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대하사극 명맥을 이으려면..

박민지 2021. 1.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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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후 뚝 끊긴 사극.. 양승동 사장 "올해 부활시킬 것"
수신료 인상 만이 문제 아냐.. 시청자 안목·플랫폼 다변화 등 요소 모두 고려해야
KBS가 2016년 KBS 1TV '장영실' 이후 명맥이 끊긴 대하사극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S 제공

“현재 재정상태로는 어렵습니다만, 내년에는 대하사극을 부활시키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양승동 KBS 사장이 한 말이다. “공영방송 KBS가 대하사극을 중단하면 안 된다”는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한 답이었다.

1980년대부터 꾸준했던 KBS에서 대하사극이 사라진 지 5년. 2016년 KBS 1TV에서 방송한 ‘장영실’이 마지막인데, 그마저도 24부작에 그쳤다. 초기만 해도 50회 정도였던 대하사극은 1990년 후반~2000대 초반에는 100회 이상을 끌어갈 정도의 전성기를 맞았다. ‘용의 눈물’(159부작·1996~1998)과 ‘왕과 비’(186부작·1998~2000)의 잇단 성공을 발판으로 ‘태조 왕건’(2000~2002)의 경우 200회로 제작되기도 했다. 대하사극을 제작하고 방송할 의무가 있는 공영방송 KBS의 고민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사장이 직접 부활을 언급한 올해는 맥 끊긴 대하사극을 만날 수 있을까.

KBS 대하사극 '태조왕건' 중 한 장면. 화면 캡처
PPL 어려운데… 문제는 ‘돈’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양 사장이 올해 대하사극을 부활하겠다며 내건 전제는 수신료 인상이다. 대하사극은 의상, 세트 등 역사 고증 비용이 상당하고, 빈번히 등장하는 전쟁 장면의 경우 막대한 인건비, 당시 교통수단이었던 말 대여비 등 높은 제작비가 요구된다.

하지만 현대극과 달리 PPL(간접광고)에는 제약이 많다. 역사 속 장면에 현대 상품을 전시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사극의 경우 주로 방송 전후 CF 등으로 이익을 남겼는데, 평균 시청률이 30% 이상은 나와야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하사극을 제작하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수출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KBS 대하사극의 경우 2007년 ‘대조영’을 시작으로 일본 수출을 시작했다. 2012년 ‘대왕의 꿈’, 2014년 ‘정도전’, 2015년 ‘징비록’까지 이어졌고, 2016년 ‘장영실’은 중국, 태국, 홍콩, 호주 등 총 12개국에 수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방 콘텐츠가 제한적이었던 OTT 대중화 이전이었기에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은 웰메이드 콘텐츠가 홍수를 이루고 있어 OTT에서 대하사극이 경쟁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국내 대하사극이 OTT를 통해 해외로 진출한 사례는 1건도 없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K드라마의 명성은 ‘겨울연가’ 등 로맨스에 국한됐다가 최근에야 ‘킹덤’ 등으로 장르가 확장했다”며 “좀비처럼 해외에서 통하는 장르물이 아닌 이상 아직 세계는 한국의 현대극 특히 로맨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킹덤’의 배경이 조선시대였고 ‘K갓’ 열풍이 불었던 점을 보면 향후 탄생할 사극의 앞날이 어둡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KBS 대하사극 '왕과 비' 중 한 장면. 화면 캡처
넷플릭스의 등장과 대하사극의 과제
대하사극이 5년간 숨 고르고 있던 새 빠르게 변화한 콘텐츠 향유 방식은 성패 요인으로 꼽힌다. TV드라마는 24부작에서 20부작으로 또 16부작으로 점점 회차를 줄였지만 시청자는 이마저도 지루해 했다. 짧고 밀도 높은 20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로 감상 방식이 재편됐고, 이를 원하는 시간에 틈틈이 찾아보는 추세다.

변화의 중심에는 넷플릭스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는 6~10회 정도이고, 반향에 따라 시리즈로 제작한다. 드라마 관계자는 “대하사극이 시청자의 달라진 감상 방식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다른 장르들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틀을 갖춰가고 있는데, 사극의 경우 퓨전 외에는 시도조차 없었기 때문에 OTT로 어떻게 마케팅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시청자의 안목도 올려놨다. 예전에는 콘텐츠 선택 폭이 좁아 방송사가 제공하는 재현 수준의 사극에 만족했으나 지금은 ‘스파르타쿠스’ ‘롬’ 등 해외 유수의 사극 작품을 접한 상태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존 연출기법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현재 가장 활발히 소비되는 장르물의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총동원하지만 사극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풀어낸다는데 방점이 찍혀있어 풍부한 만족감을 줄지도 미지수다.

소재 발굴도 과제다. 극적인 요소를 지닌 역사적 사건은 이미 작품으로 여러 번 다뤄졌다.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재발견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고증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드라마 관계자는 “향후 제작될 사극의 경우 OTT 수출을 전제해야 하므로 더 높은 작품성이 요구된다”며 “방송사가 사료 검토, 대본 작업 시간 등을 충분히 보장할 여력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대하사극의 부활은 국내 드라마 생태계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드라마 관계자는 “대하사극은 균형적·기록적·교육적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현재 사극에 대한 갈증이 커 큰 관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제작비 충당만 염두에 둬서는 안 된다. 수신료 인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시청자의 안목과 플랫폼 다변화 등 여러 변수를 검토해야 이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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