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난청인' 20배 더 많은데.. 심층조사·연구 없어 대응 한계

최예슬,송경모,민태원 2021. 6. 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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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리나요? 난청, 늦기 전에 준비하자] ④ 부족하고 겉도는 정책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난청인지 모르거나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숨은 난청인이 많다.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심층 조사·연구와 함께 보청기 지원 확대, 난청 조기 발견을 위한 생애주기별 청력검진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성인 난청 환자는 1300만명에 달하지만 실제 난청 치료를 받는 환자는 연간 63만여명에 불과하다. 자신이 난청인지 모른 채 살고 있거나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숨은 난청인’이 실제로는 20배나 많은 셈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은 청각장애 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보청기 구매비를 지원하는 것과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청각선별검사가 전부다. 전문가들은 “난청은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생기기 때문에 병을 인지하기 어렵다”며 애초에 발견되지 않은 난청 환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실제 난청 환자 규모를 파악하고 환자를 조기 발견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난청 진료 환자는 2009년 36만6000명에서 2016년 52만2000명, 2018년 58만3000명, 2019년 65만4000명, 2020년 63만7000명으로 증가해왔다. 2020년 난청 치료에 들어간 요양급여 비용은 1297억5152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진료를 받지 않거나 장애로 등록되지 않은 난청 인구를 고려한다면 고령화에 따른 난청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경원 한림국제대 청각언어치료학과 교수는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노후 사회생활과 생활 저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국가적 관리가 필요하다”며 “노인들도 인생 이모작을 하며 고령까지 일을 하는데 청력이 약해 경제 능력이 손실되는 2차 피해까지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난청 환자들이 저하된 청력 탓에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제언했다. 이 교수는 “비장애인에 비해 난청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노인이 사회경제 활동에 어떤 제약을 받는지 비교 연구를 해야 한다”며 “난청으로 인해 치매, 우울증을 겪는 노인이 많아지면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비 손실도 상당해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이 불편할 정도의 난청 환자가 있는지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75세 이상 고령자의 절반가량이 난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정부 차원의 난청 환자 지원 제도는 한정적이다. 장애 등급을 받은 환자에게 보청기 구매·관리비용(131만원)을 지급하는 보청기 급여제도와 신생아 청각선별검사, 인공와우(달팽이관)수술 비용 지원이 전부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보청기 급여 금액은 2005년 25만원에서 2015년 11월 이후 131만원으로 대폭 올랐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당시 ‘보청기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급여대상이나 급여액 모두 확대되지 않았다.

신생아 청각선별검사는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생후 1개월 이내에 시행되고 있다. 재검(refer)인 경우 생후 3개월 이내에 난청 확진 검사를 받고, 난청으로 진단받으면 생후 6개월 이내 보청기 등의 청각 재활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신생아의 선천성 난청은 발생률이 높은 질환이다. 신생아 1000명당 1~3명꼴로 발생한다. 이는 언어 및 학습장애를 초래할 수 있어 발견 초기에 보청기 착용 등의 재활치료 조치가 필요하다. 과거 이 검사는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5만~10만원의 비용이 들었으나 2018년 10월 1일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라 검사를 한 환자의 96%가 검사비를 지원받지 못했다.

난청 환자를 위한 새로운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기존의 제도는 지속적으로 보강돼왔다. 2019년 정부는 선천성 난청 환자의 보청기 지원 제도를 강화했다. 원래 청각장애 인정을 받아야 보청기 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2019년부터는 청각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천성 난청 환자(만 2세 이하)도 소득 기준에 따라 보청기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보청기 지원 제도는 그동안 사후관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보청기를 사고 난 후 판매점이 사라져 기기관리를 못 받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보청기를 구매할 때 한꺼번에 지급하던 131만원의 급여를 나눠서 주기로 했다. 보청기 구매시 9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초기·후기 적합관리(보청기 소리 조절 등)를 받을 때 각 2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보청기 급여를 지급하는 장애 기준을 좀 더 느슨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장애등급은 ‘두 귀의 청력 손실’이 각 60, 70, 80, 90데시벨(㏈)일 경우를 등급별로 나눠서 부여하고 있다. 등급별로 이 기준을 10㏈씩이라도 낮춰서 보청기 급여 혜택을 받기 더 쉽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청기만이 능사는 아니다. 구자원 대한이과학회장은 난청을 조기에 발견해서 보청기를 껴야 하는 상황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 회장은 “청년기에 청력이 빨리 떨어지면 이후 급속도로 나빠지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10~30대도 생애전환시기에 청력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며 “10년에 한번 정도는 본인의 청력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난청임을 인지하면 병원을 찾아 장애진단을 받고 보청기를 사용하면 되지만 그냥 잘 안 들리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복지부에 난청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으로 고령자가 늘어나는 만큼 난청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청력이 좋아지기 어려운 노인성 난청의 경우 보청기를 활용한 재활을 전문적으로 할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경원 교수는 “보청기 전문인력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보조기기를 조절해 성능을 평가하고 보청기 검수를 할 수 있는 전문가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수희 한국청능사협회장은 “의료인이 하기 어려운 보청기 사후관리나 상담, 조정, 청능 훈련 재활을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며 “그동안 보청기라는 하드웨어 제공에는 힘썼지만 사후관리·재활은 소홀했다”고 했다. 그는 “전문인력을 국가가 양성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며 “기기만 제공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재활까지 도와줘야 효과가 더 커진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최예슬 송경모 기자,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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