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면 감형될까요"..성범죄 저지르고도 '감형 노하우' 공유하는 그들

박현주 2021. 7. 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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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추행·불법촬영 등 범죄 고백 줄이어..시민들 '분노'
카페 운영진, 법무법인과 제휴 맺고 법률 상담 적극 권장도
전문가 "사실상 제재할 수 있는 규정 없어"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형량을 줄이려는 사람들이 온라인 카페에 모이고 있다. 이들은 반성문 쓰는 요령 등 일종의 감형수법에 대해 공부하고 또 의견을 교환한다. 피해자에 대한 깊은 반성이 아닌 유리한 양향조건에 관심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감형을 받기 위해 일종의 '감형 수법'을 준비하는 온라인 카페가 버젓이 운영돼 시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성폭행 피해 등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반성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죗값을 줄이려는 뻔뻔한 인면수심의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일은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터넷 검색 중 희한한 카페를 발견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성범죄OOOO카페'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이곳에는 1일 오전 기준 57000여명이 가입돼 있으며 전체 글은 12만개가 넘을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가입자들은 주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곳에서 감형 노하우, 경찰 조사 후기, 판례 등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카페 운영자도 공지를 통해 "성범죄로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정보공유 커뮤니티다. 진행 중인 사건이 없거나 무관한 분은 가입하지 마시라"고 못박았다. 추행, 강간, 불법촬영, 성매매,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사이버성범죄 등 범죄유형별 다양한 게시판을 두고 운영 중이다.

회원들은 자신이 해당하는 범죄 유형 게시판에 사건명, 사건발생일시, 사건발생장소, 사건진행단계 등 사건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감형 노하우, 재판 진행과정을 주고 받는다.

카페에는 '유죄일 때 불이익 최소화 요령', '양형 자료 준비하기', '반성문 쓰는 법', '피해자와 합의 요령' 등의 내용이 담긴 성범죄대응매뉴얼도 존재한다. 운영진은 법무법인·심리상담소와 제휴를 맺고 카페 회원들에게 법률·심리 상담을 적극 권장하기도 한다.

OO카페의 '축하해주세요' 게시판에는 무혐의, 감형 등 자신의 소식을 알리는 글이 올라온다. 사진=OO카페 '축하해주세요' 게시판 캡처.

회원들은 혐의가 인정돼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내일 선고날이다. 불안하다', '해가 떠있는 시간이 무섭다'는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회원들은 댓글을 통해 자신의 사례를 고백하며 서로를 다독이거나 양형 및 무혐의를 축하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감형받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성범죄자 5만명이 있는데 저런 카페를 폐쇄하지 않고 뭐하냐", "범죄자 주제에 자기들끼리 안타깝다고 하는 모습이 역겹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해야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카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억울해하는 회원들도 있다. 지난해 강간 혐의를 벗었다는 회원 A씨는 "무고로 인해 범죄자가 될 것 같은 자괴감과 불안함으로 일상은 지옥으로 변했다"며 "마음고생으로 인생 하직 직전까지 갔던 제 입장에서 OO카페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터진 뒤 언론에서) OO카페에 있는 모든 이들을 성범죄자이자 양형을 위한 정보공유하는 소굴로 표현하는 것에 정말로 분노했다"며 "기자들은 OO카페의 유익함에 대해 기사를 써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카페 운영자도 공지를 통해 "카페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커뮤니티일 뿐"이라고 소개하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참 안타깝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게시글에서 회원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했다', '텔레그램 N번방에 입장했다', '아청물(아동·청소년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유포했다', '준강간을 저질렀다',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했다' 등 다양한 유형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글이 다수다.

이밖에도 아청물 소지로 압수수색을 받았다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성희롱을 해 고소당했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는 이같은 커뮤니티를 제재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지적에 대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복잡한 문제다. 양형인자(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선고형을 결정할 때 고려되는 요소)는 대부분 홈페이지에 오픈돼 있기 때문에 이를 불법이라고 보고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카페 회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재판·수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모였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득을 취하기 위해 명백한 범죄자의 감형을 돕는) 변호사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관에 심각한 하자가 있지 않겠나 싶다"고 비판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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