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오병상 2020. 8.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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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7월 27일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남북 합의서(오른쪽)과 같은 양식의 이면합의서(왼쪽)를 보이며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1.
대형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박지원 국정원장이 취임한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전 아직 궁금합니다. 7월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이 공개한 ‘이면합의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2.
‘이면’이란 뒷면. 앞면의 반대말. 앞면에 해당되는 정식 합의서는 4.8남북정상회담합의서, 즉 ‘김대중 김정일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면합의서란 정식 합의서의 뒷면에 감춰진 별도의 비공개 합의서란 뜻이죠. 뭔가 공개해선 안될 것 같은 내용, 뭔가 문제가 있는 합의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3.
이면합의서의 골자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남한정부가 북한에 3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5억 달러는 지난 2003년‘대북송금 특검’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나머지 25억 달러 얘기는 이번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당시 박지원 후보는 이면합의서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청와대도 박지원 국정원장을 임명하면서 “이면합의서 문건은 정부 내에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4.
그래도 궁금합니다. 우선 ‘정부 내에 없다’는 표현만으론 궁금증을 떨치기 힘드네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현재 청와대와 통일부 국정원에 같은 문서가 없다’는 얘기인데, 뭔가 설명이 충분치 않은 느낌이 남습니다.

5.
이런 의심은 남북관계 관련 과거 경험에서 비롯됐다 할 수 있습니다. 5억 달러 송금 사실이 알려진 과정의 아픈 경험 말입니다.
대북 송금이 처음 알려진 것은 정상회담 2년 뒤, 미국 의회보고서 덕분입니다.

6.
2002년 3월 26일 저녁 7시쯤 신문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다음날자 조간신문 가운데 가장 먼저 찍는 일부가 저녁 7시쯤 각 언론사에 배포되는데, 이를 가판이라고 합니다.

근데 이날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가판 1면 머릿기사가 ‘현대, 북한에 4억 달러 비밀제공’이었습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이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인용보도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이 돈이 군사비로 사용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덧붙여져 있었기에 엄청난 쇼크였죠.

7.
이날 밤 기자들은 사실을 확인하느라 야단이었고,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느라 법석을 떨었습니다. 정부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적극 부인했습니다.
“부시 행정부 매파들이 흘린 엉터리 정보” “래리 닉시(보고서 작성한 한반도전문가)는 형편없는 사람”등등. 현대측도 “보낼 돈도 없는데 뭔 소리냐”며 강력부인.

결국 이 기사는 오보로 간주됐습니다. 다른 신문들이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대특종을 한 대한매일조차 기사를 찌그러트려 잘 안보이게 바꿨습니다.

8.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 뒤 5억 송금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국회에서 당시 야당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현대에 4000억원을 빌려준 산업은행의 엄낙용 전 총재가 이를 인정했습니다. 청와대 압력이었다고.

엄 총재는 폭로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그해 6월에 발생한) 서해교전 당시 화력을 보강한 북한 함정을 보고, 송금한 돈으로 무장했구나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했죠.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바뀌고 특검이 출범해 모든 사실이 밝혀집니다. 다 맞는 얘기였죠. 데자뷰가 아니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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