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역 글램핑·배식로봇..내년 일본서 뜬다
2021년에는 어떤 ‘신상’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을까. 일본 경제·트렌드 전문지 ‘닛케이트렌디’는 최근 ‘2021년 일본 히트 예감 상품 30가지’ 리스트를 발표했다. 새해에 일본 시장에서 ‘뜰 만한’ 상품이나 이벤트를 영향력, 신규성(참신성), 판매 경향 등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저출산·고령화, 비혼·1인 가구 증가 등 일본과 트렌드가 비슷하게 흘러가는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
▶日 히트 예감 상품 Top10은
▷캠핑카 이어 ‘밴박’, 서빙 로봇 ‘서비’…
2021년 히트 예감 상품 30가지 중 절반 가까이가 코로나19 관련 상품이다.
1위부터 그렇다. 닛케이는 ‘인적이 드물어 감염 우려가 적은 무인역(無人驛)에서 글램핑을 즐기는 문화’를 2021년 최고 히트 예감 상품으로 꼽았다. 이용객이 일평균 10명에 불과한 JR조에츠선의 도아이역(군마현 미나카미마치). 지상에서 486개 계단을 내려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어 ‘일본 최고 두더지 역’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무인역은 지난 11월 14일부터 글램핑 시설 ‘도아이 빌리지(DOAI VILLAGE)’를 열었다. 역무실을 카페로 개조하고, 지하 홈에서는 수제맥주 저온 숙성을 하며, 역사 근처에는 텐트와 야외 사우나를 병설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 지난 9월 4일 먼저 문을 연 카페에 연일 100명 전후가 내점, 평소보다 10배나 많은 인파가 몰렸다. 코로나19 사태 속 한적하게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휴식처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 것. 도아이역의 변신을 주도한 캠핑장 기획·운영 스타트업 ‘빌리지 INC’의 하시무라 카즈노리 대표는 “도아이역 같은 무인역이 JR동일본 관내에만 600개 이상 있어 제2탄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2020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차박’ 열풍은 일본에서 ‘밴박(VAN박)’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캠핑카나 차내 숙박에 적합한 승합차를 대여해주는 ‘카스테이(Carstay)’의 밴 공유 서비스 이용객이 지난 7월보다 9월에 2.5배 늘었다. 차내 비치된 냉장고에 와인이나 식재료를 채워 넣은 ‘글램핑 사양’의 자동차도 지난 12월부터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본 전역에 밴박용 주차장이 2021년 중 500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닛케이는 “대자연을 리조트로 승화한 서비스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열도 각지 ‘유휴 자산’이 글램핑 성지로 극적인 둔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3위는 ‘비욘드(beyond) 부업’.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 인구가 부족한 일본은 수년 전부터 정부가 나서서 부업을 권장해왔다. 일본 취업정보 사이트 마이나비가 지난 10월 발표한 ‘근로 방식, 부업·겸업에 관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직원의 부업과 겸업을 인정하는 기업이 전체의 49.6%에 달했다. 지난 7월 야후가 실시한 부업 인재 모집에는 100여명 정원에 4500명 넘게 지원이 몰렸다.
2021년에는 이런 부업이 ‘지방’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대,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장벽을 넘는 새로운 형태의 부업이 꽃을 피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수도권 대기업 직원이 지방 중소기업과 부업 계약을 맺는 형태가 각광받는다. 근무 방식은 주 몇 회는 원격으로 일하고, 월 1회 지방에 출장을 가는 형태가 예상된다. 직원은 부수입과 새로운 경력을 쌓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노하우를 염가에 입수할 수 있어 ‘윈윈(win-win)’이 기대된다. 실제 가고시마현 가노야시 농산품 가공·판매 기업 ‘오키스’는 영업 전략이나 디지털 마케팅 부문에서 부업 인력을 활용, 지난해보다 매출이 120%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지자체가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장기적으로 수도권 인구 이주까지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4위는 재활용 전문 브랜드 ‘루프(Loop)’다. 루프는 미국 스타트업 ‘테라 사이클’이 제창한 재활용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스테인리스, 유리, 플라스틱 소재 용기를 각 제조사가 수거해 세척, 재사용하는 ‘순환경제’ 모델이다. 순환경제가 궤도에 오르려면 용기 반환에 참여하는 소비자가 많아야 한다. 루프는 소비자가 환경 보호에 참여하고 있음을 주변에 자랑할 수 있도록 개성적인 디자인과 로고를 채택, 사업화에 성공했다. 기업들도 친환경 이미지를 얻기 위해 적극 나서는 중이다. 지난해 5월 먼저 시작한 미국과 프랑스에서 P&G, 유니레버, 네슬레 등 글로벌 브랜드를 포함한 200개 이상 브랜드, 500개 이상 상품이 루프에 참여하고 있다. 루프 제품 이용을 신청한 대기자가 한때 수만 명에 달할 정도로 소비자 반응도 뜨겁다. 일본에서는 시세이도, P&G재팬, 오츠카제약, 기린맥주, 캐논 등 주요 기업 22개사가 참여해 내년 3월부터 본격 사업화에 나선다.
8위는 ‘서빙 로봇’. 외출 자제 분위기에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 식당들은 고객 안심을 위해 앞다퉈 서빙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로 유명한 소프트뱅크로보틱스는 내년 1월부터 음식 서빙 로봇 ‘서비(Servi)’를 선보인다. 3D 카메라 등의 센서를 탑재한 높이 약 1m의 로봇으로 음식을 테이블까지 자동으로 운반한다. 종업원은 접객에 집중할 수 있고, 손님도 새로운 볼거리여서 반응이 좋다고. 실제 와규불고기 전문점 ‘우에무라목장’은 서빙 로봇 ‘특급 레인’을 도입, 인건비를 절감한 만큼 고품질 고기를 제공한다는 마케팅으로 점포당 월 3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또 다른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은 내년 1월부터 310개점에서 총 443대를 도입할 예정. 소프트뱅크로보틱스는 서빙 로봇이 장차 수천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이 밖에도 스키장, 리조트 등에 와이파이(Wi-Fi), 코워킹 공간 등을 갖춰 ‘워케이션(휴가지에서 일하는 신개념 원격근무)의 성지’로 떠오른 나가노 지역 마케팅(9위), 소매점 등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온갖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마이크로 D2C(Direct To Consumer)(10위)’ 등이 상위권에 들었다.
▶11~30위
▷AI로 맞춤형 교육, 신칸센 생선 직송…
교사가 대면 수업에서 저학년 문제를 내면 학생이 학습 의욕을 잃을 수 있지만, AI는 그런 부담이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AI 교재 사용이 확산되면 수업 풍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태블릿PC로 문제를 풀거나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은 교원용 단말기로 각 학생의 교육 진행 상황을 감독하다 차질이 생긴 학생에게 가서 도와주는 ‘코치’ 역할에 집중한다. 때로는 한 학생의 답안을 전자 흑판에 보여주며 모든 학생과 토론을 진행할 수도 있다. 닛케이는 “지난 9월 AI 교재 ‘쿠베나(Qubena)’를 도입한 학교는 750개, 이용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9배인 20만명에 이르렀다. 1인 1대 단말기 정책이 결정되며 드디어 폭발적인 보급기를 맞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16위는 ‘초속역(超速驛) 내 산지 직송 시장’ 서비스다. JR동일본은 시속 320㎞에 달하는 신칸센의 속달성과 정시성을 살려 신선 식재의 정기 수송에 본격 나선다. 이를 통해 홋카이도, 토호쿠, 니가타 등에서 아침에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오후에 도시 지역에서 구매하는 ‘역내 산지 직송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JR동일본은 이미 자회사가 생선 도매업체 ‘푸디슨’ 등과 제휴, 니가타항에서 잡은 생선을 신칸센으로 옮겨 시나가와역과 고탄다역 구내 선어점에 직송해 기간 한정으로 판매한 바 있다. 닛케이는 “향후 지방에서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 지방으로의 ‘초고속 선어 물류망’이 정비되면 월등히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을 퇴근길에 역에서 사서 귀가하는 것이 새로운 쇼핑 형태로 자리 잡을 것이다. ‘라스트 마일’의 근본적인 변화가 기대된다”고 발표했다.
27위는 ‘투명 마스크’. 지난 10월 첫 발매 후 백화점, 식당, 관광 시설 등의 접객업은 물론, 보육원, 요양 시설 등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했다고.
일본 마스크 1위 업체인 ‘유니참’도 내년에 투명 마스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단, 바이러스 등 미세입자는 통과하기 때문에 방역 효과는 비말 확산 방지에 그친다. 귀에 거는 대신 볼에 붙이는 투명 마스크도 등장했다. 이목구비를 보며 머리 모양을 손질해야 하는 미용실 수요를 위한 상품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히트 예감 상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경형 디스플레이에 정보가 표시되는 ‘증강현실(AR) 글라스(15위)’, 연주, 낭독은 물론 단순한 잡담, 생활 소음 심지어 잠꼬대에 이르기까지 소리로 SNS를 즐기는 ‘음성판 유튜브 서비스(19위)’, 미국 홈트레이닝 전문 스타트업 ‘펠라톤’을 벤치마킹한 ‘온라인 바이크 피트니스(21위)’, 테라스, 루프탑 등 야‘외’에서 ‘외’식을 즐기는 ‘럭셔리 외외식(23위)’ 등이 2021년을 빛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0호 (2020.12.30~2021.0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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