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유했더니 '신통방통' 아이들이 짠~ 동탄의 교육실험

이도경 2020. 8. 1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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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너머 미래학교로] ① 온 마을이 학교다 '학교 복합화'
정부가 2025년까지 18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구상을 발표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바꿔놓을 초대형 프로젝트지만 대형 사건을 더 큰 이슈가 덮어버리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구상에서 제시된 키워드는 ‘그린학교’ ‘공간혁신’ ‘스마트교실’ ‘학교 복합화’다. 각각의 키워드들은 이미 전국의 학교 현장 여기저기서 실험적으로 적용 중인 개념들이다. 국민일보는 5회에 걸친 현장 취재를 통해 미래교육 개념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어떤 교육적 함의를 품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동탄중앙고에 다니는 이호민(왼쪽)군이 지난 13일 경기 화성 동탄중앙이음터 ICT프로그램실에서 장난감 무선조종 자동차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같은 학교 친구인 김근욱(오른쪽)군은 다른 친구와 함께 전문가용 드론을 들여다보며 장비를 손질하고 있다.

동탄중앙고에 다니는 이호민(18)군은 여름방학을 활용해 장난감 무선조종 자동차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하고 있다. 인간의 조종 없이 목적지를 찾아가는 자율주행 기능을 입히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고교 입학부터 꾸준히 공부해온 ICT(정보통신기술) 지식을 총동원하고 있다. 초반에는 코딩 작업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를 수정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현재 오류 대부분을 수정하고 자동차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단계다. 이군은 테슬라모터스의 일론 머스크 회장에게 매료돼 자율주행차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꿈이 담긴 물건인 셈이다. 이군은 “미래에는 자동차를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자율주행 시스템 속에서 누구나 편리하게 공유하게 될 것이란 얘기에 매력을 느꼈다. 내가 할 일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군 옆에선 같은 학교 친구 김근욱군이 고가의 드론을 이리저리 손질하고 있었다. 어떤 장비인지 묻자 잠시 드론을 내려놓더니 “인스파이어2예요”라면서 600만원이 넘는 전문가용이라고 말했다. 김군은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몰려다니며 노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막연한 희망사항이었다. 그러다 중학생 때 드론이 찍은 영상에 강하게 끌렸다. 김군은 “동탄에 있는 한 사찰을 허락받고 찍어봤는데 숲에 박혀 있는 듯한 사찰 모습이었다. 평소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김군은 틈틈이 공부해 드론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대학에서 드론공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지난 13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중앙이음터(중앙이음터)에서 만난 학생들이다. 고교생 10여명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 2016년 하반기 문을 연 중앙이음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이음터는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학교 교육에 지역사회가 기여한다는 개념인 ‘학교시설 복합화’의 산물이다. 학교 땅에 지자체가 수영장이나 도서관, 체육관 같은 생활SOC를 조성해 지역주민과 학생이 공유하는 방식이다. 학교 일과시간에는 학생이, 일과시간 이후나 휴일에는 지역주민과 학생이 함께 쓴다. 학교시설 복합화 방식은 정부가 18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구상의 한 축이어서 멀지 않은 미래에 전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장점은 접근성이다. 중앙이음터는 동탄중앙초, 동탄중, 동탄중앙고 중간 지점에 있다. 동탄중앙초와는 연결통로로 이어져 있어 통학로로도 활용된다. 중학교는 길 건너편, 고교는 중앙이음터가 조성된 청계중앙공원 안에 함께 있다. 중앙이음터를 중심으로 주거공간과 학교들이 한 덩어리로 묶인 ‘스쿨 파크’ 형태다.


그래서 중앙이음터는 학부모이면서 지역주민인 이들이 주로 이용한다. 도서관에서 만난 박건서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 찬진군과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박씨는 직장 업무와 관련된 서적을, 아들은 학습 만화를 보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도서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들에게는 학교 독서 수업을 받던 익숙한 공간이고, 학부모에겐 아이 손잡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도서관이다.

5층에는 김군과 이군을 인터뷰한 ICT프로그램실(메이커스페이스)이 마련돼 있다. 고교생 24명으로 구성된 ICT 동아리 학생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최신 컴퓨터실에 학교에 1대 있을까 말까 한 3D프린터가 39대나 있었다. 레이저 커터와 3D펜, 열풍기 같은 각종 장비들도 갖춰 놨다. 드론의 경우 보급형부터 전문가용까지 빌려주고 있다. 개별 학교에선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장비들을 학생들이 마음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군은 “이 시설이 없었다면 서울의 메이커스페이스를 오갔어야 했을 텐데 아마 자율주행차를 직접 만들 생각까지는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했고, 김군은 “장난감 드론도 아니고 여기가 아니면 전문가용을 만져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 인생을 많이 바꿔준 시설”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지역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이 학교 교육에 활용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갖추기 어려운 요리스튜디오에서는 요리전문가와 교사가 공동으로 요리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GX(집단운동)실에서는 요가 강사와 체육수업이 가능했다. 중앙이음터 인근에 위치한 동탄다원이음터에선 전문적인 방송 장비를 갖춰놓고 방송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소극장에서는 지역주민이 공연을 올리면 학생이 배우고 즐기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박현규 동탄다원이음터 센터장은 “지역주민 입장에선 보육시설부터 도서관까지 다양한 시설을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선 발길 닿는 곳에 학교가 아니어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제공받을 수 있어 서로 좋다”며 “다만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원하는 요소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고 학교 일과시간에는 지역주민이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만은 지역사회와 학교가 시간을 갖고 풀어가야 하는 숙제”라고 말했다.

화성=글·사진 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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