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동강 난 인도 여객기, 위험한 활주로 9년 전 경고 무시했다

정은혜 2020. 8. 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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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지코드 공항에서 폭우 속에 착륙하던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소속 여객기가 두동강 나는 사고가 났다. 사진은 구급대원들이 사고기에서 구조한 부상자를 이송하는 모습.[AFP=연합뉴스]

인도 항공당국이 지난 7일 폭우 속에서 착륙하다 두 동강이 난 에어인디아 여객기의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이 사고로 탑승자 190명 중 기장·부기장 등 18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 승객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9일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 민간항공 사고기조사국(AAIB)은 전날 사고기 잔해에서 블랙박스와 조종석 음성녹음기를 찾아 조사본부가 있는 델리로 보냈다.

사고기는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소속 B737 특별기(IX-1344)로 지난 7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귀국을 원하는 인도 국민을 태우고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지코드(옛 캘리컷) 공항으로 돌아온 항공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두바이의 국제선 정기 항공편이 끊기자 인도 정부가 자국민 수송을 위해 편성한 특별 항공편이었다. 이 비행기는 케랄라주 코지코드공항 활주로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 바깥 비탈길로 미끄러지며 방호벽을 들이받는 충돌 사고를 냈다. 이 과정에서 여객기는 두 동강이 났다.

인명 피해는 주로 방호벽과 충돌한 기체 앞부분에서 발생했다. 기장과 부기장, 앞 좌석 승객 18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4명도 있었다. 22명은 중태다. 뒷좌석 승객들은 큰 부상 없이 잔해에서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충돌 후 비행기 연료에 불이 붙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그나마 인명 피해가 줄었다.


생존자 "활주로서 비행기 속도 빨라져"

7일 오후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지코드 공항에서 발생한 사고로 기장과 부기장 등 18명이 숨졌다. 사진은 방호벽과 부딪힌 사고기 앞부분의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탑승객 무함마드 주나이드(25)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비행기가 (착륙 당시)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활주로에서 미끄러진 뒤 충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15초 만에 일어났다"며 "정말 두려운 순간이었고 다시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위험한 활주로, 이미 2011년 경고 나와

인도 남부 케랄라 지역 코지코드공항에서 발생한 에어인디아 항공기 사고 관련, 인도 당국이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장에는 민간항공 사고기조사국과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관계자 등이 나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아직 사고 원인을 말하기는 이르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항공 전문가들은 언덕 위에 있는 코지코드공항 활주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탁상형 활주로(table top runways)'로 불리는데, 활주로 옆으로 34m 깊이의 가파른 경사면이 있는 데다 안전공간도 좁아 애초에 사고에 취약했다는 것이다. 2850m 길이의 활주로 옆면과 이착륙 끝 지점에 있는 안전공간은 각각 75m, 90m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활주로를 둘러싼 안전공간은 150m~200m 정도가 확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항공 전문가 모한 란가나단은 힌두스탄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코지코드 공항 활주로는 습한 날씨에 특히 위험하다는 경고가 2011년에 이미 나왔다"며 "폭우 속에 해당 활주로 착륙을 시도한 건 신중하지 못했다. 다른 공항에 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 당국은 지난 10년 동안 탁상형 활주로에 안전 시스템을 설치하라는 권고를 최소 2번 무시했다. 2010년 또다른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제트기 추락 사건 조사 보고서에서도 탁상형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는 항공기를 정지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권고가 제시됐다. 2011년에도 항공 규제기관의 민간 자문위원이 고위 당국자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조종사 과실 가능성도 제기돼

8일 인도 경찰이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항공기 사고 현장 인근을 통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비에 젖은 활주로에 수막현상 또는 착시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고 있다. 조종사의 과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미 두 차례 착륙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세 번째 시도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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