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화환

강기헌 2020. 11. 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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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산업1팀 기자

화환(花環)은 생화나 조화를 모아 고리같이 둥글게 만든 물건이다. 축하나 애도를 표하는 데 쓰인다. (국립국어원)

화환은 문화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에 꽃을 둥글게 만들어 문 앞이나 벽에 걸어두고 악령을 쫓았다. 리스(wreath)다. 꽃을 세 번 쌓아 올린 3단 화환은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물건이다. 3단 화환의 높이는 대략 2m. 부와 권력에 대한 상징성이 화환에 더해지면서 사람 키보다 커졌다.

화환 가격은 물가상승률과 무관하게 정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3단 화환의 가격은 10만원이 기준이다. 일종의 표준가격이 형성된 건 꽃 재활용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유통된 근조화환은 388만개. 축하화환은 대략 202만개다. 여기에 행사화환 100만개를 더하면 690만개의 화환이 국내에서 소비됐다. (화환 유통체계 개선방안, 단국대) 근조화환 한 개에 쓰이는 국화는 대략 100송이, 축하화환에는 색이 선명한 거베라 65송이가 쓰인다. 단순 계산으로 화환에 들어간 꽃을 모두 합하면 국내에서 재배한 꽃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축하화환 73.7%, 근조화환 49.1%가 재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활용 화환이 늘어나자 정부는 올해 8월부터 재사용 화환 표시제 등을 담은 화훼산업법을 시행하고 있다. 재사용 화환을 판매할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생화보다 조화 화환이 많아진 이유다. 재활용이 막히면서 화환 수거를 거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쌀 화환만 받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길에는 하나둘 쌓인 화환이 300여개로 늘었다. 화환에는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문구가 새겨졌다. 화환 행렬이 생긴 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 이후다. 월성 1호기 경제성 감사 결과를 내놓은 감사원 앞에도 화환이 늘어나다 철거됐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되면서 시름하던 화훼 농가엔 가뭄 속 단비가 됐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한다. 언어의 역사성이다. 이제부터는 표준국어대사전 속 화환의 정의도 ‘축하나 애도, 응원을 표하는 데 쓰인다’라고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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