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꿈틀대는 대선 판도..초한지? 삼국지? 열국지?
최재형 가세하면 '삼국지' 양상
군웅 할거하면 '열국지' 될 수도
"초한지(楚漢志)에 비유하자면 유방(劉邦)처럼 서민 출신의 이재명 지사가 결국 귀족 출신 항우(項羽) 같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이길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 진영에서 흘러나오는 희망 섞인 대권 시나리오라고 한다. 진시황(秦始皇) 사후에 다시 천하 패권을 놓고 군웅이 할거하던 진(秦)나라 말기와 내년 대선을 단순 비교해 나온 가설로 보인다. 사면초가 상태에 몰렸던 항우의 해하가(垓下歌)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 각본이다.
'이준석 현상'으로 정권 교체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잔뜩 고무된 보수 진영이라면 발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양자 대결을 가정한 여론 조사에서 5월 중순 이후 윤 전 총장이 줄곧 앞서는 상황인데, 이 지사가 결국 판세를 뒤집을 거라는 주장을 보수 진영은 불쾌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 3월 대선까지 아직 8개월 이상 시간이 남았고, 변수 또한 수없이 많기에 지금 시점에서 어떤 결과도 단언하기 어렵다. 누가 되든 당 내외에서 넘어야 할 고비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작은 이슈 하나에도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요동치는 상황에서 누구도 쉽사리 낙승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1, 2위를 달린다는 이유로 초한지 같은 대결이 재현될 거라고 보는 시나리오는 어디까지 타당할까. 또 다른 인물들이 급부상하면 삼국지(三國志)나 열국지(列國志)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은 없을까.
외견상 경북 안동 산골 화전민 마을에서 자란 이 지사는 유방처럼 한미(寒微)한 가정 출신이 맞다. 반면 윤 전 총장은 교수 부모를 둔 중산층에서 태어나 서울 법대와 사법고시를 거쳐 검찰총장까지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유사한 몇 가지 요소를 빼면 두 법조인을 유방과 항우에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유방은 극적으로 항우를 꺾고 천하를 차지한 뒤 대풍가(大風歌)를 부르며 금의환향했다. 유방은 자신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가 된 비결을 인재 중용 리더십으로 설명했다. 즉, 유방 자신은 군수 행정 능력이 소하(蕭何)만 못 하고, 지략은 장량(張良)만 못하고, 전쟁은 한신(韓信)만 못하다며 삼불여(三不如) 주장을 폈다.
이 지사가 유방처럼 최고의 인재들을 모았는지,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는 스타일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소년 노동자 출신으로 고입·대입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을 통과했고, 시민운동에 참여한 변호사 경력을 살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에 당선된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기로 수많은 고비를 넘으면서 만기친람(萬機親覽)형이 됐다는 말이 들린다.
유방은 항우에 대해 "측근 범증(范增)조차 중용하지 않았다"고 꼬집었고, 장량은 "항우가 자신의 능력만 믿었다"고 혹평했다. 윤 전 총장 주변엔 서울법대와 검찰 출신 등 각계 엘리트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한 충암고 동기생은 "본고사 시절 대입 우수반에서 석열이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제일 잘 풀었다. 그만큼 치밀하고 신중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윤 전 총장의 리더십이 엘리트의 독단에 갇혀 있는지, 인재를 중시하고 포용할지는 검증 대상이다.
차기 대선은 양자가 다투는 '신 초한지' 양상으로 흘러갈 수도, 여차하면 다자구도로 급변할 수도 있다. '다크호스' 최재형 감사원장이 조만간 출마를 결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그럴 경우 천하대세는 제갈량(諸葛亮)의 삼분지계(三分之計)가 필요한 '신 삼국지'로 바뀔 수도 있다. 기존 여당 주자들(이낙연·정세균·박용진)과 야당 잠룡들(유승민·원희룡·홍준표)이 치고 올라오면 춘추전국시대 '신 열국지' 양상으로 갈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이 천심이다. 결국 대권 향배는 민심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자고로 민심은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을 제일 중히 여긴다. 부동산 실정으로 내 집 마련 꿈을 날리고 절망하는 가정, 생계를 해결할 일자리가 없어 떠도는 청년 세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젊은 남녀들을 고통에서 구할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좌우 양극단으로 갈라진 나라를 통합할 비전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는 누구인가.
누구든 내년 3월 9일 밤에 웃으려면 이런 핵심 질문에 분명하고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더 큰 권력을 탐해서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기존 명성도 허물어지고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의미 없이 명멸한 수많은 유성(流星·별똥별)을 보면서 우주의 이치와 역사의 경고를 읽어야 할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왕절개 칼이 아기 그었다···신생아 보고 기절할뻔한 엄마
- 같은 아파트인데···방 문 1개에 1억 갈린 '웃긴 상한제'
- 붉은 바탕에 남성 일러스트···홍대·이대 선정적 포스터 정체
- "새벽 2시부터 살인적 업무" 특전사 취사병 결국 장애인 됐다
- 중국이 참치 맛에 눈뜨자, 남태평양 사모아 어부가 울었다
- [단독]'아들 둘 입양' 최재형,이르면 이달중 사퇴후 대선출마
- 길가던 女에 "성관계 하자" 황당 요구 50대, 거부당하자 한 짓
- 7월 야외서 마스크 벗는 사람, 백신 접종자 확인하는 법
- 김범석 사임 예정됐다해도···쿠팡탈퇴로 이어진 'MZ 분노'
- 독도새우에 절한 '할리 타는 여교수'···그가 텃새 뚫은 A4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