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굼벵이 재배? 태양광 보조금 노린 가짜 농부 첫 적발

김남준 2021. 8. 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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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정부 소형 태양광 고정가격계약(한국형 FIT)에 참여했다. 출렁이는 시장 가격과 상관없이 20년 동안 같은 값으로 전력을 판매할 수 있어서다. 농·축산·어민이나 협동조합임을 인증받으면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s) 매입 가격을 정부가 1.5배 더 쳐준다. 그만큼 수익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를 노리고 A씨는 굼벵이를 기르는 농민이라는 증명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가 나중에 검증해 보니 A씨는 서류와 달리 굼벵이를 키우지 않는 ‘가짜 농부’였다.


태양광 ‘가짜 농부’ 첫 적발


지난 5월 경북 군위의 태양광 발전소 모습. 사진과 기사 내용은 직접적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25일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최근 ‘한국형 FIT’ 보조금을 노리고 가짜 농부 행세를 한 60명을 적발했다. A씨처럼 그동안 보조금을 노리고 허위로 농·축산·어민 증빙서를 제출하는 가짜 농부가 많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었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형 FIT는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고정 가격 계약제도다. 한국형 FIT가 되면 당시 매입가를 고정으로 해 20년간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6개사에 장기 전력 판매가 가능하다. 여기에 농·축산·어민과 협동조합임을 인증받으면 REC 판매가격에서 1.5배 가중치를 부여받는다. 사실상 보조금인 셈이다. 공급 과잉으로 태양광 매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정부 지원으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산업부는 적발한 가짜 농부에게 줬던 보조금은 물론 앞으로 지급할 혜택도 박탈할 예정이다.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농·축산·어민의 태양광 발전소 1개당 20년 동안 지급할 보조금 규모는 약 5000만원이다. 이번에 적발한 60명으로 보면 총 30억원의 예산이 잘못 지급될 수 있었다.


“빙산 일각일 수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태양광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태양광 공급 확대를 위해 지원에만 집중한 나머지 사후 관리에 소홀해서다. 이번 가짜 농부 적발도 관련 제도 생긴 2018년 이후 3년 만에 처음 검증한 결과다.

특히 엄청나게 불어난 한국형 FIT 계약자 수를 고려하면 산업부와 에너지공단 인력만으로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8년 1520곳이었던 FIT 참여업자는 2020년 1만9583곳으로 12배 이상 늘었다. 가짜 농부뿐 아니라 역시 보조금 지급 대상인 협동조합까지 살펴보면 부정 수급 사례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지원금 결국 전기요금 전가”


보조금에 의존한 태양광 산업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태양광 확대 정책에 따라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는 이미 포화 상태다. 공급 과잉 영향에 민간 태양광의 주요 매출원 중 하나인 REC 가격도 연일 급락 중이다. 실제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선 2017년 12만9967원이던 REC 가격은 지난해는 4만3025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REC 가격은 주식처럼 철저히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사업자가 많아질수록 값이 내려간다.
한국형 FIT 제도. 산업통상자원부
떨어지는 태양광 사업성을 막기 위해 정부가 꺼낸 대책은 장기 계약을 늘리는 것이다. 고정 가격으로 장기간 태양광 전력 판매를 보장해 줌으로써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막는 것이다. 실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가 있는 발전 6개사는 최근 장기 고정 입찰계약을 늘리는 추세다. 한국형 FIT 제도도 비슷한 맥락으로 생겨났다.

문제는 민간 태양광의 안정된 수익을 위해 마련한 이 장기고정계약제도가 결국 정부와 발전사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태양광 현물시장(1829㎿)은 한국형 FIT(1181㎿)보다 규모는 더 컸다. 하지만 실제 정산 가격은 현물시장(1156억)보다 FIT(2219억)가 약 2배 가까이 많았다. 그만큼 장기고정계약으로 태양광을 시장보다 비싸게 사줬다는 얘기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보조금을 주든 공기업이 의무적으로 사주든 결국 시장 가격 이상이 들어간 비용은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종국에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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