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품격①] 학폭‧왕따..햇빛에 부서지는 일그러진 상처

홍종선 2021. 3. 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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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2001년 작품..2021년 한국 현실을 깊숙이 투영

<편집자 주> 명작은 시대가 흘러도 명작입니다. 대중과 첫 만남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한 작품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때론 세세하게 때론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릴리 슈슈’의 노래를 사랑하는 14살 소년 유이치(이치하라 하야토)의 일상은 힘들다. 어릴 적 단짝 친구였던 호시노(오시나리 슈고)가 섬 여행을 다녀온 후 변했고, 이후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릴릴 슈슈’의 노래로, ‘릴릴 슈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사이트에서 위로 받는다. 그러나 호시노의 행동은 점점 그 정도를 더해간다. 호시노는 자신의 첫 사랑 쿠노(이토 아유미)를 괴롭히고, 츠다(아오이 유우)를 자살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노래에서 안식처를 찾지만, 그 역시도 녹녹치 않은 현실이 되어간다.”(줄거리)


류지윤 :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처음 봤을 때 너무 어둡고 우울해서 다시는 못 볼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그때 안보였던 것들이 조금 더 보이더라고요 학교 폭력(학폭) 이슈도 연결되고요. 그래도 여전히 충격적인건 등장인물들이 강간‧원조교제‧폭행을 저지른 나이가 중학생이라는 점이죠.


홍종선 : 일본의 경제나 사회 현상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나라에서 체감하게 되는 일들이 있는데. 20년 전 일본의 이야기가 10년 뒤쯤부터 우리의 현실이 됐고 그것이 5년 정도 전부터 사회 뉴스가 되다가 이번에 이렇게 대대적 폭로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지금 학폭 내용을 보면, 이미 초중학생 때 그런 행동들을 한 거잖아요. 학폭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이 영화가 반성과 위안이 될까 생각해 보게 됐는데, 학폭과 관련 없이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픈 학창 시절을 겪고 있는 청소년뿐 아니라 그 시기의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성인, 또다른 이유로 이 사회에서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아픈 영혼’을 위한 영화랄까.


유명준 : 국내에 왕따, 학폭 등의 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8년 정도인데, 이 영화 제작이 2001년이죠. 일본 왕따 문화가 국내 들어온 시점 이후 3년 정도 차이가 나죠. 그리고 국내 개봉이 2005년. 개봉 당시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교되기도 했죠.


류지윤 : 다들 아픔이 있는 캐릭터죠. 저는 쿠노가 삭발하고 나타났을 때 츠다가 죽은 것에 대한 위로를 받았어요.


유명준 : 이 영화는 ‘어느 나이 때 봤냐’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다르게 다가오죠.


홍종선 : 맞아요. 내가 30대에 봤을 때와 50대에 보니까 감정이 더 깊게 다가오니까.


류지윤 : 사실 저는 20대 ‘러브레터’ ‘4월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기대하고 봤다가 생각보다 너무 우울해서 ‘쉽게 감당할 영화가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던 기억도 있어요.


홍종선 : 이와이 슌지에게는 ‘화이트 슌지’라 불리는 밝은 영화들,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등이 있죠. 이조차 아픔을 간직한 어른들이 나오니까. 처음 슌지를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를 본 뒤 ‘릴릴슈슈’를 보면 놀라죠. ‘화이트 슌지’가 아니라 ‘블랙 슌지’를 만나니까. 그런데 이와이 슌지 감독은 자신의 ‘유작’으로 무얼 꼽겠느냐고 했을 때,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꼽았어요. 그건, 원래 내 색깔은 블랙이다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아픈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걸 꼽은 게 아닐까 싶어요.


유명준 : 다시 보면서 저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인 것도 놀라웠죠. ‘아픈 영혼을 위로한다’는 생각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폭력적이에요. 강간, 원조교제, 학폭 등.


홍종선 : 상당한 수위의 폭행이 나오고 그 주체가 중학생인데 15세 관람가. 짧은 생각으로는, 유명 감독이고 직접적 폭행 표현은 피했고. 이런 기계적 잣대로 판단한 게 아닐까 하네요.


류지윤 : 너무 잔혹한 상처들을 담고 있긴 한데, 이야기는 잔혹하지만 영상이나 음악들로 동시에 치유하고 있는 느낌도 있죠.


유명준 : 그게 참 묘한 결합. 폭력적인데, 영상미와 음악은 다른 방향으로 가니.


홍종선 : 강간의 장면을 핸드 헬드로 찍고, 하얀 솜 위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그때 드뷔시의 피아노 아라베스크 1번 마장조가 흐르게 하는. 그래서 더 비극적이고 더 아프긴 한데, 음악이 주는 위로 효과가 있고. 이와이 슌지는 ‘하나와 앨리스’를 비롯해 많은 영화의 음악을 직접 작곡할 만큼, 음악 역량이 있고 그래서 슌지 영화 볼 때는 음악에 더욱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유명준 : 게다가 유이치와 호시노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첫 사랑 이야기하는데, 화면은 쿠노 강간하는 장면을 내보내고.


류지윤 : 그리고 츠다가 자살하기 전에 날고 싶다고 해맑게 웃다가 바로 죽은 장면을 주는 반전? 이런 연출도 이와이 슌지 감독 장기인 것 같아요. 그때 흘러나오는 노래가 ‘날 수 없는 날개’.


홍종선 : 이와이 슌지는 이야기를 전함에 있어 스토리 자체보다 감정 전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그 혼란과 아픔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그래서 형식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핸드 헬드 촬영, 음악, 편집 등을 통해서.


유명준 : 영화를 보고 다시 검색을 해보니, 네이버 지식인에 영화를 해석해달라는 질문이 많더군요. 도대체 왜 유이치가 호시노를 죽였냐, 츠다는 왜 자살했냐, 쿠노는 왜 머리를 밀었냐 등등.


류지윤 : 저는 호시노가 왜!! 그렇게 갑자기 나빠졌는지가 아직도 의문이죠.


홍종선 : 츠다의 극단적 선택도 그렇고 슌지 영화에는 비관적 결말을 보이는 인물이 거의 꼭 있어요. 또 해피엔딩도 마냥 해피엔딩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마냥 새드엔딩도 아니고. 뭐랄까, 인생이 그렇잖아요, 인생에 가까운 그대로 영화지만 인생처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정적 사건들을 하나하나 우리가 얘기해 볼 필요도 있지만, 거꾸로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게 슌지 영화다 싶어요. 불안과 혼란과 혼돈, 자신만의 에테르가 깨진 사람에게 논리가 있다는 게 어불성설 아닌가 싶어요.


류지윤 : 슌지 감독이 이 영화 만들기 전에 ‘릴리 슈슈’ 팬페이지 만들어서 글 올리고, 그걸 소설로 냈다는데 그걸 읽으면 영화가 조금 더 친절할 거라고는 하더라고요.


홍종선 : 이 영화가 게시판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것이 소설로 옮겨지고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이것을 보는 주요 관객을 중고등학생으로 보기보다 아직 치유해야 할 아픈 영혼을 지닌 어른으로 상정한다면. 그 시절의 기억들은 짜깁기처럼 그렇게 토막토막, 조각조각 어지러운 부분도 있잖아요. 그런 제작 과정을 거친 영화이고, 그래서 게시판 글이나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적으로’ 존재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유명준 : 중학교 때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만나면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어”라는 말로 시작하면, 서로 다른 기억들이 충돌하고, 해석하고.


홍종선 : 맞아요. 그런 기억을 끄집어낸 것 같은 이야기와 화면이죠. 그러나 추억 속 음악은 선명하고. 생각보다 소소한 일들은 기억이 선명한데 충격적 사건들은 희마해요. 뿌옇고.


유명준 : 어쩌면 10대나 이제 갓 20대가 된 친구들이 보면 이상한 영화일 수 있죠. 연결도 부자연스럽고 혼란스럽고. 30대 이상이라면 끊기거나 희미한 부분에서 상상력을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류지윤 : 1020들에게는 이런 호흡이 낯설 것 같긴 해요.


홍종선 : 이와이 슌지 감독이 시노다 노보루 촬영감독이랑. ‘언두’ ‘러브 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뿐 아니라 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도 함께했는데. 유난히 햇빛이 비치면서 초점이 흔들리고 뿌연 장면이 많잖아요. 두 감독이 자연광을 좋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런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한 형식과 아름다운 조명이라고 생각해요.


류지윤 : 맞아요! ‘립반윙클의 신부’도 자연광을 엄청 활용했더라고요 핸드헬드랑. 분명 빛인데 그 어떤 조명보다 주인공들 상처가 부숴 지는 느낌?


홍종선 : 그게 과거 이야기에 맞기도 하고, 몸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른 우리의 아픈 영혼을 위로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인간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린 핸드 헬드처럼 불안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햇빛처럼 반짝반짝 따스하기도 하잖아요.


유명준 : 너무 확대해석일 수 있지만, 자연광은 10대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죠. 친구들과 만나고 어떤 공간 밖에서 움직이고. 그래서 오히려 10대의 이야기가 한 공간에 있으면 어두워요. 마치 호시노가 친구들과 트럭 안에 있었던 것처럼.


홍종선 : 우리가 슌지 영화를 굳이 ‘화이트 슌지’ ‘블랙 슌지’로 나누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두 색깔 모두 우리에게 비타민이 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너무 슬픈 사람에게 좀 웃어보라고 밝은 영화 보게 하는 것보다는 블랙 이와이 슌지를 만나는 게 위로가 되고, 다시 일어서 힘이 될 수도 있어요.


유명준 : 만약 이 영화가 2021년에 다시 극장 개봉을 한다면?


홍종선 : 극장 개봉이라. 그 위로의 진의는 가려지고 학폭 폭로가 무슨 유행이냐, 영화까지 장르 맞추냐. 심기 불편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류지윤 :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는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저력을 아는 사람은 환영하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마주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씀대로 불친절한 쪽은 자신의 상상력을 개입시켜야하니까. 의식의 흐름대로 볼 수 없는 영화. 그럼에도 용기내서 꺼내보고 싶은 영화!.


홍종선 : 좀 소소한 얘긴데. 온라인에서 가명 아이디로 인물들이 주고받는 얘기들. 거기에 영상이나 대화로 다 표현되지 않은 주인공의 심리나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이 드러나는데. 그 방식이 블랙 화면에 흰 글씨로 타자 탕탕탕. 그게 좋더라고요. 요즘엔 너무 CG가 발달돼서 너무 예쁘게 대화창으로 표현되잖아요. 달달 꽁냥꽁냥은 괜찮은 심각한 대화가 나올 때도요. 언제나 내용에 걸맞은 형식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그 온라인 대화 처리 화면을 보며 생각했어요.


<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


홍종선 : 조금만 천천히 내 아픔을 보내도 된다, 빨리 잊으려 하면 평생을 되살아온다. 이와이 슌지를 조금만 천천히 평가해도 된다, 단숨에 접어 버리기엔 괜찮은 감독이다.


류지윤 :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 릴리 슈슈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이해되는 영화, 유이치, 호시노, 쿠노, 츠다에게 그랬듯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릴리 슈슈’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유명준 : 2시간 25분을 보고 다시 2시간 25분 동안 멍해지는 영화. 오래전 영화인데 여전히 아프고 치유되는 과정에 몰입되는 이유는 여전히 내가 성장기인 듯.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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