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사랑하던 소년,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

장혜령 2020. 11. 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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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 .. 악의적인 세상의 선한 영향력

[장혜령 기자]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지난 12일 개봉한 <마치다군의 세계>는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를 연출한 이시이 유아 감독의 색다른 영화다. 감독은 동명의 원작 만화를 스크린에 옮기며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 온 작품 목록과 다른 스타일을 구사했다.

영화는 통통 튀는 분위기와 10대들의 사랑과 우정을 감성적으로 그린다. 전작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의 염세적인 분위기를 기억한다면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결말 10여 분의 상황은 따로 떼어내어 독립적인 단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질적이다.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는 듯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세상 모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소년

마치다(호소다 카나타)는 만삭인 엄마를 대신해 집안 일과 동생들을 돌보는 착한 아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예수님(?)일까 싶을 정도로 선행을 베푸는 의로운 소년이다. 가족은 화목 그 자체다. 출장이 잦은 아빠는 늘 집을 오래 비우지만 따스한 온기가 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온하던 마치다의 세계에 이름 모를 감정이 불쑥 찾아왔다. 보건실에 갔다가 이노하라(세키미즈 나기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모두를 좋아하는 마치다에게 특별히 더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걸까. 마치다는 마음에 움튼 싹이 조금씩 커가는지도 모른 채 이노하라의 근처를 맴돈다.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한편, 이노하라가 보는 세상은 부정적이고 어둡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돈만 주고 집을 비운다. 그래서 집안은 냉랭하고 어둡기만 하다. 이노하라는 비가 오는 날이 좋다. 공식적으로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되는 날, 퍼붓는 비가 외로움을 감싸 주는 것만 같기 오히려 포근하다.

그날도 이노하라는 세간의 불편함을 피해 보건실을 찾았다. 하지만 피가 흐르는데도 보건 선생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거슬려 말을 걸어 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날 이후 자꾸만 마치다가 생각난다.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 말해주던 때, 머리를 쓰다듬던 자상한 행동은 특별함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 마음이 요동치는지 모르겠다. 공부도 일상도 이어갈 수 없이 마치다만 보인다. 마치다를 좋아하는 걸까?

요시타카(이케마츠 소스케)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예인의 불륜 현장을 캐는 기자가 되어 몹시 괴롭다. 작가의 꿈을 펼치고 싶지만 상사의 억눌림에 이번에도 칼럼을 게재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불행만을 즐긴다며, 좀 더 자극적인 글로 유도해야 한다고만 종용한다. 요시타카는 남의 사생활을 소재로 돈 버는 게 떳떳한 일인가 의문이 든다. 그가 보는 세상에는 온기가 없다. 남의 일에 무관심할뿐더러 타인의 불행을 행복으로 느낀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좋아질 거란 기대감도 사라져 자포자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치다를 보고 희망을 느낀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임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된다.

소년의 눈에 보이는 맑은 세상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영화엔 마치다의 밝고 깨끗한 세계와 황색지 기자 요시타카의 추악한 세계가 공존한다. 상반된 성격의 이노하라까지 세 인물의 이야기가 합의점에 도달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서로 모르던 세 사람이 어떤 일을 계기로 만나고 성장한다.

자기감정을 잘 몰랐던 마치다가 같은 학교 이노하라를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마치다는 어릴 때 우물에 빠져 머리를 다친 적이 있다. 그래서 뭘 해도 약간 모자랐지만 그때 받은 따뜻함을 기억하고 누구에게나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다. 이는 예수의 아가페적 사랑, 묵자가 말한 겸애(兼愛)에 가깝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거다. 모두를 공평하게 좋아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사랑이 고픈 이노하라는 자신만을 편애해 주길 간절히 원했고, 그게 뭔지 잘 몰랐던 마치다는 오해를 만들어 내기 바빴다. 이 둘의 풋풋하고 순수한 진심은 악의로 찬 세상을 따스함으로 물들인다. 요절복통 괴랄 발랄한 청춘 로맨스의 과정이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결국 마치다는 친구들의 도움과 아버지의 조언으로 '사랑'이란 감정에 눈 뜨게 된다. 사랑은 계산을 할 수도, 무엇인지 똑 부러지게 알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것 자체임을 깨닫는다.

나, 가족, 친구,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마치다는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나쁜 마음이 가득한 세상에 마치다의 선한 영향력은 주변을 물들이고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 조금 이상하고 엉뚱한 소년. 하지만 자꾸만 같이 있고 싶은 이끌림. 그가 보는 행복한 세상을 함께 보고 싶다.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이 무섭고, 남을 헐뜯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정글의 세계가 신물 난다. 영화를 통해 그래도 착한 마음은 세상을 바꾸어 놓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었다. 아직은 살아갈 만한 세상임을 확인하는 따스한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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