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바가지 머리

2021. 11.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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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머리 좀 먹음직스럽게 깎아주세요 재봉을 잘못한 인형이거든요 표정이 굳은 식빵이라서 아무한테도 안 팔리거든요 집집마다 걸쳐놓은 애인들은 우주로 이사갔나봐 필요할 때 주파수가 안 잡히거든요 밀린 공과금에 목구멍이 꽉 막힌 하수도에 눈앞이 빙글빙글 돌거든요 배고파서 만두 소세지 유부남을 한꺼번에 우물거리며 시식 코너를 한 바퀴 빙 돌고 나면 배짱이 두둑해져요 콩팥에 붙은 혹덩이처럼 덜렁덜렁 달고 다니기 불편한 남자들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요 두부처럼 하얗고 깍듯한 애인 건져먹을 건덕지도 없어서 맹탕인 애인 누가 싫증나서 내다버린 의자 위에 올라타 찌그덕삐그덕 밤새도록 놀다가 추락했는데 또 밑바닥이네? 바닥을 벗어나면 더 캄캄한 밑바닥이 기다리는데요 발냄새가 나서 걷어찼더니 입냄새 나는 두꺼비가 종일 들러붙는데요 빨랫줄에서 떨어진 불알을 달고 허겁지겁 쫓아오는 남자들 살려고 열심히 쫓아가다보면 개처럼 쫓겨날 일도 생겨날 텐데 빠끔뻐끔 이산화탄소나 내뿜으면서 공기를 탁하게 만들고 있어요 콘크리트처럼 겹겹이 쌓아올린 하늘을 구경하다 돋보기로 지붕들을 태워먹어요 쭈글쭈글 헐렁한 입술보다 츄파춥스가 훨씬 달콤할 텐데 머리가 뻗친 잡초들은 여기저기 짓밟혀도 잘만 클 텐데 찢긴 낙하산을 타고 싹둑싹둑 날아다니다

씨익 웃고,
버르장머리 없이 살아야지

-박세랑 시집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중

한 젊은 여성의 긴 주절거림이 마지막 연에 닿으면서 불꽃이 튄다. ‘씨익 웃고,/ 버르장머리 없이 살아야지.’ 발랄하고 또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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