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면동 그린벨트 못푼다" 서초구, 정부에 반기 들었다

한은화 2020. 7. 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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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서초구청장 단독인터뷰
정부 "옛 한국교육개발원 부지
임대 344가구 건립 허가해달라"
서초구, 29일 SH공사에 불허가
"집값 올려놓고 땜질 처방 요구"
서울 서초구 우면동 전 한국교육개발원 부지의 모습. 정부는 그린벨트에 지어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서초구에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했으나 서초구가 불허가 통보를 했다. 중앙포토

서울 서초구가 정부의 땜질식 공급 대책에 반기를 들었다. 서울 내 25개 자치구 중 최초다. 서초구는 29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제출한 우면동 전 한국교육개발원 부지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토지거래허가신청에 ‘허가 못 함’ 통보를 했다. 범정부 주택공급 확대 태스크포스(TF)에서 서울 내 추가 유휴 부지로 꼽은 땅이다. 정부의 주택공급용 유휴부지 찾기에 첫 제동이 걸린 것이다.

30일 서초구에 따르면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 15일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있는 부지(2만2557㎡)에 344가구의 노인ㆍ청년 대상 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토지거래허가서를 제출했다. SH공사가 한국교육개발원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기 위해 자치구에 토지거래허가서를 제출한 데는 이 땅의 78%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강남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거래를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이 땅도 1970년대 그린벨트로 지정되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됐다.

정부는 그린벨트 안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노인임대주택 98가구를 넣고, 그린벨트 밖 방송 통신시설로 지정된 주차장 부지를 2종으로 상향해 7층 규모의 청년 임대주택(246가구)을 신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허가권을 쥔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이날 “그린벨트 안에 임대주택을 짓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집값은 서울시가 다 올려놓고, 그린벨트까지 훼손해가며 왜 자꾸 임대주택만 지으려 하나. 서초구의 현안으로 들어온 만큼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중앙포토

Q : 왜 불허 통보를 내렸나
A : “법적으로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린벨트를 풀지 않는 한 추가로 개발할 수 없는 땅이다. 그린벨트 내에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려면 실수요, 즉 직접 살아야 한다. 방송통신시설로 지정된 땅 역시 용도변경이 안 된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토지이용목적에 맞지 않아 허가를 안 하기로 했다. 그린벨트를 보전하기로 해놓고 뒤로 훼손하려는 게 말이 되나. 4년 전 민간 임대주택사업자가 똑같이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했을 때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보전해야 한다며 막은 땅이다.”

Q : 서울시가 4년 전 이 땅의 개발을 불허했다?
A : “한국교육개발원은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도시 이전 방침에 따라 2017년 충북 진천으로 이전했다. 이전에 앞서 2016년 민간기업에 이전비용 마련 차원에서 부지를 881억원에 매각하려고 했다. 해당 기업은 여기에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서울시에 기업형 임대주택공급촉진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했는데, 서울시가 퇴짜놨다. ‘그린벨트 보전’이 이유였다. 결국 기업은 계약금 수십억 원을 날렸다. 민간은 안 되고 서울시는 된다는 게 말이 되나. 행정의 일관성도 없고 신뢰성도 없다.”

Q : 이미 건물이 들어서 있고 훼손된 그린벨트를 활용하자는 취지 아닌가
A : “훼손됐다고 거기다 다시 지으면 또 50년 대못을 박는 거다.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보전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건 정부 아닌가. SH공사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안은 사실상 신축이나 다름없다. 40년간 공공이 훼손해서 사용한 만큼 다시 원상회복하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그린벨트인 태릉 골프장도 공급 후보지로 거론되는데 부동산 규제정책의 실패를 그린벨트 훼손으로 다급하게 땜질하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Q : 주택 공급은 어떡하나
A :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안이 있다. 건물이 있는 그린벨트는 그대로 두고, 주차장 부지를 준주거(서울시 조례상 용적률 400%)로 상향하면 20평형대 500가구를 지을 수 있다. 이를 임대가 아니라, 분양했으면 한다. 청년ㆍ신혼부부 분양주택이다. 시세의 80% 수준으로 분양하고 분양가의 20~30%를 선납하면 소유권 이전을 해준다. 나머지 돈은 30년간 주택 모기지(저리융자)를 활용해 상환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린벨트에 있는 건물은 지역주민을 위한 기반시설로 활용하다 점진적으로 자연으로 복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서초구 우면동의 전 한국교육개발원 건물과 주차장의 모습. 건물이 들어선 땅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서초구에 따르면 현재 우면동 일대 전용 49㎡의 국토부 실거래 시세는 8억7000만원 상당이다. 이를 청년 분양주택으로 공급하면 시세 대비 80%(7억원) 저렴하게 분양하고, 분양가의 20~30%(1억4000만~2억1000만원)만 내면 나머지는 30년간 저리 융자로 갚으면 된다는 계산이다.

Q : 결국 누군가에게는 로또 분양 아닌가
A : “임대주택 정책으로 집값 올린 주범이 서울시다. 서울 역세권에 청년 주택 8만 가구 짓겠다며 민간사업자에게 용적률 배로 올려주고, 저리 대출해줬다. 이 혜택으로 역세권의 땅값을 또 올렸다. 민간사업자는 영구 임대 물량 빼고 의무 임대 기간인 8년이 지나면 물량 70~90%를 일반 분양할 수 있다. 결국 개발 이익은 민간사업자가 챙기고, 8년이 지나면 비싼 분양가를 댈 수 없는 청년들은 사는 집에서 또 나가야 한다. 청년들은 만년 세입자로, 주거 유목민으로 살란 이야긴가. 내 집 마련하고 싶은 청년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로또 분양을 막기 위해 시세 차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방안 등 방법을 만들면 된다.

Q : 정부는 공공임대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A : “유럽처럼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자는 건데, 한국과 유럽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노후 보장과 자녀에 대한 상속의 의미가 있다. 기성세대는 저렴한 분양주택으로 자산축적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청년에게 주택은 25년간 소득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 됐다. 정부는 청년과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의 욕망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자꾸 포기하게 한다.”
조 구청장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서초구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8년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장려했다가 최근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다. 서초구는 당시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려는 주민이 몰려들어 홍역을 치렀다. 그리고 3년 만에 정부가 폐지 수순을 밟자 다시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하소연이다.

조 구청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누더기가 된 지 오래”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또 “정책 실패를 자인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신뢰도를 잃었다”며 “공급 확대를 위해 강남 재건축을 용적률 상향 등으로 과감히 완화하고 이에 따른 공공기여를 임대주택 건설로만 받지 말고 기여금으로 받아 반은 강남 인프라 추가 구축에 쓰고, 반은 강북에 투자하는 식의 획기적인 공급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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