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에 둘러싸인 조선시대 교육기관 양지향교

용인시민신문 이보라 2021. 4. 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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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문화유산 이야기] 처인구 양지면 조선시대 교육기관 양지향교

[용인시민신문 이보라]

평온한 분위기에 봄 만끽하기 좋아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양지향교는 1983년 9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됐다. 향교는 조선시대 국공립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했다. /사진 함승태 기자
ⓒ 용인시민신문
따듯한 햇살을 만끽하며 걷고 싶은 요즘이다. 화창한 날씨에는 근교만 가도 절로 기분 좋아지니 말이다. 여기에 근사한 경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고즈넉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일품인 곳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양지향교다.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용인향교가 도심 속에 있다면 양지향교는 조용한 작은 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양지향교 대성전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양지리 마을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다. 대단지 아파트가 없으니 맑은 하늘과 푸르른 자연을 만끽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홍살문을 지나 정문 오른쪽에는 200년 넘은 우람한 보호수가 한 그루 서 있다. 2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오롯이 지켜낸 뚝심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더 단단해지고 굳건해졌을 보호수를 매만져 보니 탄탄하고 견고했다. 양지향교를 가고 싶다면 대중교통보단 자동차로 한 번에 가는 게 더 편리하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이 방법이 여의치 않다면 대중교통도 있다. 82-1, 84-1번 버스를 타고 금륜사 정거장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양지향교 도착을 몇 발치 앞두고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양지의 중심 교동'이라고 쓰인 큰 비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향교가 있으면 으레 교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하마비 비석을 발견할 수 있다. 용인향교에도 있는 것으로 이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양지향교는 양지파인리조트에서 제법 가까운 편으로 리조트 방문객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 또 양지향교 5분 거리에 만화 '식객' 저자 허영만 작가가 극찬한 맛집도 있다고 하니 이곳에 들려 식사를 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산한 향교 산책에 근처 맛집 방문까지 하면 주말 나들이하기에 제법 괜찮은 코스이니 말이다.

◇조선시대 국립교육기관 향교
 
 위에서 내려다 본 양지향교. 앞에는 마을이,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사진 함승태 기자
ⓒ 용인시민신문
양지향교 정문을 들어가기 전 위풍당당한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대개 향교나 서원 능 앞에 설치된 홍살문은 붉은색은 귀신이 꺼려해 악귀를 물리치고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향교는 태조의 일읍일교 원칙에 따라 전국에 설치됐으며 경기도에만 27곳, 용인에는 용인향교를 포함해 2곳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양민 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고을 규모에 맞춰 향교 정원이 조정됐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 학생을 수용하도록 했다.
 
 양지향교 내부 모습.
ⓒ 용인시민신문
양지향교는 중종 1523년(중종 18년)에 지어졌으며 1697년(숙종 23년) 대성전을 고쳤고 1792년(정조 16년) 명륜당이 건립됐다. 그 후 1927년과 1967년, 1971년 다시 수리하는 등 몇 차례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됐다. 선명한 태극무늬가 그려진 양지향교 외삼문을 지나니 명륜당이 있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이던 것을 1971년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복원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또 대청좌우에는 온돌방이 위치해 있으며 방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온돌방에 들어가 당시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학교를 세워 교육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곳에서 학생들은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을 주로 배웠으며 조선, 중국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명륜당 뒤로는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전학후묘'라고 하는데, 이는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위치해 대성전과 함께 일직선으로 배치된 구조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2칸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앞쪽에 개방된 툇간이 있고 옆과 뒤쪽에는 방화벽이 설치돼 있다.
 
 300여년 세월을 이겨낸 느티나무가 향교의 역사를 말해준다.
ⓒ 용인시민신문
형태를 봤을 때 대성전은 1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공자를 위시한 5성과 10철, 송의 6현, 한국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8월 27일 석전제(공자 등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기관으로 역할은 상실했지만, 여전히 제사의 기능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성전 주변을 둘러보면 대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당시 유생들이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를 보면 올곧은 선비정신을 닦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향교 곳곳에는 고목들이 많이 보였다. 향교 길목에 있는 느티나무는 1700년경 당시 양지현감이 경관용으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300여년 넘는 세월을 이겨낸 나무에서 조상의 얼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마을 수호신 역할을 자처하며 크고 작은 일을 지켜봤을 것이다. 마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잔잔한 마을 풍경 감상하기에도 일품이다. 이목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없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따듯한 봄 햇살을 만끽하기에도 좋으니 이번 주말 가족과 양지향교로 나들이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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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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