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 임대차 3법, 기로에 선 전세제

이택현 2020. 7. 3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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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보호 강화는 대체로 환영.. 서민 주거비 부담 커질 가능성도
서울을 중심으로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임대차 3법’ 관련 일부 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오전 서울 잠실대교에서 보이는 강남권 아파트 단지 위로 먹구름이 짙게 내려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은 전세 제도뿐 아니라 주거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기존 전세 제도는 집주인들에게 유리한 제도였다. 임대차 3법 도입에 반대했던 이들이 이 법에 대해 “임차인을 ‘갑’으로 만드는 법”이라고 주장한 것은 거꾸로 기존 전세 제도가 세입자에게 불리한 제도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임대차 3법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3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4주(27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0.17로 전주(0.14)에 비해 상승 폭이 확대됐다. 이로써 전국 전세가격은 지난해 7월 이후 56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해 올해만 2.53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상승치가 -2.55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세가 더 가파르게 느껴진다. 정부가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2·20 대책, 6·17 대책을 숨 가쁘게 내놓으면서 매매가격은 등락을 거듭했지만 전세가격은 착실히 오름세를 키우고 있다.


임대차 3법 추진과 관련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제안이유를 보면 이처럼 전셋값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임대인이 과도하게 인상을 요구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세입자가 쫓겨나는 상황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보장된 계약 기간을 늘리고, 임대료는 직전 계약 임대료 5%와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정한 상한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제한해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전세가 상승을 막겠다는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한 세입자 보호 강화에 대해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세입자가 집주인에 대항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89년 기존 1년이던 의무계약 기간을 2년으로 늘렸지만 이 역시 세입자 보호에는 부족한 조치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계약갱신청구권 통과를 앞두고 ‘2+2+2안’ ‘무기한 계약갱신안’까지 발의됐던 이유다.

세입자를 제대로 보호하려면 추가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보증금 의무보증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입장문에서 “이번 법 개정에 집주인이 실거주 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거부할 수 있게 한 점도 문제”라며 “계약 기간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 4년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직계존비속까지 포함한 이러한 단서조항은 세입자들에게는 크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이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전세가격은 입주 물량과 매매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시장에서는 2017년 이후 아파트 매매가격이 크게 올랐고 전셋값도 이에 따라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전셋값 상승이 인위적인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에 의한 것이니만큼 장기적으로 매매가격을 안정시키고 공급을 늘리면 전셋값도 안정될 거란 관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전월세상한제로 전셋값을 억지로 누르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매매가격이 오르면 시차를 두고 전세가격도 오르는데, 임대차 3법을 도입해 이를 인위적으로 누르려고 하면 공급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부동산 규제와 임대차 3법, 코로나19로 인해 심화한 저금리 상황이 맞물려 전세 제도 소멸을 앞당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성장 기조 속에서 시세차익을 기반으로 유지돼 온 전세제도가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는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은 전세난이 심화할 때마다 제기됐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이 전에 없던 시장 질서를 만들면서 소멸 시기가 더 빨라진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는 저금리 기조 속에서도 전세제도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 전세 비중은 71.59%였고 4월(68.56%)을 제외하고는 70%대를 유지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세대란이 극심했던 2015년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 전세 비중은 57.9%까지 떨어졌었다. 만약 전세대란이 심화하면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세 제도가 한국 사회와 경제에서 차지해 온 역할을 예의주시하면서 부작용을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표는 “전세 제도는 민간 임대를 활성화해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고 경제 성장에도 도움을 준 제도”라며 “50년 동안 나름대로 자리 잡고 사회적 컨센서스가 형성된 제도인데 지금 집값이 오른다고 다주택자와 전세제도의 역할을 부정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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