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한방울까지 쥐어짠다" 일본도 못구한 'K주사기' 정체

황수연 2021. 2.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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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쓰일 최소잔여형(LSD) 주사기. 사진 대한간호협회 제공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나흘 앞두고 최근 ‘K방역’의 또 다른 주역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 있다. 백신 접종에 쓰일 주사기인데, ‘특수 주사기’ ‘쥐어짜기 주사기’ ‘K주사기’ 등으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이 주사기를 만드는 풍림파마텍이란 업체를 찾아 “진단키트에 이어 K방역의 우수성을 또 한 번 보여주게 됐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주사기의 공식 명칭은 ‘최소잔여형(LDS·Low Dead Space) 주사기’다. 2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우리는 국내 업체 신아양행과 두원메디텍 두 곳으로부터 LDS 주사기 4000만개를 공급받기로 지난달 계약을 끝낸 상태다.

일반 주사기 VS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양동교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자원관리반장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1월 26일에 국내 업체 2개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방문한 풍림파마텍과는 정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이 업체가 12만개 정도의 주사기를 기부하겠다고 밝혀, 초기 접종에 사용할 계획이다.

LDS 주사기가 일반 주사기와 다른 점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액체를 주입하거나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주사기 피스톤(밀대)과 바늘 사이에 남는 공간을 최대한 줄여 쓰지 못하는 백신의 양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일반 주사기는 주사침과 실린더(주사기 몸통) 사이에 공간이 있고, 여기까지 백신이 채워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스톤을 끝까지 밀어도 해당 부분의 약물은 밖으로 나오지 않아 결국 버려지게 된다.

대한간호협회 취업인력교육센터에서 간호사들이 백신 접종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대한간호협회 제공


방상혁 신아양행 대표는 “일반 주사기는 바늘이 주사기 몸통에 바로 삽입돼 있지 않다. 플라스틱으로 된 ‘허브’라는 곳에 바늘을 고정하고, 이 허브를 주사기에 조립하게 돼 있기 때문”이라며 “LDS 주사기는 허브라는 부품을 없애고, 침을 바로 주사기 몸통에 삽입하기 때문에 피스톤과 바늘 사이 공간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주사기 내부 빈 곳이 없게 만들어 한 방울까지 밀어내 쓸 수 있도록 쥐어짜는 것이다. 일반 주사기처럼 허브는 그대로 놔두되 주사기 안의 검정색 고무패킹(가스켓)을 활용해 빈 공간을 최소화하는 형식의 LDS 주사기도 있다.

허브 부품은 그대로 두되, 고무패킹(가스켓)을 활용해 빈 공간을 줄이는 형태의 최소잔여형(LSD) 주사기. 자료 식약처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mL 주사기를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불필요한 공간 탓에 주사기 내부엔 채워지지만 실제로는 쓸 수 없고 버려야 할 잔여액이 일반 주사기의 경우 70㎕(마이크로 리터, 1㎕는 0.001mL)나 된다. 백신이 담긴 병에서 1회 투여량 만큼(0.3mL)만 뽑아내도 결국 70㎕까지 더해진 양이 주사기 내부에 담기는 것이다.

LDS 주사기는 이런 누수분을 25㎕ 이하로 확 줄였다. 일반 주사기와 버려지는 양이 3배 차이다. LDS 규격 기준으로 그렇고, 실제 국내 업체가 만든 LDS 주사기는 누수분이 5㎕도 채 안 된다고 한다. 신아양행 측이 한국화학시험연구원에 맡겨 남는 양을 실측해봤더니, 4㎕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왔다. 사실상 남는 양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일반 주사기(위쪽)과 LSD 주사기. 일반 주사기에는 파란색 부분(허브)가 있어 백신 잔여액이 LSD 주사기의 3배 정도 된다. 사진 신아양행 제공


방 대표는 “규격상 버려지는 양이 25㎕ 정도 되면 LDS 주사기로 보는 것인데, 실제 우리 제품으로는 4㎕밖에 안 된다는 것”이라며 “버려지는 양이 무시해도 될 만큼 적어 5명 걸 뽑아 쓰고도 1명에 맞힐 양을 더 뽑아 쓸 수 있단 얘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은 타 백신과 달리, 유리로 된 바이알 상태로 들어와 주사기 여러 개로 나눠 담는 분주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 주사기로는 분주를 통해 5명에게밖에 쓸 수 없는데 LDS로는 6명까지 쓸 수 있으니 백신을 20% 추가 증산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이달 초 신아양행을 방문한 자리에서 “LDS 주사기는 하나의 바이알에 담긴 백신을 한 분이라도 더 투약할 수 있도록 제조됐다”며 “백신 접종 효율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LDS 주사기는 원래 값이 바싸거나 생산량이 부족한 치료제를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투약하기 위해 개발됐다.

방 대표는 “1995년 미국에서 신장병 환자에 고가의 주사 약품을 주사하기 위해 버려지는 걸 최소화하는 주사기를 만들어 달란 수요가 있어 만들게 됐다”며 “이후 LDS 형태 주사기는 주로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주사기로 쓰였다”고 말했다. 가격은 일반 주사기와 비교해 1.5~2배 정도 비싸다고 한다.

방 대표는 “5개월간 정부에 1250만개를 납품하기로 수의계약을 맺었고, 초기 물량으로 2월 말까지 250만개를 공급한 뒤 6월 말경 500만개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원메디텍 측에선 2500만개가량 납품한다.

지난 17일부터 화이자로 접종을 시작한 일본에선 이 주사기를 사전에 확보하지 못해 1바이알당 5명분만 쓰겠다고 밝혔고, 화이자 백신 7200만명분 중 1200만명분을 폐기하게 되면서 일본 국민의 공분을 샀다. 방 부사장은 “일본 바이어(구매자) 쪽에서 문의는 많이 오고 있다”며 “다만 인허가 문제가 있어 실제 발주, 판매로 연결되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일단 풍림파마텍 측에 8000만개의 LDS 주사기 구매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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