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스토리→마리 앙투아네트 '케이크' 발언=가짜 (벌거벗은 세계사)[종합]

박예진 2021. 6. 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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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가짜 뉴스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스토리가 공개됐다.

8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파비앙과 케이디가 함께 출연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

바스티유 습격 사건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고,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가짜 뉴스가 더욱 악랄해졌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는 많은 팸플릿의 대상이 되었고, 그 속에서 괴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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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박예진 인턴기자] '벌거벗은 세계사'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가짜 뉴스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스토리가 공개됐다.

8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파비앙과 케이디가 함께 출연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


이날 방송에서는 루이 16세가 프랑스를 집권하던 당시, 최악의 자연재해가 발생했던 시기가 그려졌다.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고, 국가의 재정난으로 온갖 명목의 세금이 징수됐다.

또한 미국 독립 전쟁을 돕기 위해 프랑스는 엄청난 지원에 나섰고, 당시 프랑스 왕국 총 수입이 4억 7500만 리브르였음에도 미국의 독립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20억 리브르를 사용했다.

이후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조한욱 교수는 "평민들이 국민 의회를 만들었다. 루이 16세는 거기에서 위협을 느껴서 평민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실 문을 닫았다. 그러자 평민들이 근처의 테니스 코트장으로 가서 테니스코트 선언이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다.

루이 16세의 관점에서는 왕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했고, 국민들이 모여 만든 의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국민들은 절대 왕정의 상징으로 여겨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조한욱 교수는 "바스티유 감옥 철거 후 시민들이 돌을 하나하나 날랐고, 그 돌로 콩코르드 다리를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파비앙은 "요즘 바스티유는 젊은이들이 노는 핫플레이스다"라며 놀라워했다.


바스티유 습격 사건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고,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가짜 뉴스가 더욱 악랄해졌다.

조한욱 교수는 "혁명이 시작되자 여성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팸플릿이 1787년 200건에서 2년 만에 3000건이 출간됐다"라고 말했고 실제 팸플릿을 보자 '벌거벗은 세계사' 멤버들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는 많은 팸플릿의 대상이 되었고, 그 속에서 괴물로 그려졌다. 은지원은 "아예 그냥 몰이로 간 거다"라며 씁쓸해했다.

경제적 궁핍에 분노한 여성들은 20km가 넘는 행진을 시작해 베르사유 궁의 왕비의 침실까지 쳐들어갔다. 이어 조한욱 교수는 "절대 왕권을 누리던 왕족들이 국민의 감시 하에 살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혜성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고 알려진 "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드세요"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조한욱 교수는 "그 말은 이미 돌아다니던 말이다.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론' 6권에 그런 말이 있었는데 사실 그 책이 나올 때 마리 앙투아네트는 9살이었다. 그런 말을 할 방도가 없었다"라며 해명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위협을 느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파리를 탈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두 사람에게 국민들은 분노했다.

조한욱 교수는 "루이 16세가 마차를 타고 도망치던 중, 호위부대가 루이 16세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이를 목격한 마을 우체국장이 지폐 속 얼굴과 루이 16세 얼굴이 같은 것을 알아내 발각됐다"라고 설명했다. 지폐 속 얼굴을 본 스튜디오 사람들은 "이걸 보고 어떻게 알았냐"라며 놀라워했다.

결국 루이 16세는 처형해야 한다는 로베스피에르의 강력한 주장에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에 조한욱 교수는 이 사건이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루이 16세가 처형되던 때 사람들은 루이 16세의 피를 묻히기 위해 흰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고 해 모두의 충격을 자아냈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 = tvN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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