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소비러 4명이 이야기하는 소비에 대한 모든 것!

2021. 5.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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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소비러' 4명의 마케터에게 물었다. 꾸준히 사는 것, 요즘 들어 산 것, 사기를 그만둔 것.
「 브랜드로 말해요 」
마케팅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중 하나로 ‘페르소나’가 있다. 브랜드의 핵심 고객이 될 법한 가상의 인물을 설계해 우리 브랜드를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페르소나 마케팅’이라 부른다. 마케터라면 고객을 끊임없이 이해하고 누구보다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마치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처럼 말이다. 평소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음악을 듣고 무슨 음식을 즐겨 먹으며 자주 사용하는 앱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에 수십 명의 가상 페르소나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연습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나도 어떤 브랜드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다.

개념을 확장해보면 페르소나로 구축된 나는 ‘나’라는 무언의 브랜드가 돼간다.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는 말을 요즘 ‘퍼스널 브랜딩’으로 많이 표현한다. 나는 나를 브랜드로 바라보는 연습을 자주 한다. 나는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공간으로 구성될지도 모른다. 내 성격을 보여주고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주는 브랜드를 찾아 소비하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브랜드가 빚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평소에 차분한 편이지만 작은 상황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격 때문에 무던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성격은 신뢰감을 줄 수 있는 향수로 표현한다. 불리 1803의 오 트리쁠 리켄 데코스, 르 라보의 어나더13, 탬버린즈 000으로 따뜻하지만 굳건해지고 싶은 마음을 온몸에 흩뿌린다.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이 감각되길 바라면서. 튀긴 싫지만 제 역할은 충실히 하는 성격은 늘 선택하는 색깔에 드러난다. 옷장에는 아이보리·베이지·브라운 계열의 의상이 잔뜩 걸려 있다. 최근에는 분홍색 고무장갑도 바라보기 힘들어 갈색으로 구매했다. 사계절의 옷이 일관된 취향인데, 매일 입어도 과하지 않고 나만 아는 세심한 디테일을 가진 브랜드를 사랑한다. 주로 킨더살몬, 파사드패턴, LE 브랜드를 즐겨 입는다. 집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도 외형적인 요소가 과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무인양품, 생활도감, 허스키(Huskee)에 손이 간다. 뷰티 브랜드는 코스알엑스와 멜릭서로 채워져 있다.

나라는 브랜드는 물건 소비를 넘어 경험 소비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평일에 회사로 출근할 땐 커피를 생명수처럼 마시지만, 주말에는 웬만하면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지 않는다. 맛은 기본이고 커피의 맛에 어울리는 잔부터 시작해서 채광이 드는 자리에 생기는 그림자, 커피의 맛을 살려주는 음악까지 신경 쓰는 카페를 간다. 최근에 방문했던 용산구에 위치한 헬카페 보테가는 커피잔을 돌로 만든 코스터 위에 올려준다. 차가운 음료와 따뜻한 음료의 코스터 온도가 다르다. 아이스커피는 막 냉동실에서 꺼낸 듯한 차가운 돌 위에 올려주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한 브랜드와 경험이 나라는 사람과 교감하고 애정을 만들어낸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각자의 관점으로 ‘김이서’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어렴풋이 그려질 것이다. 나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돼 경험하는 소비는 현실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그려준다. 나만의 브랜드 취향을 계속 쌓아가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도 나를 그 브랜드들을 통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이건 정말 이서 취향인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김이서(마이리얼트립 그로스 마케터)

「 살까 말까 할 땐 사세요 」
주니어 마케터 시절, 어떻게 하면 돈을 알뜰살뜰하게 모을까 고민할 때 계속 옆에서 “살까 말까 할 땐 사라”고 하고, 마케터가 얼마큼 경험하느냐에 따라 마케팅 실력도 차이가 난다고 하던 상사 덕분에, 나는 경험을 소비하는 것에 망설이지 않게 됐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오는 제품은 다 사보고 줄 서서 먹는 맛집도 꼭 가보고, 주말이면 어디든 여행을 떠났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줘야 할 마케터가 좋은 게 뭔지를 알아야 좋은 걸 선사할 수 있으니까. 나는 통장에 자산을 쌓는 대신 경험 자산부터 차곡차곡 쌓아갔다. 하지만 그냥 돈을 흥청망청 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경험한 것을 꼭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했다. 노트에, 인스타그램에, 유튜브에 기록하며 나의 경험을 기억해두고 사람들에게 공유하려고 했다. 특히 내가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은 소비할 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순간’이다. 마케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를 사기로 선택할 때 느끼는 감정을 역으로 써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이것을 나는 마케터의 ‘소비의 쓸모’라고 부른다.

나의 ‘소비의 쓸모’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해본다. 먼저 좋은 경험을 빨리 갖는 방법 중 하나는 최신 기술을 빠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애플에서 나오는 신제품은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구매하는 편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의 감각과 생활을 과거보다 좀 더 넓혀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에 다 와서 들어가려다가, 애플워치에 8천 보 걸었다고 나오면 2천 보 더 걷자 하고 집 주변 공원을 돌다가 들어가요”라는 애플워치 후기를 본 적 있다. 애플워치는 유저를 일부러라도 걷게 만들고 친구들과 운동을 함께 하는 재미를 주고, 운동하는 동안 심장박동 수를 체크해준다. 내 손목 위의 헬스 트레이너이자 주치의인 셈. 이런 애플워치는 내게 미래의 감각을 상징한다.

두 번째, 1년 전 우연히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을 봤다. MC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거리에서 즉흥적으로 시민을 만나며 다양한 질문을 하고 퀴즈를 내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연예인들의 관찰 예능,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를 보며 예능이 점점 나의 삶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유퀴즈〉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유퀴즈〉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다가 결국 티빙 구독권을 끊었다. 1회차부터 차근차근 보니, 유튜브에선 편집돼 보지 못했던 귀한 부분이 많았다. ‘독특한 이력서’, ‘소통의 기술’, ‘다양한 직업의 세계’, ‘그것이 알고 싶다’ 특집 등 평소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기획으로 우리의 삶을 조명하고 MC들의 질문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의 삶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천천히 매만져주는 일에 대한 감각. 그래, 기획은 이렇게 하는 거지!

마지막은 공간이다. 디앤디파트먼트는 2000년 일본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가 창립한 이래 ‘롱 라이프 디자인’을 기반으로 여러 나라에서 다채로운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브랜드다. 5년 전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를 읽고 디앤디파트먼트의 가치에 흠뻑 빠져 디앤디파트먼트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제주 탑동에 문을 연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의 디룸(d room)은 최근 몇 년간 경험했던 여행지 숙박 중 단연 최고였다. 호텔 같기도, 매장의 쇼룸 같기도, 제주에 사는 친구의 집 같기도 한 디룸은 커뮤니티 활동에 최적의 공간이다. 디룸은 다른 호텔처럼 긴 복도를 따라 배열된 객실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모든 객실 문을 중심부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향하게 했다. 어렸을 때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든다. 방 안은 마감 처리 없이 구조를 그대로 노출한 상태에서 침실과 욕실 등 필수적인 공간을 유닛으로 짜 넣은 흥미로운 구조였다. 숙박을 하면서 새 공간을 체험하는 팝업 스토어 같았다. 제주의 지역 특산물로 이뤄진 간식과 아이템, 숙박객들에게 제공되는 오가닉 소재 잠옷까지. 심지어 슬리퍼도 환경을 생각해 일회용 대신 매번 세탁해서 제공한다. 친구들은 말한다. “30만원이나 주고 왜 거기서 자. 그럴 바엔 호텔 가지.” 이곳은 호텔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30만원을 주고 와봐야 하는 것이다.

보통 좋은 경험은 값비싼 소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을 다수의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비싼 비용 정도야 공부한다 치고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다.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의 저자 마쓰우라 야타로는 좋은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진짜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상하는 정보만으로는 좋은 감각을 절대 기를 수 없다고 말이다.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인해 모든 것을 간접 경험하면서 직접 겪어봤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실제로 몸으로 부딪치고 만져보고 감각해본 진짜 경험들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 나의 소비는 ‘진짜 경험’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경험 자산이 모여 분명 마케터의 쓸모를 만들어낸다고 믿기 때문에. 이승희(프릳츠 마케터, 작가)

「 자본주의로 누리는 기쁨 」
작은 거 하나를 사더라도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어디서 사야 더 저렴한지, 배송은 얼마나 빠른지 이것저것 따져보는 내가 아까워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쉽게 돈을 쓰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나를 알아가는 데 쓰는 비용. 나는 이걸 ‘소크라테스 비용’이라고 부른다. 30년을 산 나에게도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워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에겐 어떤 게 어울리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꽤나 재미있다.

작년, 20대의 마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어 ‘시현하다’를 찾았다. ‘시현하다’는 틀에 박힌 증명사진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매력이 더 돋보이도록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으로 유명하다. 촬영하기 전에 나를 표현하는 색을 고르고, 70여 개 형용사 중에서 사진에 담을 키워드를 고른 뒤 작가님과 상의를 한다. 나는 ‘단정한’과 ‘발랄한’ 2가지 키워드를 골랐다. ‘단정한’ 나는 은은한 연둣빛 배경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정면으로 찍었고, ‘발랄한’ 나는 쨍한 주홍빛 배경에 살짝 고개를 틀어 보조개가 보이게끔 웃으며 찍었다. 분명 둘 다 내 얼굴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 나는 무채색만 좋아했는데 이런 쨍한 컬러도 꽤 잘 어울리는구나. 오른쪽 얼굴보단 왼쪽 얼굴이 더 마음에 드네? 이 정도 미소가 제일 예쁜 것 같아. 매일 보는 얼굴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올해도 30살이 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러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또한 나는 언젠가 “와인, 맥주, 커피, 차 중 하나는 즐길 줄 알아야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심취해서 아직까지도 나만의 음료 찾기에 목을 매고 있다. 이것저것 마셔봤지만 4가지 모두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와인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내 입은 맥주 맛에 둔했다. 위가 약해 커피는 자주 마실 엄두가 안 났고, 차는 그냥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딱 전통주 구독 서비스 〈술담화〉가 눈에 들어왔다. 와인, 맥주보단 생소한 분야라 아는 척하기도 좋아 보였고 ‘나는 막걸리를 좋아하니까 다른 전통주도 잘 맞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구독을 시작했다. 월 3만9천원의 구독료로 매달 3~4종의 전통주를 선물받는다. 진달래꽃이 들어간 약주, 예천에서 제조한 고급 증류주, 탄산이 톡톡 튀는 딸기 막걸리 등 종류도 갖가지다. 전통주별로 큐레이션 카드가 함께 오는데 이 카드엔 어떤 안주와 궁합이 잘 맞는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단맛·신맛·보디감·씁쓸한 맛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 보여준다. 어느덧 6개월 넘게 구독해보니 조금씩 내 취향의 술을 알 것 같다. 나는 탁주(막걸리) 계열을 좋아하고 과일 향이 섞이거나 탄산이 많은 것보단 밀크셰이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좋아한다. 그런데 또 모르지, 다음 달에 올 전통주가 내 인생 술이 될지. 한편 나는 평소 한 가지 취미 생활을 끈덕지게 하기보단 그때그때 관심 있는 것들에 깔짝거리는 성격이다.

문득 흥미로운 게 생겼는데 오래 할 자신이 없을 때 나는 원데이 클래스를 알아본다. 주로 프립(Frip) 앱을 이용한다. 심심하면 앱에 접속해 어떤 클래스가 있는지 둘러보고 그 시기에 내 관심사와 연관된 클래스를 예약한다. 재미있는 건,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원데이 클래스가 어느덧 나의 취미로, 일상으로 자리 잡곤 한다는 거다. 한번은 러닝이 궁금해서 남산 달리기 모임에 참가했다가 퇴근 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상쾌함에 중독돼 마라톤 대회에서 10km를 두 번이나 완주했다. 또 필라테스 동작이 우아해 보이길래 한번 체험해봤다가 은근히 재미있어 지금은 주 2회 꼬박꼬박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안 해봤으면 몰랐을 텐데 한 번만 해보면 안다. 아,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돈을 벌고 나서 좋은 점은 번 돈으로 마음껏 나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 내 취향, 내 장점에 대해 하나씩 발견하는 과정에 돈을 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장담컨대, 이 여정에 돈을 쓸수록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정말 돈 쓸 맛 난다! 김초희(오늘의집 마케터)

「 비누를 사기 시작했다 」
샴푸, 린스 대신 올인원 비누를 산다. 플라스틱 칫솔 대신에 대나무 칫솔, 옥수수 칫솔을 산다. 6개들이 생수병을 주문하는 대신 브리타 정수기를 사서 수돗물을 바로 받아 마신다. ‘인스타그래머블’한 ‘멋’을 위해 비싼 값에 구입한 이솝 핸드 워시 대신 비누 망과 비누를 산다. 최근 1년간 나의 소비 생활에 찾아온 변화다. 이런 변화가 오로지 나의 지성과 환경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나만의 변화가 아니라 팬데믹 시대를 맞이한 우리의 전반적인 변화다.

책 〈2021 트렌드 노트〉에서는 “포장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지는 것은 환경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 포장지를 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팬데믹 시대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에서 긴 시간을 머무르면서 온갖 배달과 배송으로 일회용 쓰레기를 스스로 부르고, 모인 쓰레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버리면서 쓰레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아니, 내 옆에 언제 그렇게 많이 있었어요? 썩지도 않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 당신이? 진정한 제로 웨이스트는 집에 이미 쌓아둔 ‘안’ 친환경 제품, 그러니까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제품을 쓰고 나서 시작할 수 있는 법. 집에 있는 샴푸를 다 쓰고 나서 도브 뷰티바를 샀다. 도브 뷰티바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닦을 수 있는 만능 비누다. 포장부터 가볍다. 달랑 한 겹의 종이 포장지를 열면, 비누가 무심하게 툭 떨어진다. 최근에 선물받은 러쉬 비누는 아예 조각 난 비누를 화려하고 예쁜 천에 싸서 판매하는 제품이다. 종이 쓰레기조차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제부터 나무 칫솔을 쓰겠다고 10개도 넘는 칫솔을 주문했는데, 하나하나가 개별 포장으로 배송됐을 때의 실망감을 생각하면, 친환경 브랜드의 마케팅은 이미 포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아로마티카는 친환경 제품을 만들면서 생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마저 마케팅에 활용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로마티카 SNS에서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투명 페트통에 생긴 작은 기포 자국을 찾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어쩌면 제품의 흠결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까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오히려 소비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영리한 마케팅이다. 소비자의 참여와 관련해서 브리타 정수기만큼 큰 이슈가 된 브랜드는 없을 것 같다. 수돗물을 받아서 바로 마실 수 있는 브리타 정수기는 한 달에 한 번 필터를 교체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필터 재활용이 되지 않아 그대로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해외와 동일하게 필터를 수거해 재활용해달라는 ‘브리타 어택’ 운동을 통해 브리타 정수기 이용자들은 2021년에는 필터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내놓겠다는 브리타 코리아의 답변을 받았다.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올해부터는 매달 하나씩 다 쓴 필터를 모아두고 있다.

이렇게 제법 성실하게 제로 웨이스트 소비자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듯 보이지만 역시 함정은 있다.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핑계로 친환경 제품을 ‘안’ 친환경적으로 계속 사게 된다는 것. 비누를 사고, 비누 망을 사고, 비누 받침을 사고…(비누 망에도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라고 해놓고 이게 다 뭔가, 이 넓은 지구에 나 한 명 플라스틱 덜 쓰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호프 자런이 책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 경고한 것처럼 ‘게으른 허무주의에 유혹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팬데믹 시대를 지나는 당신과 나의 소비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게 1천원짜리 비누 하나라 해도. 정현정(마케터,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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