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말고요, 1~2인용 15평 아파트 갖게 하면 어떨까요"

권혜숙 2020. 12.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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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타 건축가 유현준 홍대 교수
유현준 교수는 한국인이 집값에 집착하는 이유를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찾았다. 모두가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에 살다 보니 가치 판단의 기준을 집값에서만 찾게 됐다는 설명이다. “시장이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의 주거문화를 대형 건설사 상무님들이 결정하고 있어요. 높아진 국민들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성호 기자


2020년을 정리하는 키워드를 꼽아보면 코로나19를 첫머리에, 부동산 문제를 다섯 손가락 안에 넣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전국이 들끓었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때문에 사는 공간으로서의 집에도 새삼 주목하게 됐으며, 새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유현준(51)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를 만나 정부의 주거정책에 대한 의견과 코로나19로 달라질 건축문화, 도시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명인 유 교수는 하버드와 MIT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특유의 융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과 방송, 강연을 통해 건축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현 정부의 주택 정책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부동산 정책은 참 조심스러운 이슈라서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부동산 정책의 경우 예를 들어 신도시를 만든다는 결정을 내리면 몇 천억, 몇 조를 쓰게 되고 이후 100년 가까이 영향을 미치거든요. 진보든 보수든 정권을 잡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되는데 부동산 정책의 의사결정까지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뤄지는 것 같으니 그게 문제예요.”

-공공임대주택 확대정책에 대해 ‘정부가 지주가 되고 국민들은 소작농 되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셨는데요.

“임대주택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집을 살 생각이 없거나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겐 임대주택이 필요하죠. 하지만 중산층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건 더 많은 국민들이 자산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라 정부가 임대주택을 통해 부동산 자산을 독점하는 권력을 가지겠다는 거예요. 그런 정책에 기생하는 대규모 자본가들도 있어요. 건물을 새로 짓거나 통째로 리모델링해서 월 200만~300만원을 받는 월세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집을 사는 걸 포기하고 월세로 돌아서는 순간 시스템의 소작농이 되는 거고, 정부라는 지주와 대자본 지주 둘만 남게 되는 거죠.”

-극단적인 결론 아닌가요.

“1970년대 대한민국은 아파트를 지어서 허공에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 공간을 중산층들이 사서 자산을 갖게 되면서 사회가 안정됐어요. 그런데 90년대 들어와서 더 이상 고층화된 건물을 짓기도 어려워지고, 재건축과 재개발이 막히면서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자신의 공간을 갖기 시작했어요. 인터넷 가상공간을 통해서 네이버나 카카오, 넥슨 같은 회사들이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정부의 역할은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 겁니다. 공간을 만들어서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제공하면 그게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계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역할을 안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사회계층의 고착화를 유지하겠다는 거죠.”

-대통령이 방문했던 임대주택이 ‘13평(44㎡) 4인 가족’이라는 면적 때문에 논란이 됐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4인 가구의 최저 주거기준 면적이 43㎡더군요.

“44㎡는 너무 작죠. 그런데 가족 몇 명이면 몇 ㎡에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구시대적이에요. 85㎡가 중산층 4인 가족용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70년대에 만들어진 기준이고요. 앞으로는 점점 더 넓은 집이 필요해질 거예요. 지금은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주거의 형태가 아니에요. 집에서 1.5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기 때문에 공간이 1.5배 더 커져야 되는데 그 과정에 있는 과도기인 거죠.”

칠레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인 ‘엘리멘탈’. 저소득층에게 절반만 완성된 반쪽짜리 집을 구입하게 하고, 소득이 늘어나면 나머지 절반을 개조하거나 증축할 수 있게 했다. 엘리멘탈 홈페이지
위 두 장의 사진을 통해 집의 비어있던 나머지 반쪽이 어떻게 완성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을 지은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2016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아라베나는 “모두에게 좋은 집을 주기 어렵다면 좋은 집의 절반을 지어 선물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엘리멘탈 홈페이지


유 교수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의 모범 사례로 칠레의 ‘엘리멘탈’을, 실패 사례로 미국의 ‘프루이트 아이고’를 들었다. 칠레의 ‘엘리멘탈’은 저소득층에게 절반만 완성된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게 하고, 거주자들이 소득이 늘어나면 나머지 절반을 개조하거나 증축할 수 있게 비워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각기 다른 모양의 개성 있는 집들이 완성됐고, 이 아이디어는 멕시코의 몬테레이 등 다른 도시에도 확산됐다. 미국의 ‘프루이트 아이고’는 1954년 세인트루이스시가 33개동의 대규모 임대주택단지를 지은 프로젝트였는데 완공 후 3년 만에 급격하게 슬럼화됐다. 시는 1976년 단지를 폭파 해체했다.

-칠레의 공동주택은 슬럼화되지 않고 잘 정착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집 앞을 뛰어다니는 사진들을 보면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는 거죠. 이렇게 동네가 만들어지고 좋아지면 자산가치가 올라가고, 그럼 이 사람들은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있겠죠. 우리나라는 땅이 부족해서 적용이 될지 모르겠지만, 정부의 기본적인 철학의 문제인 거예요. 집을 소유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나라가 임대를 줄 것이냐. 칠레는 우리보다 가난한 정부지만 집을 소유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죠. 정부가 집주인이 되려는 게 아니라요.”

-정부는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지만 교수님은 1, 2인 가구 수요를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셨죠.

“주택의 수요는 인구수가 아니라 세대 수가 결정하는 겁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4인 가족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게 문제예요. 전체 가구에서 4인 가족은 16%뿐이라서 지금 우리가 대량으로 공급해야 하는 건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아니라 60%를 차지하는 1, 2인 가구용 15평짜리 원 베드룸 아파트예요. 그런 집들이 공급되지 않고서는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죠.”

-서울의 1인 가구 청년 10명 중 4명이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통계도 있는데,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은 방향이 맞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게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거라고 봐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10년 후에는 나와야 되잖아요. 그때는 집값이 더 올라있을 거고, 집을 살 수가 없어요. 성실하게 적극적으로 갚을 수 있는 청년들에게는 대출을 80%까지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금융 시스템이 보완됐으면 해요. 또 청년 주거용 아파트 공급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용적률도 높이고, 블록 단위로 통폐합을 해서 소규모로 재건축을 하는 방법도 있어요. 정책을 만들고 시장이 선도해나갈 수 있게 인센티브를 주면 해결될 수 있어요. 그럼 청년들도 집을 사서 자산을 모을 수 있고요.”

유현준 교수는 두 가지 포부를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화목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발명하는 것. 그가 건축을 통한 소셜 믹스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또 하나는 서울을 업그레이드해 뉴욕과 파리를 능가하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윤성호 기자


-임대주택 외에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정책은 무엇일까요?

“재건축 재개발을 막는 게 제일 심각하죠. 집은 계속해서 좋아져야 돼요. 60, 70년대에 지어진 다세대 주택이 2020년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집일까요? 살고 싶어 하는 집은 한정돼 있고 돈은 많이 풀려있으니까 집값이 당연히 오르죠. 방법은 간단해요. 시장이 원하는 집을 늘리면 돼요. 저는 세대수를 늘리는 재건축을 권장해야 된다고 봐요. 자녀들이 독립한 나이 드신 분들은 계속 45평 아파트에 살 이유가 없잖아요. 그걸 20평대 두 채로 만들면 세대수가 늘어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고 가격은 떨어질 거예요.”

-새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형 도시재생 전문가인데, 지금까지의 도시재생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원순 전 시장 전까지는 개발 일변도로 다 부수고 새로 짓는 쪽으로만 갔는데,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제안했던 방식이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닦고 고치고 기름치자’ 정도의 것만 계속됐죠. 언제까지 오래된 건물이 아름답다고 찬양을 할 건지…. 공간적으로 봤을 때 그동안 서울이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성적표를 지금 받는 거라고 봐요.”

-그럼 도시로서의 서울의 성적표는 어느 정도일까요?

“70점 정도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정말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어요. 가능성이 많아요. 안전하다는 이유가 크죠. 치안도 그렇고 의료시스템은 세계 어디 도시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고, 시민들이 친절하고 국제적인 에티켓도 갖췄죠. 그런데 제가 우리나라가 정말 국제적으로 살고 싶은 도시가 돼서 중동 투자자나 중국 부자도 와서 살고 싶은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럼 집값 더 올리자는 얘기냐고 반대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가서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면 된다고 보는데 말이에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지금처럼 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는 상황은 개선돼야 할 텐데요. 행정수도 이전이나 혁신도시 같은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혁신도시는 기존에 있던 구도심까지 슬럼화시켰어요. 차라리 구도심으로 가서 완전히 다른 도시를 만들었어야 돼요. 구도심은 50, 60년대 도로망 같은 옛날 흔적들이 남아 있고 거대한 토목공사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부분이 덜하잖아요. 그럼 거기에 유니크한 그 지역만의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신도시를 만드는 건 어마어마한 낭비예요. 몇 조를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구도심의 인프라가 슬럼화되고 문화적 자산이나 공동체가 와해되는 게 더 큰 손실인 거죠. 지방 균형 발전의 답은 다양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어요. 서울이 맨해튼 같으면 세종시는 샌프란시스코처럼 돼야 되는데, 지방 신도시들도 서울과 똑같이 만들어졌으니 오리지널인 서울을 더 선호하게 되는 거죠.”

-그럼 주택 정책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요.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 맞는 집을 소유할 수 있게끔 하는 쪽으로 가야죠. 그러기 위해서 주택 공급도 다양성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서 더 좋은 동네를 만들고, 돈 벌고 싶어 하는 건설사를 이용해서 더 좋은 도시를 만들면 되는 거죠. 임대주택 동네가 개선이 어려운 건 내 집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 집에서 깨끗하게 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임대주택만 짓고 그 집에서 내 집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살라고 하고 있어요.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항상 주인이에요.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거죠.”

유현준 교수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부는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고 한다. 유현준 교수는 ‘집은 쉬는 곳’이라고 말한다. 윤성호 기자


-코로나19 얘기를 해볼까요. 감염학자나 생태학자들은 도시화 때문에 코로나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고 하는데 교수님은 우리가 아파트에 모여 살아서 높아진 택배 효율 때문에 자가격리가 가능했고, 그래서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고 하셨어요.

“인류 문명의 역사를 보면 최초의 도시가 기원전 3500년 수메르 문명의 우르에서 인구 5000명으로 시작됐어요. 이후 지난 5000년 동안 장티푸스, 콜레라, 흑사병 같은 온갖 전염병이 많았죠. 그런데 도시는 지금 인구 1600만명의 뉴욕까지 만들어졌어요. 전염병이 생기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계속하면서 우상향으로 도시의 규모가 계속 커져왔어요. 단기적으로 보면 도시가 해체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또 도시로 모여들 겁니다. 도시에 경제적인 기회가 많기 때문이죠.”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 사람들이 도시를 떠날 거라는 예측도 있는데요.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들은 대부분 디지털화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디지털화될 수 있다는 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향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들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많고, 오히려 사람이 사람을 서빙하는 서비스업 일자리가 더 늘어날 거예요. 서비스업 일자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 더 많을 것 아니에요? 그러면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도시로 더 몰려오겠죠.”

-그럼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져서 다시 전염병에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인류의 발전 방향은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드는 데 답이 있다고 봐요. 얼마 전에 유발 하라리 교수와 질문하고 답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도 제 의견에 동의를 하셨어요. 시스템이 정교화되면서 도시가 오히려 안전해지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이며, 전 지구적인 팬데믹은 코로나19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요.”

-코로나25, 코로나28처럼 잇달아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코로나와 비슷한 상황이 내년에 또 터진다면 바로 봉쇄하고 추적해 훨씬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거예요. 고무적인 건 10년 걸리던 백신이 1년 만에 나왔잖아요. 서울대 의대 교수님께 들었는데 이번에 백신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기존과 달랐다는 거예요. 수학자들이 참여해서 모델을 만들고 알고리즘을 예측해 경우의 수를 줄여나가면서 훨씬 더 빠르게 개발됐다는 거죠. 바이오에 수학이 합쳐지고 IT까지 가세해 개발기간을 줄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해낼 수 있는 나라들은 생존할 테고, 못하는 나라들은 도태되겠죠.
건축학적으로는 더 합리적으로 공간 구조를 만들어서 만약의 사태에 돌입하면 이동하지 않고도 모든 문화‧경제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거예요. 프랑스 파리가 전염병을 계기로 지하 하수도 시스템을 갖췄듯이, 코로나를 계기로 전염병에 강한 도시를 만들어야 된다고 봐요.”

-교수님이 강조하는 ‘스마트한 고밀화’에 ‘전염병에 강한 도시’가 더해지는 건가요?

“스마트하다는 건 여러 뜻을 내포하는데요, 일단 지금처럼 똑같은 아파트를 계속 짓는 게 아니라 시대가 원하는 집의 유형을 만들어서 고밀화를 시켜야 된다는 게 첫 번째예요. 1인 가구부터 다인 가구를 위한 여러 평형의 세대를 만들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3평 정도의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를 공급하는 거죠. 또 하나 꼭 필요한 건 소셜 믹스가 가능한 공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테라스와 더불어 소셜 믹스가 교수님의 키워드 중 하나죠.

“재건축할 때 임대주택 30%를 넣으라는 건 선한 뜻에서 섞여 살자고 하는 건데, 지금까지 성공하지 않았잖아요. 옆집에 산다고 섞이지 않아요. 오히려 차별당하죠. 익명인 상태로 1층에서 섞여야 되는 거예요. 아파트 단지에 좋은 정원들이 많은데 그것만 다 개방해도 서울은 공원이 지천에 있는 도시가 될 거예요. 1층 정원을 개방하고 1층에 도서관, 체육관 같은 공공의 공간을 만들어서 누구나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섞이고 그게 궁극적으로 융합을 이뤄내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유현준 교수의 대표작들. 거제도의 ‘머그학동’(위)과 세종시 ‘산성교회’.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제공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시대에는 ‘연트럴파크’ 같은 선처럼 가늘고 긴 선형 공원이 더 유리한 공간구조라고 하셨는데, 용산공원의 청사진은 어떤가요?

“용산공원이 100만평인데 그 주변 둘레가 13㎞예요. 그걸 경의선 숲길처럼 폭을 16m로 만들면 길이가 150㎞로 늘어나서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죠. 하지만 용산공원의 기능은 그런 근린공원이 아니라 생태공원이라고 봐요. 생태공원으로 있으려면 정방형으로 있어야지 도시의 빛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연 자체가 쉴 수 있어요. 근린공원은 선형으로 만들어야 되고, 선형으로 만들 땅이 없으니까 교통량을 줄여서 도로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게 제 주장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 도심 지하로 자율주행 로봇이 다니는 택배 물류 터널을 만들어야 되는 거고요.”

-지하 물류터널은 SF영화 속 이야기 같은데, 반향이 있나요?

“대한토목학회 회장님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서울의 주요 도로에 터널을 뚫으면 대략 30조원 정도 들어갈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정부에서 만들어야 되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말하는 게 그런 거예요. 인터넷망을 뚫어놓자 IT기업들이 생겼듯이 물류 터널을 뚫으면 자율 주행 로봇을 만드는 회사도 생기고 그 터널을 이용해서 서비스를 하는 많은 벤처회사들이 생길 거라고 봐요. 정부가 꽃밭 가꾸는 일자리 같은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인프라를 만들고 공간을 만들면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그 공간을 이용해 일자리를 얻고 자산을 만들 수 있겠죠.”

-코로나19가 공간과 도시, 건축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기회가 될까요.

“저는 주거와 상업시설, 오피스, 학교, 공연장을 지역별로 나누지 않고 믹스해 수직적으로 주상복합화되는 그런 도시로 바뀌어야 된다고 봐요. 출퇴근에 서너 시간씩 걸리지 않을 수 있도록요. 그런 부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야 될 것 같아요. 지금처럼 10층짜리 빌딩에 상가가 다 들어가 있는 건물보다 상업시설은 저층형으로 선형화돼야 할 거고요. 공원과 상가 아케이드가 평행하게 있는 도시를 만드는 걸 제가 강조하는데, 그게 제일 잘 돼 있는 데가 경의선 숲길이에요. 경의선 숲길이 제가 생각하는 스마트 고밀화에 가까운 도시의 모습이에요.”

-경의선 숲길 외에도 한강시민공원, 익선동을 좋은 공간으로 언급하셨습니다. 또 있을까요?

“가로수길도 좋아요. 지하철역과 한강시민공원을 연결하는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지는 좋은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사례죠. 지하철 2호선이 서울을 한 바퀴 도는 순환선이잖아요. 제가 꿈꾸는 건 2호선 역과 역 사이에 공원을 하나씩 배치해서 걷고 싶은 거리로, 서울을 전부 걸어 다닐 수 있게끔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지역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융합도 더 많이 일어날 거예요.”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현준 교수는 새해 4월에 ‘공간의 미래’라는 신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후속작으로 건축으로 세계의 역사를 보는 책, 건축으로 읽는 영화와 공간,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물에 대한 책도 구상 중이다. 윤성호 기자


-코로나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집에 머무르게 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데요, 집안 공간을 개선할 아이디어를 주신다면요?

“저는 발코니 확장이 안 된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화분을 많이 놓아서 정원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코로나 블루에서 공간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또 다른 하나가 조명이에요. 빛이 가장 빠르고 손쉽게 공간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거든요. 따뜻한 스탠드로 천장을 비추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두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보일 거예요.
또 하나는 물건을 버려야죠. 전에 TV에서 ‘신박한 정리’를 재미있게 봤어요. 똑같은 공간이라도 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정리정돈을 하면 기쁨을 주는 공간이 됩니다. 책 배열 순서를 어떻게 할지, 옷을 어떻게 구분할지, 이런 것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대대적으로 옷장 정리를 했습니다. 안 입는 옷들을 다 정리했는데 그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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