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코로나 사태 속 새 풍속도 '스몰 웨딩' 갔더니

윤경재 2020. 8. 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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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67)

마흔아홉 번째 초대장

겸연쩍게 이리 굴리고 저리 헤아려 닿았을
떨리는 육성의 마흔아홉 번째 초대장

내 표정의 반을 감추어주는
하얀 침묵의 두 번째 피부를 입술에 걸친다

옹알이로부터 무릎 상처의 사연을 거쳐
첫 월급의 선물까지 넉넉히 담는 눈물의 체온

너희가 걸어온 발자국 근처에
잘 발효된 국거리 간장 같은
땀방울의 항아리들이 있었고

맞잡은 두 손끝의 감칠맛엔
하늘과 바람과 천둥, 달빛의 신음이 담겼구나

일요일 정오
그리고
신화처럼 부서지는 햇살

■ 해설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었다. 실내에서는 50명이 넘는 모임을 개최할 수 없게 되었다. [뉴스1]


8월 16일 서울과 수도권에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었다. 그동안 가까스로 억제되던 환자가 급작스럽게 증가하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다. 그로 인해 가장 곤란하게 된 건 결혼식이다. 실내에서는 50명이 넘는 모임을 개최할 수 없게 되었다. 올해 2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6개월 정도 미룬 혼사가 8월 휴가철이 지나고 나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나만 해도 매주 2~3건의 청첩장을 받은 터였다. 아직 두 아들의 혼사를 치루지 못한 나도 남의 일 같지 않아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코로나 사태가 가라앉기를 바라며 몇 개월 미룰 것인지, 아니면 진짜 가까운 친지 50명만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치룰 것인지, 방을 나누어 원격으로 진행할 것인지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겠다. 결국 대부분은 혼사를 미루기로 했다며 연락이 왔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좀 나아지려나.

그런 중에 친한 친구에게서 겸연쩍은 목소리로 50명만 초대해서 식사대접 없이 거행하기로 했다며 참석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왔다. 기분이 묘했다. 요즘 웬만하면 신랑신부 친구들 만해도 50명이 훨씬 넘을 것이고, 양가 친척을 합하면 내 차례가 돌아올 거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기쁘게 응낙하였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 자라온 과정을 낱낱이 아는 나로서는 마치 내게 없는 딸을 여의는 기분을 짐작할 기회라고 여겼다. 미리 이른 점심을 먹고 일찍 도착해 체온을 체크하고 입장하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방명록과 접수부가 없다. 몇 장의 축의금 봉투를 대표로 가져왔는데 난감하다. 양가 합의하에 축의금은 정중하게 사절하기로 하였단다. 그야말로 아이들 결혼식에 참석해준 것만으로 감사하단다. 하지만 내 처지도 있어 억지로 전했다.

혼잡을 염려해서인지 손님이 오기 전에 직계가족 사진을 미리 찍고 있었다. 주례와 반주도 생략하고 가족을 대표해 신부 아버지인 친구가 알찬 내용의 인사말과 신랑신부의 미래를 축원하는 글을 읽었다. 옹알이부터 시작해 학교에 진학하고 자기가 하고픈 분야를 찾아 나서느라 고생하던 일, 시집가는 게 늦어지자 영원히 아빠와 같이 살겠다던 둘째 딸이 뒤늦게 신랑을 인사시켰을 때 느꼈던 감회를 풀어내는 데 하객과 신부 모두 눈시울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엽렵한 사회자가 짬을 보아 몇 차례나 농담을 해야 했다. 축가도 신랑의 사촌이 녹음 반주만으로 불렀다. 얼마나 멋지고 정성껏 부르던지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전해졌다. 직업이 가수인줄로 알았다.

암 투병하느냐 몇 년 동안 인생의 쓴맛을 고스란히 겪어낸 신부 엄마는 막내딸을 무사히 짝 지우자 적이 안심이 되는 지 얼굴빛이 화사하다. 섭섭하기만 한 부정과 다른 모정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감사와 흡족함이 묻어 나온다.

미주알고주알 말로 하지 않아도 척 보면 아는 친지만 모인 자리는 뜻밖에 기품이 서려있었다. 모두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내어 첫 걸음을 내딛는 신랑·신부를 축복하고픈 마음을 넉넉히 표현했다. 누가 누구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신랑신부가 아니라 반가운 얼굴을 보아서 좋은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우아한 답례를 한다. 막상 작은 결혼식도 여러 가지 빛나는 장점이 있었다.

신랑·신부의 친구는 따로 초대해 두 시간 반 뒤에 2부 예식을 파티형식으로 연다고 한다. [사진 pikist]


알고 보니 신랑·신부의 친구는 따로 초대해 두 시간 반 뒤에 2부 예식을 파티형식으로 연단다. 아주 현명한 아이디어다. 젊은이 취향에 맞는 진행이 예상된다. 뒤에 들으니 아주 유쾌하고 신나는 시간이라서 좋았다고 한다. 하객의 눈물을 쏙 뺐던 신부 아버지 인사말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생략했단다. 요즘 이런 2부 양식이 새롭게 시도된단다.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1988년 올림픽이 거행되던 해에 태어난 막내의 세대는 용띠라고 많이 낳았다. 진학 경쟁도 심했고,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경제위기로 취직자리가 변변치 못했다. 또 이렇게 결혼을 시켰어도 새 부부가 편히 쉴 집 한 칸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다락같이 오르는 전세 가격과 부족한 집 사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세대로서 죄책감을 느낀다. 집에 대한 욕망과 필요를 구분하여 합당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기성세대는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결혼은 떠남의 원리가 비로소 작동하는 계기다. ‘떠남’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독립하는 걸 의미한다. 부모의 양육과 보호를 받던 관계에서 벗어나 완전한 성인으로 독립하는 걸 의미한다. 이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농업 경제가 위주였고 유교적 사고에 물들었던 때에는 매우 어색했다. 부모는 자식 부부의 곁(beside)에 있을 수는 있어도 사이(between)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 결혼이 성공적이 되려면 얼른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둘만의 가정을 이룩해야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기도하는 일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 부부관계는 ‘1+1=1’이란 비이성적 신화를 몸소 사는 일이다. ‘따로 또 같이’라는 원리는 수학적 사실에 입각한 정보와 달라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진리이다. 21세기에도 신화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엿보게 해준다. 세상에는 여전히 신화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결혼이다.

결혼의 신화가 제 역할을 하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신화가 더 알찬 삶을 살도록 만든다는 유효성을 인정해야 한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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