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온라인 오락실..'플래시'를 아시나요 [임주형의 테크토크]

임주형 2021. 7.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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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비스 공식 종료됐으나 아카이빙 시도 늘어
웹페이지 영상 재생 프로그램으로 시작
애니메이션, 게임 등 제작 활용되며 세계적 인기
졸라맨 등 인기 아마추어 영상물 낳아
어도비 플래시로 만든 달리기 게임.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해 12월31일, 미국 IT기업 어도비의 웹 콘텐츠 재생 프로그램 '플래시 플레이어' 지원이 공식 종료됐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외 웹페이지에서는 더이상 플래시로 만들어진 영상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플래시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힘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플래시를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 복원 웹사이트인 '와플래시 게임 아카이브', 플래시 추모 프로젝트 'RIP 플래시'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들은 플래시가 단순한 영상제작 프로그램을 넘어, 시대를 규정한 하나의 인터넷 문화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넷에 친숙한 2030 세대에게 플래시가 이른바 '온라인 오락실'이라고 할만한 무수한 콘텐츠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현대 IT 기술과 문화에도 꾸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플래시는 지난 1993년 미국에서 개발된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입니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그림 파일인 'GIF'를 대체하는 웹용 애니메이션 제작 도구로 출발했지만, 이후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훨씬 복잡한 기능들이 추가돼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도비 플래시 프로그램 아이콘.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수십년 넘게 사랑받았던 플래시 프로그램은 보안문제가 불거지면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플래시를 경로로 악성코드, 바이러스 등이 유포되면서 이용자들이 불안감을 가지게 됐고, 또 지난 2014년 이후에는 웹사이트 자체적으로 간단한 영상 지원이 되는 'HTML5' 표준이 등장하면서 인기를 잃어갔습니다. 결국 지난해 어도비는 영구적으로 플래시 플레이어에 대한 지원을 종료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플래시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미술이론가 권태현 씨와 문화연구가 박이선 씨가 주도한 플래시 추모 프로젝트 'RIP 플래시', 플래시 게임들을 HTML5 환경으로 변환해 보존 작업에 나선 '와플래시 게임 아카이브' 등이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던 플래시 영상물들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플래시 영상들을 보존하려 애쓰는 것일까요. 'RIP 플래시' 측은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공지문에서 "2000년대의 수많은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플래시라는 기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당시 웹 문화의 근간을 만들었다"며 강조합니다. 플래시는 단순히 한 프로그램을 넘어, 인터넷 공간의 한 시대를 규정한 문화 현상이라는 주장입니다.

플래시는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플래시 제작자들이 영상, 게임을 만들어 공유했는데 대표적인 웹사이트로 지난 1995년 법인이 설립돼 현재까지 운영 중인 '뉴그라운즈(newgrounds)'가 있습니다.

미국 유명 플래시 관련 웹사이트 뉴그라운즈 로고(왼쪽)와 국내 초기 플래시 영상물 중 하나인 졸라맨 / 사진=위키피디아, 유튜브 캡처

국내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플래시 영상물이 폭발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이른바 '플래시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당시 수많은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플래시로 영상물을 만들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영상물은 그래픽 디자이너인 김독헌 씨가 만든 '졸라맨'입니다. 동그라미와 막대 몇개로 인간을 표현해 다양한 상황극을 펼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이 외에도 마시마로, 홍스구락부, 달묘전설 등 다양한 아마추어 집단이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인터넷에 공유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플래시는 영상에서 그치지 않고 게임으로도 확장됐습니다. 플래시로 제작한 게임들은 특히 초·중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쥬니어네이버', '야후꾸러기' 등 아동 전용 포털에는 플래시 영상과 게임이 주 콘텐츠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RIP 플래시' 메모리얼에 영어, 포르투갈어 등으로 적힌 여러 나라 누리꾼들의 추모글. / 사진=RIP 플래시 캡처

'플래시의 죽음'을 추모하는 웹사이트 'RIP 플래시'의 방명록 란을 보면, 한국, 일본, 영어권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플래시를 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플래시는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공유하는 '동시대의 추억'인 셈입니다.

추모 프로젝트를 주도한 박이선 게임문화연구가는 'RIP 플래시' 웹사이트에 쓴 글에서 "현재 유니티(최신 게임 제작 엔진)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플래시에서 넘어왔다"며 "유니티와 플래시는 비슷한 속성을 공유한다. 애니메이션 제작 기능을 포함, 유니티는 플래시의 유산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고 설명합니다. 비록 소프트웨어 플래시는 영구적으로 종료됐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플래시가 웹콘텐츠를 재생하는 플랫폼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플래시 이후의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는 플래시를 상당 부분 계승했다. 그렇다면 기술의 죽음을 완전한 죽음으로 봐도 되는 것인가"라고 되묻습니다. 어쩌면 플래시와 그 문화는 여전히 인터넷 공간에 남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셈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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