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건물이 예술가 서점으로.."핫플 됐지만 밥벌이 고민"

김준희 2021. 2.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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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선미촌 '물결서사'
시인 임주아 대표 인터뷰
책방 서가를 정리하는 물결서사 임주아 대표. [사진 물결서사]


성매매 업소가 예술가 서점으로 탈바꿈

"핫플레이스가 됐지만, 밥벌이는 고민이에요."

동네책방 '물결서사' 대표인 임주아(33) 시인의 말이다. 물결서사는 성매매 집결지인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한복판에 2019년 1월 문을 연 예술가 서점이다.

임 대표와 고형숙(한국화가), 김성혁(성악가), 민경박(영상작가), 서완호·최은우(이상 서양화가), 장근범(사진가) 등 전주에 뿌리를 둔 30~40대 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물왕멀팀'이 뭉쳐 만들었다.

임 대표는 지난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물결서사가 과거에는 없던 판을 짜고 일을 벌여왔다면 올해는 그것을 정례화하고 내실화할 때"라며 "멤버들이 2년여간 해온 작업물을 모아 결과물로 내놓고 수익 창출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전주시 완산구 서노송동 '물결서사' 앞에서 운영진 7명이 마스크를 쓴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소설가 방우리, 화가 서완호, 극작가 송지희, 시인 임주아, 시각디자이너 장혜지, 비보이 장영준, 테너 조현상. [사진 물결서사]



"예술가 성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물결서사에 따르면 책방 이름은 도로명 주소 '물왕멀'에서 따온 물 이미지와 서점을 뜻하는 '서적방사'의 줄임말을 결합해 만들었다. 서점이 있는 건물도 애초 성매매 업소였다. 폐업 후 주택 창고로 쓰이다가 예술가들이 전주시에 제안해 예술가 서점으로 탈바꿈했다.

전주시가 도시 재생 사업인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사들인 옛 성매매 업소 중 건물 하나를 작가들에게 빌려줬다. 작가들은 건물 개조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말 물결서사 초창기 운영진 7명 중 5명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나이도 20~30대로 더 젊어졌다. 선미촌에서 나고 자라 물결서사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성악가 조현상(29), 물결서사에 반 년간 상주하며 글을 써온 소설가 방우리(30), '맥스 오브 소울'이라는 팀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비보이 장영준(27), 창작극회 소속 극작가 송지희(26), 물결서사 최연소 운영자인 시각디자이너 장혜지(24)가 주인공이다.

선미촌 골목에 있는 이웃집. 서완호 화가 작품. [사진 물결서사]
물결서사 골목 옆 성매매 업소 건물. 책방 문을 닫을 때쯤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고형숙 화가 작품. [사진 물결서사]


성악가·화가 등 7명이 공동 운영
임 대표는 "우리가 2년 넘게 열심히 길을 닦았으니 이 값진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잠재력 있는 후배 5명을 물왕멀팀 새 멤버로 섭외했다"며 "새롭게 합류한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선미촌에 녹아들도록 선배 2명(임 대표와 서완호 화가)은 물결서사에 남았다"고 했다.

물결서사는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시낭독회·워크숍·세미나·작품 전시·판매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해 사람을 끌어모았다. 지명도가 낮아 설 무대가 적은 무명 예술가들에게는 공연·전시 공간을 내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주에 가면 꼭 들러야 할 '핫플레이스'가 됐다.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선미촌이 '사람 사는 동네'라는 메시지를 알리며 침체의 늪에 빠진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반면 과제도 적지 않다. 임 대표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아직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청년 예술가들의 꿈과 고민은 뭘까.

다음은 임 대표와의 일문일답.

물결서사 내부 모습. [사진 물결서사]



"침체 늪 빠진 선미촌에 활기 불어넣어"

Q : 일반 서점과 다른 물결서사만의 매력이 있다면.
A : A : "우리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다. 물결서사는 청년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대안 공간 성격의 동네책방이다. 예술가 7명은 책방의 북큐레이터이자 선미촌 해설사다. 물결서사에 오면 문학·디자인·미술·음악·연극·춤 등 각자 영역에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젊은 책방지기를 만날 수 있다. 또 이들이 기획한 공연·소모임·작가와의 만남·창작 워크숍 등 크고 작은 예술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성매매 집결지 안에 들어와야 책방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물결서사의 빼놓을 수 없는 정체성이다."

Q : '성매매 집결지에 있는 예술가 서점'이란 유명세를 얻었다. 명과 암이 있을 것 같다.
A : A : "오랜 세월 외면당한 동네에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책방이 생기자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심 속 외딴 섬 같던 선미촌이 문화·예술의 힘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결서사는 비빌 언덕 없는 젊은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제도 많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아직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거의 없었다. 공들여 기획한 작가와의 만남과 정기 워크숍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2년 동안 '언 땅'에 헤딩하고 이것저것 시도해 본 테스트베드 시기는 끝났다. 지금부터가 진짜 실전이고 장사다."

지난해 12월 물결서사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열린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 김진섭(오른쪽) 대표와 제자 이승희씨의 북토크. [사진 물결서사]



"수익 창출 과제…작품 모은 잡지 낼 터"

Q : 물결서사의 경쟁력은 뭔가.
A : A : "가성비의 시대, 사람들에겐 똑같은 물건을 얼마나 더 싸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동네책방은 책의 공급률 기준부터 이미 망가진 운동장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들여오는 금액이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보다 훨씬 높다. 그러므로 동네책방은 정가를 따를 수밖에 없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그나마 동네책방이 보호를 받는 측면도 있다. 올해 물결서사는 돈도 되고 의미도 있는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새 멤버들은 유튜브에 관심이 많다. 각자 코너를 만들어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브이로그(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 등 물결서사 관련 영상을 올릴 수도 있다."

Q : 그간 일군 성과와 계획이 있다면.
A : A : "지금까지는 선미촌에 청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책방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SNS에 물결서사를 홍보하면서 선미촌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성악 공연, 시 낭독회 등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책방이 시끌벅적하도록 궁금한 행사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면서 책방에서 고정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뭔지 가늠했고, 물결서사다운 콘텐트는 무엇인지 실험했다. 동네에서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토대로 완성한 시·그림·음악·영상 등을 SNS에 연재했다. 올해는 이 작품들을 모아 한 권의 잡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제는 물결서사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만큼 우리 작품과 그간의 기록을 저장하는 온라인 아카이브(창고)를 만들고 싶다. 책 쇼핑몰도 겸한 홈페이지를 구상 중이다."

지난달 19일 물결서사를 찾은 '고양이 손님'. 극작가 송지희씨가 찍었다. [사진 물결서사]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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