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영끌 할 걸" ..초강력 대출규제에 무주택자 탄식 쏟아져
정부가 초강력 대출규제를 시행했다. 명목상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지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 등을 통한 수요 부분을 차단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의도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수요 억제 정책을 고수해 왔다. 특히 다주택, 갭투자 등 투기 수요가 집값을 끌어올린다고 판단해 대출을 막고 세금 부담을 늘리는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동향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1639만원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값 평균(6억708만원)의 정확히 두 배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꺼내 든 마지막 카드 역시 수요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출규제는 현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부동산 시장 안정책"이라고 설명했다.
2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주택시장은 8월 말 이후 주택공급조치 가시화, 금리 인상, 가계대출 관리 강화 등 일련의 조치로 인한 영향이 이어지면서 그간 (지속한) 상승 추세가 주춤하고 시장 심리 변화 조짐이 점차 뚜렷해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부동산시장 안정의 중대한 기로"라고도 했다.
당장 정부가 지난 8월 말부터 금융기관의 대출 총량을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거래절벽'이 이어지고 가격 상승세가 둔화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 8월 23일 조사에서 0.22%로 정점을 찍은 뒤 7주째 상승 폭이 둔화하거나 정체했다.
매수심리 역시 관망세로 전환했다. 부동산원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1.6으로 지난 4월 19일(101.1) 이후 약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매매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수요보다 많고,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는 대출규제의 효과가 길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다주택자의 주택 추가 구입 수요가 감소하고, 당분간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대기 수요가 꾸준한 신축이나 교통망 예정지, 공급 희소성이 지속할 수 있는 지역 위주로 매입 수요가 제한되며 지역별 양극화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강남 3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최고가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상한선인 15억원을 넘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여전한 것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9월 1일부터 10월 24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가운데 실거래가 15억원 초과는 630건으로 전체의 19.7%를 차지했다. 지난 1년간(2020년 9월~2021년 8월) 15억원 이상 거래 비중은 15.0%였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초구는 0.21→0.23%, 강남구는 0.23→0.24%, 송파구는 0.22→0.25%로 올랐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2018년 말 다주택자를 타깃으로 한 대출규제가 나왔을 때 6개월가량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적이 있었지만 결국 다시 상승했다"며 "실수요자의 관망세가 당분간 지속할 수는 있지만 최근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는 것만 봐도 이후 공급 확대 없이는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측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수도권 아파트 입주는 2023년까지 감소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16만4032가구로 지난해 18만9980가구 대비 13.6%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2년(16만100가구)과 2023년(15만 가구) 등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출규제의 충격은 서민층에게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도 15억원 넘는 집은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규제가 대출을 끼고 저렴한 집을 장만하려던 서민·중산층만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대출규제는 현금 부자보다는 저소득층에 치명적인 타격을 줘 주거 양극화가 가중될 수 있다"며 "무주택자 입장에선 지난해 말 영끌 매수가 차라리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집값을 정부가 올려놓고 인제 와서 대출을 막아버렸다","무주택자는 평생 무주택자로 살라는 거냐" 등의 한탄이 쏟아졌다. 대출규제는 전세 시장에도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출규제 등으로 매매 수요 일부가 임대차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전세 시장 불안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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