미술투자 플랫폼 테사(TESSA)는 지난 19일 국내 작가 작품의 조각투자를 진행했다. 작품은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의 대표작인 ‘선으로부터’(1979)로 공모가는 7억9000만원이었다. 이 작품의 지분을 1000분의 1로 쪼개 79만개의 소유권으로 분할한 뒤 공모가 진행됐다. 최소 투자금액은 단 돈 1000원. 작품은 공모를 시작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완판됐다. 테사가 자체 보유한 1만5800개의 지분을 제외한 77만4200개가 1576명의 투자자에게 모두 팔렸다.

커피값 3000원으로 ‘선으로부터’를 단 세 조각을 구입한 투자자 A씨는 뭘 할 수 있을까. 우선 작품을 실제 눈으로 보고싶으면 서울 성동구 상수동에 있는 테사 상설 갤러리 ‘언타이틀드’로 가면 된다. 소유권 1개만 있어도 관람은 무료다. 소유권을 주식처럼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다. 테사가 지난 2월 공모해 완판한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The Cure’(2014) 시리즈는 공모가가 소유권 1개당 1000원이었으나 현재는 이보다 20% 오른 1200원에 시장가가 형성돼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The Cure’(2014) 시리즈.

달아오르는 조각투자… 경쟁업체도 우후죽순

미술품 조각투자는 2018년 10월 아트앤가이드가 김환기의 ‘산월’(1963)을 선보이면서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다. 이후 테사, 아트투게더, 피카프로젝트, 데일리뮤지엄 등 다양한 플랫폼 업체들이 등장했다. 서울옥션도 올해 자회사 서울옥션블루를 통해 조각투자 플랫폼인 소투(SOTWO)를 론칭했다.

김환기의 '산월'

아트앤가이드는 조각투자 서비스를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약 3년간 212억원(109회) 규모의 조각투자를 진행했다. 아트앤가이드에서는 작품 가격에 따라 1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조각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 플랫폼은 실물 작품을 소유·관리하면서 가격이 일정 수준까지 오르면 매각한 뒤 지분 소유자에게 수익을 배분한다. 아트앤가이드는 현재까지 공모한 작품 64개를 매각해 약 70억원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했다. 평균 보관일은 303일, 평균 수익률은 35.4%다.

인기가 높은 작가의 작품일수록 플랫폼의 작품 청산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환금성이 좋다. 아트앤가이드는 지난 7월28일 최근 MZ세대에게 주목받고 있는 문형태의 ‘다이아몬드’(2017) 작품을 300만원에 공모한 뒤 9월14일 2100만원에 매각했다. 단 48일 만에 거둔 수익률은 600%, 이를 연환산 수익률로 바꾸면 무려 4563%에 달한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묘법’(2018)도 지난 4월 3억5000만원에 공동구매를 개시해 5억원에 매각, 56일 만에 42.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기 작가 작품의 공모는 개시한 지 단 몇 분 만에 마감된다"면서 "MZ세대에서 입소문을 타거나 임종을 앞둔 작가의 경우 희소성 때문에 목표수익률을 달성해 청산하기까지의 과정이 빠르다"고 전했다.

"유사 금융투자업 아닌 새로운 유형의 대체투자"

조각투자가 흥행하자 최근 금융권 일각에서는 플랫폼 업체들의 사업 방식에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공모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 자본시장법상 사전 인가가 필요한 집합투자업의 투자계약증권과 유사하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잘못된 해석이라고 맞받았다.

김형준 테사 대표.

지난해 4월 테사를 창업해 1년7개월 동안 조각투자 서비스를 운영해오고 있는 김형준 대표는 "투자계약증권은 다수에게 자금을 모아 자산을 구입하지만 조각투자는 회사가 미리 구입한 미술품을 다수에게 되파는 구조"라며 "투자자들의 예치금도 별도로 계정이 분리돼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물이 분실되거나 훼손될 경우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공모 당시의 작품 구매 가격과 10% 수익을 보장한다"면서 "작품에 대한 별도 보험도 가입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최근 MZ세대의 조각투자 진입 속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으로 봤다. 다만 투자자들이 작품의 투자 안정성을 꼼꼼히 따져본 뒤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작가나 작품이 얼마나 공인돼 있고 경매 등 시장에서 몇 번이나 거래됐는지 등을 잘 살펴야 한다"면서 "초보 투자자라면 적어도 1년에 100회 이상 경매 이력이 발생하고 있는 블루칩 작가 위주로 선택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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