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찬물에 말아 냉국으로 먹는 제주 푸른콩 된장

강병욱 2020. 8.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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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병욱의 우리 식재료 이야기(7)
된장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식재료 중 하나다. 어머니가 해주던 된장찌개, 회식 때 빼놓을 수 없는 삼겹살은 항상 된장과 함께 먹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하고 친숙한 된장은 알고 보면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발효 음식 중 하나다. 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콩이라는 친구가 필수적으로 필요한데, 이 콩도 알고 보면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콩은 품종이 줄어 10여 종 미만(서리태콩, 왕태콩, 울타리콩, 돈부콩 등)이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자라는 푸른콩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주푸른콩은 남부 서귀포 일대에만 자라는 토종 종자 콩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누런색의 콩이 아닌 이름과 같이 푸른색을 띠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도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장콩, 독새기콩, 콩섶, 푸린독새기콩, 푸른독새기콩 등이다. 푸린독새기콩의 의미를 풀어보면, 푸른 달걀콩이라는 말이다. 푸린은 푸른, 독새기는 달걀을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제주푸른콩을 실제로 손으로 만져보면 보들보들한 느낌이며, 마치 제주 해변에 있는 이쁜 조약돌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남부 서귀포 일대에만 자라는 토종 종자 제주 푸른콩. [사진 강병욱]


그럼 콩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부 만주 일대다. 특히 콩 재배 흔적이 발견된 남만주 일대는 고조선의 옛 영토였다. 수천 년 전부터 콩을 재배해온 우리 민족은 콩을 가공해 다양한 먹을거리를 개발했다. 콩에 관한 이야기는 옛 문헌에도 많이 나와 있다. 1429년 편찬한 『농사직설』에는 콩 재배 기록이 남아있고, 『산가여록』에는 장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으며, 『증보산림경제』에는 콩으로 메주를 띄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고구려 유적인 『안악고분』에도 우물가에 장독대가 나란히 있는 벽화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콩은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 함께한 식재료임을 알 수 있다.

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콩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단순히 콩을 까서 쪄먹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숙성해 발효한 된장을 만드는 과정을 발전시켜왔다. 된장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장문화가 중국에도 전파돼 그 맛을 본 공자가 장을 먹어 보고 쓴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유가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의 『향당편』에는 콩으로 만든 장에 대한 이야기도 짤막하게 소개되어있다. “장이 없으면 먹을 수도 없다. 오미를 고르게 하고 오장을 기쁘게 함으로써 안락을 얻기 위함이고, 장에는 음식이나 여러 약물의 독을 물리치는 힘이 있기 때문이며, 약으로 치는 것이 콩장이며 오래 묵은 것일수록 좋다.”

푸른콩을 사용해 만든 장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선 일반 판매되는 된장에 비해 큼큼한 특유의 향이 나지 않으며 술향과 약간 단맛이 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된장찌개는 육수에 된장을 넣고 오랜 시간 끓이는 방식이다. 그 이유는 일반 된장에서 나오는 큼큼한 맛을 없애기 위해서 열을 가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찬물에 장을 풀어서 냉국으로 여름철 많이 먹는다.

밭일하던 도중 목이 마르면 장을 푼 차가운 냉국에 약간에 식초와 채를 썬 오이를 넣어서 먹으면 막걸리 먹는 것보다 시원하고 탈수 증상을 막아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장을 찬물에 풀어서 먹어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두려움과 장 특유의 냄새 때문에 긴장했지만 새로 접해보는 맛이었다. 여기서 좀 더 다른 방식을 소개하면, 회를 넣어서 먹는다고 한다. 푸른콩을 활용해 만든 장은 갚은 맛과 향, 단맛까지 처음 접해보는 식감과 맛이었다.

제주푸른콩장. 일반 판매되는 된장에 비해 큼큼한 특유의 향이 나지 않으며 술향과 약간 단맛이 돈다. [사진 강병욱]


사람들은 이처럼 신비하고 전통이 깊은 토종 종자인 푸른콩을 잘 알지 못한다. 실제로 제주에서 열리는 오일장에는 다양한 콩과 쌀이 나오지만 푸른콩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식재료인 푸른콩을 제주도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을까? 그 이유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부터 서귀포는 돈 되는 감귤 농장이 대거 들어섰다고 한다. 아이를 대학 보내려면 다른 장물을 키우는 것보다 감귤 나무 한 그루 심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땅이 있는 사람은 기존의 작물을 갈아엎어 버리고 모두 감귤 나무 심기 바빴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여러 토종작물은 사라져갔고 우리가 흔히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감귤이 대량 생산됐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제주푸른콩장의 향이 음식에 배면 좋을 것 같아 삼겹살에 제주푸른콩장을 3시간 정도 재워두었다. 재워둔 삼겹살을 팬에 넣어 강한 불에 살짝 구워주고 슬라이스해 각각 조금 더 구워줬다. 완전히 익은 삼겹살을 한입 입에 넣으니 향긋한 향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일반 된장과는 달리 향과 식감이 좀 더 부드러워졌고, 마지막 큼큼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콩으로 만든 장에는 예로부터 ‘오덕’이 있다고 했다. 다른 맛과 섞여도 제맛을 잃지 않아 ‘단심’, 오래 두어도 변질하지 않아 ‘항심’,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해 주니 ‘불심’,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 주므로 ‘선심’,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되므로 ‘화심’이라 했다. 하나의 식재료에 의미를 부여했던 우리 조상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토종 작물을 보존하고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넘은봄 셰프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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