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지지 않는 여성 서사, 향수 빠진 '뮬란'

강경루 2020. 9.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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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박스오피스도 '테넷' 이어 2위 그쳐
영화 '뮬란'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보이콧’ 논란 속에 지난 17일 베일을 벗은 디즈니의 대작 ‘뮬란’은 아쉬운 뒷맛을 남긴다. 원작 마니아들마저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핵심 설정들이 수정된 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재기발랄함도 찾아보기 어려워서다.

잘 알려졌듯 ‘뮬란’은 중국 남북조시대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다. 뮬란은 특출난 재능에 힘입어 위기에 빠진 가족과 나라를 구하게 된다. 디즈니의 자사 동명 애니메이션(1998)을 실사화한 작품으로 중화권 스타 류이페이(유역비)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총제작비만 약 2억 달러(약 2381억원)가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원작 자체가 세계적으로 3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지는 ‘뮬란’의 실사화는 제작 초기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작품 얼개만큼은 원작과 유사하다. 여성은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게 가문을 빛내는 일이라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자리 잡은 시대에 사는 뮬란이 세상의 편견과 금기에 맞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무예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뮬란은 좋은 집안과 인연을 맺어 가문을 빛내길 바라는 부모님 뜻에 따라 본연의 모습을 억누르고 성장하지만, 북쪽 오랑캐들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험해지자 뮬란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 몰래 전장에 나간다.

앞서 디즈니는 과거 자사 만화영화를 실사로 제작해 연이어 히트를 시켰다. 애니메이션보다 표현 한계가 많은 실사 작품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말레피센트’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을 적절히 각색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애니메이션 원작을 사랑했던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관객을 발굴하는 효과도 누렸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등장인물과 일부 구성을 비틀면서 이질감을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에서 뮬란 친구이자 조력자로 등장한 작은 용 무슈는 사라졌고 뮬란의 상관이자 연인인 남자 주인공 리 샹 장군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마녀 시아니앙을 추가했는데 뮬란에만 초점을 맞추는 탓에 그마저도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아니앙의 감정 변화와 변화 계기도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 '뮬란'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가 자사 애니메이션 중 ‘뮬란’을 꺼내든 이유는 최근 대중문화에서 여성 서사가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앞서 자매의 이야기를 전면에 세운 ‘겨울왕국’으로 스토리텔링 능력을 인정받은 디즈니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여성 서사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뮬란이 훈련과 노력으로 여전사로 성장하는 것과 달리 유역비의 뮬란이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힘을 지닌 존재로 묘사돼서다. 이를 위해 영화 제작진은 뮬란에게 ‘기(氣)’라는 선천적 능력을 부여하는데 기에 대한 언급이 반복될 때마다 중국과 동아시아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오리엔탈리즘’ 논란이 떠오른다. 애니메이션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불리는 ‘리플렉션’은 엔딩 크레딧에서나 들을 수 있다. 다만 블록버스터 작품으로서 다양한 전법과 무기를 활용한 전투 장면은 디즈니가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보이콧 움직임 속에서 향후 흥행 여부도 안갯속이라는 점이다. 앞서 홍콩 민주화운동이 불붙던 지난해 8월 유역비는 본인 SNS에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글을 올려 ‘보이콧뮬란’ 운동을 촉발시켰다. 여기에 극장 대신 OTT 디즈니플러스에서 29.99달러에 선공개된 영화 엔딩 크레딧에 신장위구르 자치구 내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더 불이 붙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을 강제로 가두고 인권을 탄압한다는 논란을 받는 지역이다.

논란의 영향인 듯 지난주 주말 중국 극장가에 개봉한 ‘뮬란’은 2320만 달러(약 270억원)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 중국 박스오피스 데뷔와 동시에 3000만 달러 매출을 올렸었다. ‘라이언 킹’(5430만 달러), ‘정글북’(4920만 달러), ‘미녀와 야수’(4480만 달러) 등 디즈니의 중국 첫 주 박스오피스 성적에서도 하위권이다.

국내에서도 개봉 첫 주 주말 흥행에 실패했다. 2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뮬란’은 토요일이었던 19일 하루 동안 관객 5만1271명을 끌어모으는 데 그쳤다. 일일 박스오피스 순위도 ‘테넷’(5만3750명)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코로나19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개봉했음에도 개봉 4일 만에 50만명 이상을 동원한 ‘테넷’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성적표다. 다만 북미 OTT 수익 등을 포함해 세계 극장에서 개봉하는 만큼 손익분기점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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