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밟히는 게 목적"..한국 위해 다리가 된 일본인들 있었다, '사랑으로 잇다' 북콘서트 열려

글,신상목 2021. 6. 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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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잇다' 북콘서트가 지난 2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서울일본인교회에서 열렸다. '사랑으로 잇다'에 등장하는 10인의 일본인중 한 명인 요시다 고조(왼쪽 두 번째) 목사 가족들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요시다 야스코 사모, 요시다 목사, 사위인 히라시마 노조미 목사, 딸 히라시마 노리코 사모, 윤성혜 선교사(왼쪽부터).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츠 마사야스(1863~1921)는 1896년 일본인 첫 선교사로 내한해 18년간 활동했다. 그가 노방전도에 나섰을 때 한국인들은 돌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노리마츠 선교사는 스스로 한옥에 살았고 한국인처럼 한복을 입었다. 그의 자녀에겐 일본어 대신 조선말을 먼저 가르쳤다. 노리마츠 선교사가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이번엔 일본인들이 그를 싫어했다. 그는 자신의 유골을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리마츠 선교사의 무덤은 현재 경기도 수원 동신교회 옆에 기념비와 함께 조성돼 있다.

#일본인 여성 다우치 지즈코(1912~1968)는 1938년 목포의 고아원, 공생원을 운영하는 윤치호 전도사를 만나 결혼했다. 이름도 한국명 윤학자로 바꾸고, 일제 강점기 후반 일본인에게 가해지던 편견을 참으며 고아를 돌봤다. 당시 고아들은 일본의 토지조사사업 등의 여파로 늘어났다. 일제가 토지 신고를 하지 않은 조선인들의 토지를 몰수해 일본인과 친일파 조선인에게 넘기자, 토지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유랑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버리거나 고아원에 맡기기도 했다. 윤학자는 일본의 부당한 통치방식으로 희생된 고아들을 돕는 것은 일본인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인식하고 3000여명의 고아를 돌봤다. 이 공로로 1963년, 한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이었다.

최근 출간된 ‘사랑으로 잇다’(도서출판 토비아)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의 선한 이야기다. 책은 ‘한국을 위해 다리가 된 일본인 10인’의 생애를 다뤘다. 이들 외에도 ‘조선인을 위해 목숨을 건 일본인’(니시다 쇼이치) ‘농장경영·교육·전도로 가교가 된 사람’(마스토미 야스자에몬) ‘백자와 식림으로 한일을 잇다’(아사카와 다쿠미) ‘한국 여성교육을 통해 한일 가교가 되다’(후치자와 노에) ‘한국인 전도에 일생을 바친 선교사’(오다 나라지) ‘한국에 대하여 속죄적 구도자로 산 그리스도인’(사와 마사히코) ‘한국 고아의 아버지’(소다 가이치) ‘오늘의 한일 가교로 살아가는 사람’(요시다 고조) 등의 삶을 돌아봤다. 책은 블레싱재팬의 출판사인 BJBOOKS가 기획했다.

지난 2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서울일본인교회에서는 ‘사랑으로 잇다 북 콘서트’가 개최됐다. 블레싱재팬 정기모임과 함께 열린 북 콘서트는 이지연 선교사와 김윤기 목사, 이윤화 선교사의 공연, 책소개와 토크 1·2, 기도회 순으로 진행됐다.

'사랑으로 잇다'의 저자 나카무라 사토시(TV화면 속 왼쪽) 목사와 번역자 박창수 선교사가 화면 속에 등장해 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토크 1에서는 책의 저자인 나카무라 사토시 전 니가타성서학원장이자 일본전도복음교단 지도목사와 번역자인 박창수 선교사(니가타성서학원 전임교사)가 인터넷 화상으로 연결해 대화를 나눴다. 나카무라 목사는 “10명의 일본인을 소개하는 책을 쓰면서 일본인이나 한국인 가운데 두 나라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일, 그 발자취를 이어갈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했다”며 “저는 지금까지 한국을 일곱 차례 방문했고 그때마다 일본인으로서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했다. 이제는 한국교회를 향해 함께 선교를 위해 협력하자고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목사는 역사학자로서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 ‘일본 프로테스탄트 해외 선교의 역사: 노리마츠 마사야스부터 현재까지’ ‘중국·한국·일본의 교회’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특히 이번 ‘사랑으로 잇다’에서는 독특한 ‘가교론(架橋論)’을 펼쳤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교가 되신 예수를 본받아 가교가 될 필요가 있는데, 본래 다리는 사람들에게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가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가교의 역할이 아니라 직접 가교가 되자는 취지다. 그는 책에 소개된 10명도 “과거 요동치는 역사 가운데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지만, 동시에 비판을 받고 이해받지 못했으며 짓밝혔다. 그러나 인내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랐고, 가교 역할을 다했다”고 말했다.

토크 2 시간에는 ‘사랑으로 잇다’에 등장하는 마지막 10인의 주인공이자 생존해 활동 중인 요시다 고조(80) 목사와 가족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나눴다. 요시다 목사는 1981년 ‘사죄와 화해’를 위해 일본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았다. 서울일본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7년 전부터는 사위와 딸도 동참해 사죄와 화해 사역을 잇고 있다.

요시다 고조 서울일본인교회 목사가 24일 열린 북토크쇼에서 축도하고 있다.

요시다 목사는 인사말에서 “하나님께서 저뿐 아니라 아내와 큰딸 부부가 이렇게 사죄와 화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불러주셨다”며 “사죄와 화해는 사랑으로 해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고, 그런 뜻에서 이번에 관련 책이 출판됐고, 여러 명 가운데 나와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을 선정해주심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일본 사회도 그렇지만 일본 미디어가 그런 기사(한국 비판)를 집중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일 간 어려움이 높은 시기이지만 교회 신자들은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보는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 그림이 있습니다. 저는 두 나라 사이에 예수 십자가가 있는 게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일관계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뉴스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디서나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요시다 목사의 사위이자 교회 부목사인 히라시마 노조미 목사는 지난날을 회고했다. “25년 전 신학생 때 요시다 목사님의 사죄와 화해에 대한 간증을 듣고 그 사명의 계승자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3개 교회에서 목회한 다음, 사모인 노리코와 결혼하고 개척전도를 15년간 한 후에 2014년 7월 사죄와 화해를 위한 제2호 선교사로서 일본교회의 파송을 받았습니다. 요시다 목사님이 사죄와 화해를 위한 1세대 목회자라면, 저는 다음세대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다음세대에도 이 사역이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사랑으로 잇다’의 출간은 100년 전 일본의 죄 때문에 한일관계가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작은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일 간 가교가 되신 10명이 이렇게 한국에서도 인정을 받아 책으로 출판을 하게 된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라기는 앞으로 한국인으로서 한일관계의 가교가 되신 분들을 발굴해 책으로 출판돼 일본어로 번역되기를 바랍니다.”

히라시마 노리코 사모는 아버지인 요시다 목사와 함께 한국에 왔던 일화를 소개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의 시골 학교에 다녔는데 친구들에게 한국에 간다고 하니 아무도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몰랐습니다. 한국에 오긴 했는데 한국에 온 것 같지도 않고 일본에 가고 싶었습니다. 4살 밑에 여동생이 있는데 저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사죄 다 했으면 이제 일본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국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은 한 번 두 번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이제 그만 사죄하라고 할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사죄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나는 한국에서 죽어서 생을 마치고 여기서 뼈를 묻고 싶다’ 하시면서 지금까지 40년을 사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한국에서 다녔습니다. 그리고 잠시 일본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을 떠날 때 저는 ‘잇테 키마스’(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목사님과 다시 한국에 왔을 때 ‘타다 이마’(다녀왔습니다) 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올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왔지만, 두 번째 한국에 왔을 때는 사죄와 화해의 선교사로 왔습니다. 한국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왔습니다.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변함없이, 한국분들이,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저희를 사랑해주시고 받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릴 적 경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일본에서 목사 가족이 왔다고 해서 얼마나 사랑을 해주셨는지 모릅니다. 저와 여동생이 몸이 약해서 자주 아팠는데 아파트 동네 소아과에 갔습니다. 그 원장님이 크리스천이었는데 우리가 일본에서 왔다는 것을 아시고 병원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 북콘서트를 준비한 블레싱재팬 상임대표 윤성혜 선교사는 “책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주로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이라는 정황 가운데 살았던 분들이고 그 속에서 깊은 신앙의 고백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며 “앞으로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 가운데서도 한국과 일본 사이 다리를 놓는 일에 헌신한 인물 발굴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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