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끝내지 못한 과제, 뛰는 집값과 줄어든 전세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 2020. 12. 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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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숙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데자뷔(déjà vu·기시감)’.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올해 부동산 시장을 보고 있자면 데자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2007년과 비슷한 부동산 정책이 시행된 데다, 비슷한 시장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는 탓이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뛰고, 전셋값도 오르면서 실수요자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2007년의 데자뷔

올해 부동산 시장은 노무현 정부가 집권했던 시기의 부동산 시장과 겹친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6억원 초과 아파트 대상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까지 제한하는 대출 규제를 실시했다. 또 종부세 강화를 위해 과세 기준을 ‘인별 합산’에서 ‘가구별 합산’으로 바꾸고, 과세 기준금액도 9억원 이상에서 6억원 이상으로 대폭 강화했다. 이에 6억원 이상 아파트가 포진한 강남권의 상승세는 멈췄지만, 노원구, 강북구, 도봉구 등의 강북 외곽지역의 가격은 급등했다.  2007년 서울의 구별 아파트값 상승률을 살펴보면, 강남구는 1.3% 하락했고 노원구는 12.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3년이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9억원’을 기준으로 내세우면서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주택자, 9억원을 기준으로 대출과 세금이 크게 달라지자, 투자자들은 규제가 덜한 틈새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집값 상승은 수도권을 넘어 전국의 문제로 빠르게 번졌다. 기준시가 현실화,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강화 등 세금 압박을 지속하고 더욱 촘촘한 대출 규제를 발표하고 나섰으나 오르는 아파트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역별 아파트값 변동률(11월 23일 기준)은 국회 이전 호재가 작용한 세종시(44.1%)가 가장 컸고, 대전(16.1%), 경기도(14.9%), 서울(11.7%), 부산(10.5%)이 뒤를 이었다. 규제는 없고 호재가 있는 지방과 중소도시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이동한 셈이다.

규제가 지속되는 수도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이 용이한 9억원 이하 주택이 인기를 끌었다. 강북구는 24.6%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노원(23%), 성북(21.5%), 도봉(20%), 관악(19.4%) 등도 서울 평균 상승률(11.7%)을 웃돌았다. 반면 강남, 서초, 송파, 용산은 이를 밑돌았다. 일부 경기도 지역은 서울의 상승률을 뛰어넘기도 했다. 하남(29%), 구리(20.3%), 광명(19.4%) 등 서울에 인접하고 주거 여건이 우수한 곳이나, 비규제 지역이 포함된 화성(23.4%), 용인(20.8%) 등이 경기도의 상승률을 주도했다.

투자자들은 하반기 들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김포, 부산 등으로도 눈을 돌렸다. 부동산정보 사이트 ‘아실’에 따르면, 올해 김포에서 1월부터 10월까지 신고된 매매 건수는 1만5705건으로, 2019년 연간 총거래 건수(7099건)의 2배를 웃돌았다. 파주의 총거래 건수는 82% 늘었고, 고양 덕양은 47%, 용인 기흥은 32%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결국 11월 19일 김포시(통진읍·월곶면·하성면·대곶면 제외)와 부산시 해운대·수영·동래·연제·남구, 대구시 수성구 등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아직 규제지역으로 묶이지 않아 상승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파주, 울산 등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후 서울 지역 전세가 품귀 현상을 빚자 김포·파주 등 서울 인접 지역 아파트값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진은 11월 15일 오후 경기도 김포의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오르는 전셋값, 갭투자로 이어지나

집값 상승과 규제는 결국 전세 문제로 옮겨붙었다. 저금리와 보유세 부담 증가로 월세를 받으려는 집주인이 늘어나고, 입주 물량 감소, 임대차 3법 시행 등이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전세 매물은 줄고,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정부가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2년간 11만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전세는 실수요자 시장인 데다 매매보다 수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 목적으로 특정 지역에 거주를 희망하는 수요자는 저렴한 인근 지역으로 가기보다 비싸도 원하는 곳에 전셋집을 구해야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매매가가 오르는 만큼, 전셋값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50.4%로 지난해(50%)와 비슷하다. 경기도는 66.2%로 지난해보다 하락하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매매가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전세가 상승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셋값이 매매가를 웃도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에 있는 전용면적 60㎡ 아파트의 지난 9월 매매가는 1억4100만원이었지만, 같은 달 전세가는 1억6000만원, 1억5500만원이었다. 전셋값이 각각 1900만원, 1400만원 더 높은 셈이다. 전셋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발생하는 기현상이다.

전셋값이 오르자 갭투자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높은 전세가는 임대인에게 이자 없는 막대한 사금융을 제공하는 격으로, 정부의 대출 규제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강남에서는 다주택자가 급작스럽게 주택을 매도하면서도 비싼 값을 받기 위해 갭투자를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매수인에게 집을 팔고 높은 가격에 전세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매수인의 투자금을 줄여준다.

매매가가 20억인 아파트의 전세가가 10억원일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매도자가 세입자로 계약하며 시세보다 비싼 12억원에 전세 계약을 해주면, 매수인은 8억원만 가지고도 20억원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다.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금지된 서울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매매가와 전세가의 갭이 줄면 투자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전세가 상승이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물론 전셋값 상승세가 공급 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지, 임대차법 개정에 따른 매물 부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만 전셋값이 지속해서 오르면 또다시 매매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커짐을 인식해야 한다. 올해 말까지 잡지 못한 전세 문제, 내년에는 해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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