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로컬'이 뜬다..당근마켓 몸값 3조 '동네 생활권'이 金

박수호 2021. 8. 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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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근?”

“네, 여기요~.”

중고 물품을 지역민들끼리 ‘당근마켓’을 통해 교환하는 모습이다. 지역 밀착형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이처럼 일상 풍경을 바꿔놨다. 단순 물품 거래뿐 아니라 동호회, 지역 정보 공유 등 점차 동네 사랑방, 커뮤니티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가입자 수 2000만명, 주간 이용자 수 1000만명 돌파 등 성장세도 뚜렷하다. 최근 당근마켓은 1789억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하며 몸값(기업가치)만 3조원을 넘겼다. 경영학계는 당근마켓 성장 스토리에서 ‘하이퍼로컬(지역 밀착·동네 생활권)’이라는 개념이 기업 경영 성공 공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이퍼로컬이 뭐길래

▷동네 생활권 바탕으로 한 사업

슬세권.

슬리퍼를 신고 이동할 정도의 거리에 형성된 상권을 뜻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장거리 여행, 출장이 제한되면서 일반 소비자가 새삼 주목한 것이 동네 상권·생태계다. ‘하이퍼로컬’ 비즈니스란 이런 동네 생활권을 바탕으로 하는 직간접 서비스, 맞춤형 제품 거래 등 지역 밀착형 사업을 뜻한다.

미국에서 2011년 첫선을 보인 넥스트도어가 대표적인 서비스다. 넥스트도어는 동네 체육대회, 반려동물 실종 등 지역 소식, 생활 정보 공유는 물론 중고 거래까지 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하이퍼로컬’ 업체다. 미국 가정의 3분의 1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올해 상장을 앞두고 있는데 기업가치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43억달러(약 5조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등 11개국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당근마켓 사례에서 보듯 한국도 하이퍼로컬 산업에 눈뜨기 시작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중고나라 등 이미 중고 시장은 형성돼 있었다. 또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맘카페’가 지역 기반 커뮤니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근마켓은 여기서 더 진화한 모습을 보인다. 보다 한정된 공간에 거주하는 이른바 ‘조금만 알아보면 바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중고 상품 외에 다양한 재능, 교육거리부터 살림 노하우까지 ‘안심할 수 있는 거래’를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좀 더 진화한 형태의 ‘하이퍼로컬’ 서비스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하이퍼로컬’ 사업 토대가 잘 형성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IT 기술 발달로 사람들 동선에 따라 새로운 맛집이나 서비스를 제안하는 LBS(위치 기반 서비스) 기술이 보편화됐다는 사실이 강점이다.

“한국은 도시 인구 밀도가 높고, 각 동네마다 오프라인 식당과 상점 등 비즈니스가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 스마트폰을 통해 고객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라스트마일(last mile·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마지막 단계) 물류망이 촘촘히 구축돼 있어 하이퍼로컬 서비스가 나오고 구축되기 좋은 환경이다. 덕분에 중고 거래, 음식, 식료품 배송 서비스 등 하이퍼로컬 서비스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임정욱 TBT 공동대표의 설명이다.

▶너도나도 하이퍼로컬 왜?

▷네이버 ‘이웃 톡’ 강화…‘락인 효과’ 노려

‘하이퍼로컬’이 일상화되면서 각 기업은 보다 지역에 특화되고 지역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이나 서비스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종전 네이버 카페 외에 중고 거래, 주변 인기 카페 게시물 등을 볼 수 있는 ‘이웃’ 서비스를 강화했다. 최근에는 이웃 간의 소통이 가능한 ‘이웃 톡’ 서비스도 추가했다. 또 사용자 거주지 주변 동네 시장 먹거리를 당일 배송해주는 ‘동네시장’, 이마트와는 ‘지역명물 챌린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동네 생활 플랫폼 사업을 한층 진화시키는 중이다.

더불어 네이버는 원래 잘하고 있던 커머스 사업에 지역 밀착 서비스를 추가한 ‘로컬 커머스’ 생태계 구축에도 나섰다. 예를 들어 동네 단골 미용실 디자이너가 있다면 개별 QR코드를 부여받아 스마트폰만 들고 가면 네이버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단골 방문 횟수마다 할인 혜택을 부여하고 블로그 사용 후기를 남기면 더 할인해주는 식으로, 지역 중소상공인(SME)과 네이버의 콘텐츠를 엮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동네보다 더 좁은 개념인 아파트 입주민 대상 사업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직방은 지난해 직방 앱 내에 아파트 입주민 편의 서비스인 ‘우리집’ ‘컨시어지’ 기능을 추가하며 하이퍼로컬 서비스를 강화해왔다. 올해 초에는 카카오페이 계열사였던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 서비스 ‘모빌’을 인수했다. 이를 기반으로 전자투표, 관리비 납부 외 공동구매 등 입주민 상대의 다양한 서비스를 확대해갈 계획이다.

구인구직도 지역 기반으로 특화한 서비스가 주목받는다. 가까운 거리 업주와 알바생을 연결해주는 아르바이트 매칭 플랫폼 ‘동네알바’는 지난해 11월에 세상에 나온 후 6개월 만에 20만 회원을 모을 정도로 성업이다.

소비자 간 재능을 직거래하는 지역 기반 마켓도 있다. 알바몬에서 최근 선보인 ‘긱몬’은 ‘우리 동네에서 내가 필요한 재능을 사고, 가진 재능을 팔 수 있는 지역 기반 재능 마켓 서비스’를 지향한다. 알바몬 관계자는 “동네 사람끼리 별도의 판매 수수료 없이 재능 거래를 할 수 있는 점, 판매자-구매자 간 상호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신뢰성을 높인 점 등이 긱몬의 차별화된 특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질문.

종전 플랫폼 사업자는 물론 e커머스 업체까지 뛰어들어 ‘하이퍼로컬’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락인 효과(고객 묶어두기·Lock-In Effect)’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락인 효과는 ‘고객을 가둔다’는 의미. 학계에서는 일명 ‘자물쇠 효과’ ‘잠금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정 생태계를 조성해 재화나 서비스 이용 시 다른 선택을 제한하게 종속시켜 재구매를 촉진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네이버가 이웃 서비스를 강화하고 네이버페이를 쓰게 하는 데 이어 당근마켓이 당근페이를 내놓는 현상을 잘 봐야 한다. 일종의 플랫폼 ‘락인 효과’를 노려서다. 종전 동네 생활권 사업 모델은 온·오프라인 지역 신문, 커뮤니티에서 구인구직을 하고 지역 상권 할인 쿠폰을 발행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고객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IT 플랫폼 내에서 단순 광고 수익을 넘어 커머스, 결제 등 경제 활동까지 일어나도록 설계, 자사 플랫폼 중심의 온·오프라인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한 플랫폼에 ‘락인’된 동네 사람이 보다 나은 서비스가 등장한다 해도 종전 관계 때문에 계속 이 플랫폼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하이퍼로컬이 중요한 경영 전략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의 저자 최명화 블러썸미 대표(서강대 교수) 설명이다.

H2O 산하 로컬 크리에이터 스타트업이 문경 한옥을 새롭게 재해석해 지역 명소로 띄운 ‘화수헌’.

▶동네 생활권? 없으면 만든다

▷로컬 크리에이터 등 新직업도 등장

# 경북 문경의 한옥 카페 ‘화수헌’. 200년 넘은 한옥을 개조해 만들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로 지역 주민과 상생하고 있다. 같은 문경시 산양면 폐양조장을 개조한 ‘산양정행소’에서는 현지 농산물로 만든 막걸리를 활용한 디저트와 지역 기념품이 판매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역 명소가 됐다. ‘볕드는산’은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셀프스튜디오로 지역이 가진 옛 감성을 사진으로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문경시 산양면은 인구 소멸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가 이처럼 새로운 명소가 생기면서 월평균 8000명의 방문객이 방문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지역 재생·콘텐츠 개발사인 ‘리플레이스’ 작품이다.

# 2013년 9월 서울 서교동 작은 주택은 리모델링 끝에 ‘동네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동네호텔은 외국인 여행객, 노마드 프리랜서들에게 주변에 있는 세탁소, 빵집, 카페 등 동네의 작은 가게를 연결, 호텔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각광받았다. 숙박객 입장에서는 마치 동네 주민이 된 것처럼 다양한 지역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어 호평 일색이었다. 동네 주민 입장에서도 상권이 활성화되니 나쁠 게 없었다. 여세를 몰아 뜨내기 여행객이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 셰프, 공방 운영자 등 좀 더 개성 있고 전문성 있는 이들을 빨아들여 동네 생태계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코리빙(공유 주거), 코워킹 업무시설을 확대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최근 63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한 스타트업 ‘로컬스티치’ 사업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이퍼로컬, 없으면 만들겠다’며 접근하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지방, 구도심을 콘텐츠의 보고(寶庫)로 인식,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개발을 하면서 해당 동네 생활권을 활성화시킨다. 학계에서는 일명 ‘로컬 크리에이터’라 분류하기도 한다. 이들은 당근마켓, 네이버 등 플랫폼 간 격전지 대신 좀 더 특성화된 지역에 주목한다. 개성 있는 ‘하이퍼로컬’ 생태계를 구축하면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복안이다.

업계 최대 규모인 약 4만여대 렌터카 플랫폼으로 성장한 카모아가 ‘로컬 크리에이터’를 자임하며 지역 밀착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카모아는 최근 울릉도에 업계 최초로 지역 밀착형 실시간 예약 서비스를 선보였다. 애초 카모아는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렌터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가 현지 업체와 적극 제휴하는 쪽이 이용률을 끌어올리는 데 더 유리하다고 보고 전략을 바꿨다.

홍성주 카모아(법인명 팀오투) 대표는 “울릉도에서 렌터카를 편리하게 예약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맛집, 카페, 숙박시설 대표들을 설득해 할인 제휴를 하는 등 카모아를 현지 업체 입장에서 새로운 마케팅 플랫폼으로 인식시켰다. 입소문이 나면서 경북도, 서귀포시 등 각 지자체가 먼저 제안해와 지역 특화 서비스를 전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플랫폼의 생각법’ 저자 이승훈 가천대 교수는 “하이퍼로컬을 사업적으로 접근한다 했을 때 단순히 지역민 우대, 특산물 판매 식의 ‘등가교환’ 개념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동네만의 제품, 우리 동네 사람만 아는 정보’인데 이게 전국적으로 알려졌을 때 독특하고 참신한 가치로 인정받아 외부인까지도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동네 생활권이 만들어지는 개발 방식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동네부심’ 문화, 콘텐츠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플랫폼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유명한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가성비 좋은 지역 제품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내 동네에서만 살 수 있는 특화된 로컬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재해석한 제품, 서비스를 내놓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3호 (2021.08.25~2021.08.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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