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낸 지분적립형 주택, 전문가들 의견은.. "팔기가 이렇게 힘든데 살까요"

유병훈 기자 2020. 11. 10. 1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8·4대책에서 제시한 ‘지분적립형 주택’의 윤곽이 나왔다. 정부가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투자수요도 억제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리며 내놓은 정책이지만, 전문가들은 제도 도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지난 8·4대책 합동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지분적립형 분양 주택 정책과 관련한 ‘공공주택 특별법’을 지난 9일 대표발의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8·4대책 발표 이후 서울시와 정부의 '지분주택 태스크포스'에서 검토한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구입자금이 부족한 무주택자를 위해 정부가 마련하는 제도다. 처음 입주할 때는 분양가의 20~40% 수준의 일정 지분만 매입하고 20~30년 장기간 거주하면서 나머지 지분을 분할로 사들여 주택 전체 소유권을 갖는 방식이다.

박 의원의 법안에는 "주택 취득을 위한 초기 부담은 완화하고 장기간 거주할수록 자산형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 실수요자들이 자가주택에서 안정적으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주택이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다"며 제도의 취지를 설명했다.

정부는 8·4대책 당시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2023년부터 지분적립형 분양을 시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법안을 보충할 시행령에서 분할매수기간은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주택인 경우 30년, 9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은 20년으로 정하기로 했다. 또 장기보유를 강제하기 위해 수분양자가 자금 여력이 있어도 전체 지분을 일시에 취득할 수 없도록 할 예정이다.

지분 취득 기간이 20년인 경우, 처음 지분 25%를 매입한 후 4년마다 15%씩 추가 취득하고, 30년인 경우는 처음 20%의 지분을 사들인 후 이후 4년마다 10%씩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지분을 완전히 취득하기 전까지는 임대료를 내야 하며, 추가 지분 가격은 최초 분양가격에 정기 예금금리를 가산한 수준으로 결정했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전매제한 기간의 경우 당초 국토부는 20년, 서울시는 10년을 주장했는데, 결국 현행 주택법을 준용해 최장 10년으로 결정됐다. 전매제한 기간만 끝나면 지분을 100% 취득하지 못해도 전매가 가능하다.

다만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사업 주체가 전매에 동의해야 하고 △사업 주체와 공동으로 주택의 전체 지분을 매각해야 하며 △전매 가격 역시 국토부가 법 시행령에서 정한 '정상가격' 이내 수준에서만 정하도록 했다. 때문에 지분을 완전히 취득하지 못한 경우 전매하더라도 차익을 실현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실거주 의무는 최장 5년으로 해 5년을 채우면 임대도 가능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지분적립형 주택을 △서울의료원 △상암동 DMC 미매각 부지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SH 마곡 미매각 부지 등 8·4대책에서 발표한 공공부지에 오는 2028년까지 1만7000가구 규모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안을 본 전문가들은 지분적립형 주택이 실제로 중·장기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선 전매 제한으로 차익 실현 기대가 낮아 시장이 외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사람들이 집을 구매하는 이유에는 실거주뿐 아니라 자본수익의 측면도 있다"며 "최장 30년까지 자본수익을 낼 수 없다면 서울 아파트 수요를 유의미하게 흡수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또 지분 완전 취득 전 전매 시 정부가 매매가격을 정하겠다는 방침에도 "시장가격을 왜곡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임대료는 계속 내야 하는데 전매제한 기간 이후에도 오랜 기간 차익실현이 사실상 제한되니 시장이 외면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틈새시장 정도의 역할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물량이 너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제도 취지 자체상 문제 될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정부 주도의 주택 공급이 대표성을 가지려면 물량이 충분히 많아야 하는데, 7~8년간 1만7000가구 수준이라면 대표성 있는 유형으로 자리 잡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분적립형 주택의 공급량을 늘리려면 민간도 활발히 참여해야 하는데, (지분적립형 주택에서) 민간의 수익성을 보장해줄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민간도 적극적으로 나서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지분적립형 주택으로 예고된 입지 역시 흥행 저조 가능성의 이유로 꼽힌다. 고준석 교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잠실 주공5단지처럼 주변에 인프라나 학군이 충실히 들어선 곳이면 모르겠지만, 서울의료원이나 상암동·마곡동 등 공공부지의 경우 낮은 차익실현 가능성을 감내하고 들어갈 유인이 부족해 무주택자들마저 외면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도 또 다른 뇌관이다. DMC 랜드마크 부지와 서부면허시험장에만 모두 5500가구가 예고된 상암동의 경우 주민들이 "분양을 통해 이해관계를 만들어 원주민들과 수분양자들 사이를 갈라치기 하려는 것 아니냐"며 지분적립형 주택 추진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겠다는 입장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