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커피한약방&혜민당 - 혜민서 옛터 좁은 골목길 커피 한사발 맛볼줄이야

김소영 2021. 11. 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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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커피한약방&혜민당
조선시대 의약·치료 관청 '혜민서' 터
SNS 성지 커피숍·빵집으로 변신
약재서랍장엔 커피 원두가 한가득
'커피한약방' 고지식한 느낌이라면
'혜민당' 개화기 신여성 느낌 줘
실제 한약방으로 오해하기도
커피한약방으로 접어드는 골목./사진=김소영 기자 sozero815@asiae.co.kr

[아시아경제 김소영 기자] '공간의 변신은 무죄'. 역사가 깃든 과거의 공간을 개조해 새로운 장소로 활용하는 '공간의 재해석'이 우후죽순 이어지고 있다. 기존 외관이나 골조 등은 그대로 놔두면서도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시공간적 요소를 접목시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사례가 적지 않다. 리뉴얼 대상 건물은 다양하다. 쓰임이 다한 주유소나 목욕탕, 객차, 은행, 폐교 등이다.

이번에 찾아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들의 인기 변신공간은 옛 병원이다. 조선시대 의약과 일반 서민의 치료를 맡아본 관청인 혜민서(惠民署)가 주인공. 1466년 설립됐으니 무려 556년이 지난 지금, 혜민서는 어떤 모습일까. 조선시대 어의이자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의 인생이 담긴 이곳에는 커피숍과 빵집들이 들어서 있다. 고전적 이름인 '커피한약방'과 '혜민당'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와 3분 정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지도 없인 선뜻 들어갈 생각을 하기 어려워 보이는 좁디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먼저 문을 연 커피한약방을 8년, 마주한 혜민당을 4년째 운영 중인 강윤석 대표는 옛것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해외를 가봐도 너무 도시화한 모습보다는 그 나라의 옛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유럽의 올드타운 같은 그런 장소들이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옛 공간에 대한 강 대표의 안타까움이 투영된 것이 가게를 연 출발지점이었다. 그는 "보존할 건 보존하고 그래야 하는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낭만적인 공간들을 해치는 게 안타까웠다"며 "피맛골 같은 좁은 골목에 아기자기한 집들과 식당 등이 모여 어우러져 있던 것을 간직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골목길은 으슥하다는 일종의 통념을 깨듯 좁은 길목에는 적막함 대신 따뜻함이 가득 차 사람들로 북적인다. "낮에 볕이 들 때 가게에 있으면 참 좋아요. 햇살이 고맙기도 하고 작은 거지만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면 행복한 거 아닐까요."

커피한약방 1층 모습. 옛 혜민서 터를 설명하는 간판이 붙어 있다./사진=김소영 기자 sozero815@asiae.co.kr

커피숍이지만 이름 탓에 한약방의 하나쯤으로 오해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옛 혜민서 터라는 역사적 관점을 살려 한약방 콘셉트로 재현한 데다 이름에 한약방이 들어가 있다 보니 생겨나는 일들이다. 입구 한 쪽에 '한약 제조는 할 줄 모른다'는 안내 문구를 붙여둔 이유다. 강 대표는 "실제로 한약 지으러 오셨다는 분들이 있었다. 오시면 쌍화차 같은 거 주문하셔서 쌍화차를 시작하기도 했다"고 웃어 보였다.

한약과 비슷한 빛깔을 띠어 커피 잔에 한약을 마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는 이곳의 커피는 각별한 과정을 거쳐 나온다. 강 대표는 "오시는 분들에게 건강에 이로운 카페인을 만들어 제공해보자는 생각으로 로스팅 방법부터 색다르고, 전체 과정에 시간을 많이 들이게 했다"고 설명한다. 좋은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가게 1층 한 쪽에는 원두 직화 로스팅을 작업하는 공간을 마련해 뒀다. 아메리카노라는 메뉴의 빈자리를 '필터커피'가 채우고 있는 이유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분위기를 멋스럽게 살려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강 대표는 연극,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고, 지금도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기도 한다. 바빠도 1년에 한 작품 정도는 꾸준히 하려고 하고 있다는 그는 "사실 어떻게 보면 무대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하고자 시작한 (카페)일이었다. 일이 바빠졌다고 손을 놓을 수 없고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무대에서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쩐지 센스 있는 노래 선곡은 그의 이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혜민당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좋은 음악을 추천하고 있다.

공간을 완벽히 재구성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으로 덧입히는 과정이었다. 강 대표는 창고가 있던 자리를 리모델링해 지금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배관, 정화조, 수도, 하수, 전기 등 어려운 지점이 많았고, 반복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도 했다.

실제 한약방의 약재서랍장으로 사용됐던 물건. 현재는 약재 대신 커피원두가 채워져 있다./사진=김소영 기자 sozero815@asiae.co.kr

가게에 들어서면 커피한약방과 혜민당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보통의 카페나 빵집과 다르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커피한약방은 고지식하고 견고한 느낌의 공간이라면 혜민당은 개화기 신여성의 느낌을 갖추고 있다. 강 대표는 "혜민당은 당시 전통의상인 한복도 입지만 재킷 같은 의상이 들어오는 등 의식주가 변화한 교차 지점에서 좀 불편한 서구의 문화가 들어와 기존의 전통성과 상충하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며 이들의 에너지값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가게 안은 마치 옛 물건을 두루 보관해둔 박물관인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중국 송나라 때의 나무입니다. 훼손 없이 사용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붙은 테이블과 '옛 을지로의 기억 속에 있는 금형기'를 그대로 가게 한 쪽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다. 바다를 건너온 자개장,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수술에 쓰였던 조명 등 어렵게 구해온 물건부터 기증 받은 물건들까지 곳곳에 강 대표와 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물품이 적지 않다.

강 대표는 "예술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들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수집을 시작했다. 특히 자개장 같은 경우는 장인이 공들여 한땀 한땀 만든다. 예전에 사용했던 사람의 시간과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오래된 물건들이기에 더욱 뜻이 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또한 모두가 같이 공유해야 하는 유품이라는 인식도 하게 된다고 했다.

강 대표는 '오감(五感)'이 즐거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귀에 들리는 음악도, 입으로 맛보는 것도. 옛날 허준 선생이 백성에게 의료혜택을 베풀었듯 카페지기로서 이곳에서 건강한 식음 서비스를 하는 정체성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소영 기자 sozero8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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