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지금 유럽은] EU 한배 탄 유럽이지만.. 아직도 11개국이 입헌군주국

2021. 4. 2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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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의 찰스 왕세자를 필두로 영국 왕실 가족들이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영국 윈저성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 장례식에서 영구차로 사용된 랜드로버 차량을 따라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부군 필립공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국 왕실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다.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왕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신기술이 넘쳐 나는 21세기에도 지구상에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아시아의 경우 일본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 그리고 중동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모로코 등지에 군주제가 유지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군주제를 채택한 나라가 없지만 구대륙으로 간주하는 유럽에는 아직도 12개 나라에 군주가 존재한다. 바티칸 안도라와 같이 선거에 의해 군주가 정해지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룩셈부르크 모나코 리히텐슈타인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왕위계승형’ 군주국이다.

국가 형태는 크게 군주국과 공화국으로 나누고, 군주국을 다시 ‘인(人)의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절대군주국과 ‘법(法)의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현재 유럽 12개 군주국 중 바티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말은 아무리 왕이라 해도 국민투표로 정해지는 헌법의 범위 내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입헌군주국 내에서는 국왕이 “군림하되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말처럼 국민의 정신적 지주와 국가의 역사적 실체로서 주로 상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인류의 군집 생활이 시작되면서 권력 관계가 등장했고, 이 권력 관계가 구체적으로 제도화된 것이 바로 왕권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액튼 경(Lord Acton)이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고 말했던 것처럼, 왕에게 집중된 권력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 때문에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황제의 폭정을 경험한 로마인들이 권력의 적절한 분산과 상호 견제를 위한 삼권분립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즉, 종신직인 황제 대신 임기가 정해져 있는 집정관, 민회, 원로원이 공화정을 구성해 함께 로마 사회를 이끌어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삼권분립 체제도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의 균형이 깨지게 돼 당초 취지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군주제도는 민주주의라는 오늘날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내재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역사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주창한 변증법, 즉 정(thesis)-반(antithesis)-합(synthesis)의 원리대로 서서히 그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왕의 권력을 문서로써 제한하게 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바로 1215년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등장이었다. 영국 존 왕의 실정에 항거하는 귀족들이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입을 주도한 이 문건은 근대 헌법과 입헌군주제의 모태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이 문건을 통해 국왕의 무분별한 과세와 체포, 구금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교황이 유럽 전체를 사실상 지배하던 시대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를 거쳐 17세기 유럽에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강력한 절대군주의 시대가 펼쳐지기도 했다. 특히 1643년 5세 때 즉위해 72년간 군림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내가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접어들어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삼권의 분립을 강조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 국민주권을 강조한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 등이 발간되면서 군주와 국가의 권한에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의 이론적 기초가 마련됐다. 결국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혁명(1789)으로 왕정이 무너지게 되자 유럽의 군주국들은 공포에 떨게 됐다. 이들은 연합해 프랑스의 왕정복고를 지원했으며, 나폴레옹 몰락 이후에도 혁명 정신이 유럽에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19세기 내내 유럽에서는 공화제와 군주제의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다가 결국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그리스 왕국 등 유럽의 수많은 군주국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유럽 국가들은 공화국 또는 입헌군주국으로 진화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유럽의 왕실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덴마크 룩셈부르크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의 왕들이 나폴레옹의 부인이었던 조제핀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최근 유럽 내에서는 왕실의 존재 의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유럽의 왕족들은 대체로 유럽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기후변화 대응, 교통안전 제고, 인권 보호 등 오늘날의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의 발달 등으로 각종 스캔들, 가십들이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짐에 따라서 왕실의 권위와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하기도 한다.

이제 유럽연합(EU)이 하나의 배를 타고 함께 움직이고, 유로존에서는 화폐마저 통일돼 있어 자국민들도 특정국의 국민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의 유럽인이라는 의식이 더욱 강해짐에 따라 유럽에서의 군주제는 그 의미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어도 강력한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권위주의 정부의 지도자가 입헌군주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결국 이상적인 정치 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적절한 권력의 분산과 효과적인 상호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상식과 사회 정의에 맞게 합리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OECD 국제교통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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