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객석에서] 비올라에 녹여낸 용기와 재능..그래미도 찬사

최동현 2021. 3. 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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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 수상한 리처드 용재 오닐
'비올라와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수상 작품 뽑혀
전쟁고아 어머니·美조부모 헌신
미들네임 '용재'까지 재조명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2004년이다. 당시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의 촉망받는 연주가였다. 강효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의 부인이자 세종솔로이스츠와 당시 대관령국제음악제 행정감독인 강경원이 지어준 미들네임 ‘용재’도 화제가 됐다. 일찍이 구김 없고 또랑또랑한 그를 보니 ‘용기와 재능’이란 이름이 절로 떠올랐다고 한다.

KBS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용재 오닐의 삶이 방송되며 세종솔로이스츠와 링컨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에서 활동 중인 용재의 이름이 회자되고 뜨거운 호응으로 속편까지 제작·방송됐다. 팬카페에 1000여명의 팬이 순식간에 몰려들고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첫 독주회는 사흘 만에 티켓이 매진됐다.

2004년 8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세종솔로이스츠의 연주를 직접 관람했을 때도 그의 비올라 연주가 눈에 들어왔다. 민첩하고 씩씩한 움직임, 신중하면서도 자신감이 느껴지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용재 오닐의 이름은 다시 각인됐다.

그러나 용재 오닐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어머니 콜린 오닐은 전쟁고아로 1957년 미국에 입양됐다. 어머니는 어려서 열병을 앓은 뒤 정신지체가 생겼고 미혼모로 용재 오닐까지 낳았다. 장애로 용재 오닐을 돌보기가 여의치 않았던 어머니. 그러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정성은 친부모 못지않았다.

용재 오닐은 말한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고등학교 이전까지 레슨받던 장소는 차를 타고 왕복 네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여든이 넘은 외할머니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 길을 손수 운전하시며 10년 동안 한결같이 보살펴주셨다."

처음에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용재 오닐은 15세 되던 해 외조부와 이별했다. 더 큰 강으로, 그보다 더 큰 바다로 나아가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살림이 넉넉지 않다 보니 고학으로 비올라에 용기와 재능을 불태웠다. "비올라는 수세기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현악기다. 바이올린의 경우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에 기반한 주법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비올라는 20세기 비올리스트 출신 작곡가의 작품이 레퍼토리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낯설다. 나는 그 낯선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리처드 용재 오닐.(사진출처:크레디아)

고음악·무반주 앨범 등 도전
포토에세이·뮤직비디오 제작
젊은층 공략 위해 다양한 변화
40대 나이만큼 농익은 연주 기대

낯선 이국 땅에서 낯선 악기로 낯선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이방인. 그러나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비롯한 실내악 명곡들은 용재 오닐이 만들어내는 비올라의 음색으로 완성된다. 그의 연주는 전체적인 앙상블에 강렬한 구두점을 찍는다.

2005년 유니버설이 발매한 데뷔 음반에는 독일 함부르크 소재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홀에서 피아니스트 워런 존스와 함께 연주한 레베카 클라크의 비올라 소나타, 포레의 ‘꿈꾸고 난 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등이 수록됐다.

2006년에는 2집 ‘눈물(라크리메)’이 발매됐다. 2집에서는 본격적인 크로스오버 성향을 내비친다. 용재 오닐이 직접 편곡한 쇼스타코비치 재즈 모음곡의 ‘왈츠’를 비롯해 소르의 ‘라 로마네스카’,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클레냥의 ‘로망스 1번’ 등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한 슬픈 레퍼토리만 모았다. 여기에 앙코르로 수록된 ‘섬집아기’가 화룡점정이었다. 용재 오닐은 자신과 어머니에게 큰 버팀목이 돼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화장한 재를 바다에 뿌렸기 때문인지 공감하는 곡이라 말했다.

2007년에는 비올라로 해석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가 담긴 ‘겨울여행’, 2008년에는 고음악에 도전한 ‘미스테리오소’가 각각 발매됐다. 용재 오닐 초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앨범들이다. 그는 ‘미스테리오소’에서 조반니 토노니 비올라에 거트 현을 감아 바로크 활로 연주했다. "거트 현을 장착하고 연주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어려웠는데, 특히 높은 포지션을 연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손가락 아래의 현이 쉽게 미끄러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거트 현의 소리, 그 음색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뭐랄까. 따뜻하면서도 매우 독특하다. 이 음색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같은 해 용재 오닐은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서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을 협연했다.

2010년 ‘Nore_슬픈 노래’에서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브람스의 ‘4개의 엄숙한 노래’, 드보르자크의 ‘어머님이 가르쳐주신 노래’ 등 가사가 있는 노래를 비올라로 연주했다. 2011년 ‘Preghiera_기도’ 앨범에는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블로흐의 ‘기도’ 등이 수록됐다.

2012년 7번째 정규 앨범은 반주 없는 ‘Solo_솔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힌데미트와 레거의 ‘소나타’ 등에서 온전히 비올라만의 소리를 탐색하며 폭넓은 감성을 표출하는 데 성공했다. 2014년에는 데뷔 10주년 리사이틀을 열었다. 이어 2016년 ‘브리티시 비올라’ 앨범에는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만 수록했다.

영국은 라이어널 터티스, 윌리엄 프림로즈로 이어지는 거장 비올리스트들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 날씨는 미국 캘리포니아나 하와이와 다르다. 늘 비가 오고 축축하고 안개가 많이 낀다. 특히 외곽 지역의 알 수 없는 기후는 비올라의 느낌과 많이 닮았다."

많은 이가 용재 오닐의 비올라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마음을 움직이는 클래식 음악 세계에 대해 조금씩 느끼게 됐다.

리처드 용재 오닐.(사진출처:크레디아)

용재 오닐은 ‘앙상블 디토’의 간판이었다. ‘디토(Ditto)’는 콘셉트이자 브랜드다. ‘공감’이라는 뜻과 밝고 가벼운 연주곡,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의 의미를 가진다. ‘공감하는 클래식’ ‘밝은 클래식’을 모토로 2007년 용재 오닐이 결성한 앙상블 디토가 출발점이다.

용재 오닐은 공연 외에도 비주얼 퍼포먼스나 포토에세이, 뮤직비디오 제작 등으로 젊은 층을 공략했다. 2009년부터 디토 페스티벌 개최로 판을 더 키웠다. 티켓 사이트에서 디토의 구매자 대다수는 20~30대 여성이다. 이들의 지지로 디토는 2008~2009년 예술의전당 유료 관객 1위, 2007~2011년 예술의전당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투어 장소도 전국 10개 도시에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0년 일본에 진출해 도쿄·오사카 공연이 매진됐고 중국 상하이 공연도 다녀왔다. 2019년 해체 선언 이후 고별 공연까지 디토는 젊음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아지트였다.

용재 오닐이 클래식 입문의 당의정만 제공한 건 아니었다. 그는 코어 클래식의 주요한 인물로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2016년 에네스 콰르텟이 내한해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곡 연주를 선보였다. 제임스 에네스·에이미 슈워츠 모레티(바이올린), 용재 오닐(비올라), 로버트 드메인(첼로)으로 구성된 에네스 콰르텟은 놀랄 만큼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줬다.

2019년 용재 오닐은 그라모폰상 등 세계적인 음반상에 빛나는 타카치 콰르텟의 비올라 멤버로 가입했다. 지난해 6월부터 이들과 활동 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우리나라에도 다녀가길 바랄 뿐이다.

용재 오닐이 보여준 삶에 대한 긍정과 음악의 힘을 떠올리며 좀 더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도 같다. 이제 40대 초반의 용재 오닐. 좀 더 깊어지고 정열적인 연주를 펼칠 수 있는 나이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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