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올드무비㊸] 뮤지컬영화의 지존, 존 트라볼타 '그리스'

홍종선 2021. 5.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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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스'의 주인공 샌디와 대니(오른쪽부터) ⓒ

아직 6월도 되지 않았는데 마음은 벌써 휴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면 코끼리 생각을 더 하게 되듯, 휴가가 녹록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절이다 보니 휴가가 더욱 그립고, 지나간 여름날의 추억들을 떠올리는 나를 발견한다.


추억은 영화 속에서 곧잘 복고풍으로 재현된다. 2007년 작 미국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한껏 부풀린 머리에 원색 의상으로 1950년대를 스크린으로 소환했다. 스프레이 한 통은 뿌려야 고정될 것 같은 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과거’가 시간 배경임을 알게 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만 봐도 스모키 화장에 넓은 금줄의 목걸이, 어깨가 과장된 의상이 등장한다. 에이, 90년대에 저랬다고? 70년대 아니야? 싶지만, 그랬다. 그 시절의 패션을 옮겨 온 건데 마치 한참 전의 것처럼 느껴진다.


리델 고등학교 '티버즈' 친구들 ⓒ

뮤지컬영화 ‘그리스’(감독 렌달 크레이저) 역시 복고풍 패션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1978년 개봉한 영화를 2021년 오늘 보면 그 자체로 복고풍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978년 당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다분히 현재성이 느껴졌을 것이다. 20년 전인 1950년대 말을 배경으로 했기에 의상부터 헤어, 동작부터 말투, 노래와 춤에 복고적 느낌이 물씬하다. 과거를 추억할 때면, 당시의 유행 가운데 특징적이었던 것들을 뽑아 집약적으로 표현해내기에 훨씬 더 복고풍 일색으로 연출된다. 그래야 추억이 더 ‘향’처럼 번진다.


존 트라볼타는 ‘그리스’에서 리델 고등학교 졸업반 대니 주코 역을 맡았다. 교내 클럽 ‘티버즈’의 리더 격으로 노래도 잘하고 춤도 기가 막히게 잘 춰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학생인데, 남자친구들에게 으스대느라 ‘문란’한 사생활을 과장하고 가장하는 측면이 있다. 대니는 당시 유행이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상이며 헤어스타일을 연상시키는 패션을 고수한다. 특히 빗으로 머리를 종종 빗곤 하는데 정수리에서 이마 위로 뻗은 머리칼들을 고정하자면 끈적한 머릿기름, 그리스(grease)가 필수로 보인다.


영화 포스터 ⓒ

마치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앞으로 걷듯, 춤을 추듯 독특하게 걷는 모습처럼 언제나 멋지게 연출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실제로 대니는 마음 착하고 의리 있는 고교생이다. 학교를 벗어나 여름방학 해변에서 만난 샌디 올슨(올리비아 뉴턴 존 분) 앞에선 특히나 감성적이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물론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겐 ‘또 하나의 열애’였던 것처럼 카사노바 면모를 자랑했다. 그런데! 호주로 돌아간다던 샌디(올리비아 뉴턴 존 역시 영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랐다)가 전학을 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친구들 앞에서의 ‘사내’ 이미지를 깰 수도 없고, 자신을 순한 양으로 아는 샌디를 놓칠 수도 없다.


샌디의 마음을 얻었다가 화나게 했다 우왕좌왕하는 대니, 우정과 사랑 사이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그리스’의 기둥 줄거리다. 사실 줄거리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샌디에게 잘 보이기 위해 농구에서 야구, 씨름에서 달리기, 카 레이싱까지 도전하고 기회만 되면 현란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대니를 통해 존 트라볼타의 활약이 이어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바로 1년 전 개봉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를 통해 입증된 ‘디스코 춤의 화신’ 존 트라볼타의 재능과 스타성을 즐기는 영화다.


마치 몸이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주인공처럼 탄성 좋은 소재로 이뤄진 것처럼 존 트라볼타의 춤에선 탄력이 느껴지고, 땅이 아닌 방방이 위에서 뛰는 듯한 경쾌함이 다리의 움직임에 있다. 춤을 추다 하늘로 휙 튀어 오른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것처럼 다른 사람과는 다른 크기의 중력을 받는 듯 가벼워 보인다.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턴 존의 커플 댄스 ⓒ

뿐만이 아니다. 당시 남녀 이상형의 대명사로 꼽히던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턴 존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 배우로는 신인이라 해도 가수로서는 이미 1974년도에 발표한 ‘I Honestly Love You’(진실로 당신을 사랑해요), 1975년도 곡 ‘Have You Never Been Mellow’(느긋해 본 적은 없니)를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린 스타 디바가 뮤지컬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마론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가녀린 몸매, 깨끗한 목소리에 빼어난 가창력, 샌디 역을 맡은 올리비아 뉴턴 존은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주인공처럼 청초하게 아름답다. 끝에 가선 ‘얌전 소녀’의 이미지를 버리고 ‘걸크러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반전 매력을 내뿜는다. 리델 고등학교 졸업파티이자 TV로 중계되는 댄스경연대회에서 커플 댄스를 선보이는데 아름답다. 만능 춤꾼 존 트라볼타가 리드 하긴 하지만, 올리비아 뉴턴 존도 수준급 댄스 실력을 자랑한다. 두 사람뿐 아니라 배경으로 보이는 조·단역들의 춤솜씨가 대단하다.


춤출 때 아름다운 배우 존 트라볼타 ⓒ

뮤지컬영화인 만큼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노래들, 사랑을 고백하고 의심하고 아파하는 노래들, 다 함께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노래들이 다양하다. 1959년을 배경으로 한 1978년 영화다 보니 남녀관계의 양상이 현재와 달라 못마땅할 수 있고, 줄거리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보니 서사와 개연성을 중시하는 이들에겐 엉성해 보일 수 있는데, OST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 힘들 만큼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다.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턴 존이 함께 부른 ‘Summer Nights’(여름밤), ‘You're The One That I Want’(내가 원하는 건 당신뿐), We Go Together(함께 가요)가 마음을 간지럽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육감적 미모를 연상케 하는 스톡카드 채닝의 ‘Look At Me, I'm Sandra Dee’(나를 봐, 내가 바로 샌드라 디)는 거친 힘이 느껴진다. 잠시 미용학교에 간 프렌치(디디 콘 분)에게 복귀를 권하는 틴 엔젤(프랭키 아발론 분)이 부르는 ‘Beauty School Drop-Out’(미용학교 중퇴해)은 즐겁다.


추억은 방울방울, 음악은 영원히… ⓒ이상 '다음' 영화정보

그래도 가장 명곡은 올리비아 뉴턴 존의 노래 ‘Hopelessly Devoted To You’(어찌할 바 모르게 네게 빠져 있어)이다. 애초 영화 출연 당시부터 독창곡을 하나 넣을 것을 계약했지만 촬영이 중반을 넘어서도록 올리비아 뉴턴 존을 위해 곡이 나오지 않았다고. 이에 올리비아 뉴턴 존의 프로듀서 존 패러가 샌디가 부를 아리아를 위해 오랜 시간 가사에 공을 들여 운율까지 맞춰 쓰고 작곡했다. 해변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대니에 대한 혼란과 멀어진 것 같은 마음에 관한 아쉬움, 그러나 포기할 수 없고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애절한 노래다. 배우 하정우도 지난 19일 시작한 tvN 예능 ‘곽씨네 LP바’에서 인생 노래 5곡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문득 떠오른 사실! 존 트라볼타가 글 초반 얘기한 ‘헤어스프레이’에도 나왔다. 주인공 트레이시(니키 브론스키 분)의 아빠가 아닌 엄마! 에드나 역할로. 남자 배우가 엄마로 분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연기력을 지니기도 했지만, 뮤지컬영화엔 존 트라볼타가 제격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 외에도 ‘펄프 픽션’이라는 뮤지컬영화 명작이 존 트라볼타라는 배우에게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주었다. 이 가운데 ‘그리스’를 가장 먼저 챙겨볼 일이다,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OTT, 넷플릭스에서 5월 31일까지만 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느긋하게 굴기엔 얼마 남지 않았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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