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대차법 5개월..월세로 내몰린 벼랑끝 세입자들
서울선 월세 300만원 줄잇고, 외곽서 30평 월세 100만원 속출
집주인 세부담 첩첩산중에 월세 전가까지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서울 한 아파트에서 전세 5억원으로 살던 40대 세입자 A씨는 지난해 12월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과 재계약했다. 보증금은 그대로 둔 채 월세를 80만원 내는 반전세 조건이었다. 재계약 전 A씨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겠다고 하자 집주인 B씨가 "경기도에 사는 아들을 입주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결국 월세로 집주인을 달랬다. 인근 전세는 2년 사이 2억원 넘게 오른 데다 매물이 씨가 마른 탓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A씨는 "전세보증금 대출 이자까지 합쳐 만만치 않은 돈을 매달 지출해야 하니 내 집 마련은 더 멀어졌다"고 말했다.
전국 주택 매매ㆍ전세ㆍ월세가격이 일제히 급등하면서 세입자들이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종잣돈을 모으던 전세입자는 매매가 인상에 좌절하는 한편 월세까지 내게 된 상황이다. 전ㆍ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골자로 한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5개월 동안 전세입자가 월세시장으로 내쳐지는 등 주거 사다리 붕괴가 가속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세대란이 월세대란으로 번지면서 서울 강남ㆍ북권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고가 월세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외곽에서조차 30평대 기준 100만원이 넘는 월세 거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서울 관악구 남현동 남현한일유앤아이 84㎡(전용면적)는 지난해 12월 보증금 2억5000만원, 월세 11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4월 같은 면적이 같은 보증금, 월세 70만원에 거래됐는데 8개월 만에 월세가 60% 가까이 오른 셈이다. 지난해 12월에만 서울 중랑구 면목동 용마산하늘채 84㎡, 강북구 미아동 미아1차 래미안ㆍ두산위브트레지움 84㎡ 등이 월세 100만~135만원에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
이 지역 고가 월세 대부분은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새 임대차법 여파라는 것이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남현동 C 공인중개사사무소(공인) 관계자는 "전철역과 가까워 원래 전세 매물이 귀한 단지인데 새 임대차법 이후 매물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며 "100만원 넘는 월세도 마다 않겠다는 대기자들이 있지만 지금은 월세 매물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주변부에서는 월세 300만원 이상의 고가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성동구 옥수동 옥수파크힐스 115㎡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보증금 5억원, 월세 310만원에 계약서를 썼다. 1년여 전 같은 보증금에 월세가 250만원이었는데 단숨에 60만원이 뛰었다. 이 외에 옥수리버젠 84㎡, 종로구 평동 경희궁자이 84㎡ 등 30평대 매물이 지난달 월세 300만원에 거래됐다.
강남권에서는 500만원 이상의 초고가 월세가 속출하고 있다. 우수한 학군과 학원가가 밀집한 대치동의 경우 임대 매물이 희소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161㎡는 지난해 11월 보증금 5억원, 월세 720만원에 계약됐다. 같은 면적, 같은 층이 지난 7월 보증금 3억원, 월세 700만원에 계약됐는데 4개월 만에 보증금 2억원이 오르고 월세까지 20만원 얹어지며 이 아파트 최고 월세를 경신했다.
월세 급등은 정부의 보유세 강화에 따른 집주인들의 세 부담 전가까지 겹치며 시장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D 공인 대표는 "앞으로 고가 주택의 보유세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려 세금을 내겠다는 집주인도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마땅한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올해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크게 줄어 임대시장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입주 물량은 15만1698가구다. 지난해 18만 7686가구 대비 3만6000가구가량 적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ㆍ보유세 강화 등 현재 기조를 유지하는 한 주거 사다리 붕괴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 연구소장은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서울 전세 물량이 급감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부동산시장이 아수라장이 됐다"며 "전셋값이 오르는 한편 보유세 부담이 월세로 전가되면서 주거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설 연휴 전 정부가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공급 대책을 또 다른 변수로 꼽는다. 연말ㆍ연초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떨어진 결정적 원인의 하나로 부동산시장 불안이 지목된 이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초부터 모든 정책 역량을 투입해 반드시 그리고 확실하게 부동산시장 안정화가 이뤄지도록 진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시장 안정으로 국민의 근심을 덜어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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