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이] "부동산정책, 간지러운 곳 두고 엉뚱한 데 긁는 격"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2020. 7. 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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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국내외 부동산 시장과 대책 진단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열심히 노력하고 애는 쓰는데,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은 간지러운 곳을 두고 엉뚱한 데를 피나도록 긁는 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6 17 부동산 대책’의 후폭풍이 거세다. 대책 발표 후에도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전세 품귀현상에 경기도 김포·파주 등에서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보완 지시로 올해 들어 네 번째, 현 정부 들어 22번째 후속 대책이 예고된 상황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를 만났다. 6 17 대책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들었지만 해외 부동산 시장 상황은 어떤지, 그들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심 교수는 350년간 세계 대도시의 집값을 조사한 해외 연구 등을 예로 들며 “우리보다 더 많이 오른 나라에서도 우리 같은 규제를 하는 나라는 없고, 정부 정책은 각종 연구 논문과 대부분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당장은 통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큰 역풍, 강한 상승을 불러올 정책을 펴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하지만 막대한 부동자금과 초저금리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나라 부동산 시장은 어떤가.

“선진국들은 3~4년 전부터 조정을 받아서 -5% 정도까지 떨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각국 정부들이 돈을 어마어마하게 풀었고, 그 돈이 대도시로 쏠리면서 상승했다. 경제가 좋을 때는 집값이 다 같이 오르지만 경제가 안 좋은데 유동성만 있으면 꺾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만 계속 올랐고, 희귀하게 풍선효과로 지방까지 확산됐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이전에 조정받았어야 했는데, 정책 때문에 집값 폭등이 좀 더 길어진 측면도 있다.”

-6·17 대책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정책을 펼 때는 누가 수혜 대상이고 누가 피해를 입는지, 장단기 효과는 무엇인지, 지역별 풍선효과가 나타나는지, 아파트-오피스텔-단독주택 각 상품별로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검토한다. 그 과정이 제대로 없었던 것 같다. 6·17 대책의 수혜계층은 현금 부자들이고, 피해계층은 집 살 길이 막힌 3040 무주택자들이다. 지금까지는 다주택자들이, 강남 사람들이, 고가주택 부자들이 투기를 해서 문제라고, 이 사람들만 규제하면 집값이 잡힐 거라고 했다. 이제 3억원짜리 아파트까지 묶으니까 ‘나도 투기꾼이냐’ 서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거다. 법학의 금언 중 ‘도둑 100명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 명을 만들지 않는다’는 게 있다. 우리 부동산 정책은 실수요자 100명을 희생하더라도 투기꾼 한 명을 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어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가장 나았다고 평가하나.

“부동산 대책이 없는 정부가 제일 낫다. 이상한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집값을 안정시킨 대통령이 한 명 있다. 주택 200만호 건설한 노태우. 그때 변기 생산업자가 공장을 24시간 돌려도 변기 수요를 못 맞췄다고 한다. 변기를 수입하면 호화사치재 수입이라고 큰일 나던 시절이라…. 그 정도로 공급을 크게 했다는 거다. 당시 우리나라 집이 680만채쯤 됐는데 200만채를 5년 만에 지은 거다. 그래서 1989년과 90년 집값 그래프를 보면 30%씩 올라가다가 91년 200만호 입주하면서부터 5%로 떨어졌다. 그런 의미로는 그때가 제일 나았을 수도 있겠다.”

-대책이 없는 정부가 낫다는 건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뜻인가.

“그냥 두라는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시스템만 만들어놓고 관리하라는 거다. 선진국 정부는 물가 상승률 정도의 집값 상승을 제일 좋게 여긴다. 가격이 올랐을 때 내리기 위한 정책을 펴는 게 아니라 상승률을 줄이기 위해 공급을 늘린다. 집값을 안정시키는 수단이 수요와 공급인데, 대출과 세금은 수요를 억누르거나 늘리는 정책이다. 중요한 것은 공급이다. 서울 집값이 비싸도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다. 세계 모든 대도시들이 그런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우리만 수요를 억눌러 잡을 수 있다, 그건 아니지 않나.”

-결국 공급 얘기인가.

“선진국의 부동산 정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거고, 두 번째는 시장 시스템을 만드는 거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게,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이 줄도록. 이 시스템을 복원해야 되는데, 이 시스템을 복원하면 재건축 허용으로 단기적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입주할 때는 가격 안정화 효과가 분명히 있다. 1만~2만 가구가 입주하면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2018년 헬리오시티 때 그랬고, 2008년 잠실 1~3단지 입주 때 6개월 동안 강남이 초토화됐다. 그런데 이런 정책을 하면 임기 중에 아파트값이 오르고, 임기 후에 안정화될 거라 정치인들은 꺼릴 수 있다.”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문 대통령이 올해 초 ‘부동산 가격 원상회복’을 말했다. 2017년 5월 취임 전 수준을 언급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는데, 어떻게 보나.

“내가 5억원에 산 아파트가 10억원이 됐다가 다시 5억원이 되면, 나한테는 아무 문제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대출 받아서 9억원에 산 사람은 집값이 5억원이 되면 파산한다. 정책하는 분들 중에 30%는 빠져야 된다고 하는데, 집값이 30% 빠지는 건 사회적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집값이 제일 많이 빠졌던 게 IMF 때였다. 그때 12~13% 빠졌는데 노숙자가 수십만명 나왔다. 30%가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영구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라는 요구도 있다.

“서민들에게 집을 지어 주는 건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하고 있다. OECD 국가의 평균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11%쯤 되는데, 북유럽 국가들과 기타 국가 두 가지로 나뉜다. 북유럽의 공공주택 비율이 20%가 넘는데 미국은 1%, 영국과 일본·독일은 5%, 우리는 6%다. 그럼 우리는 OECD 평균을 목표로 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북유럽처럼 20%로 가야 할까? 논문들의 95% 이상이 현금 복지, 바우처가 좋다고 한다. 우리도 서울시에서 저소득 가구에 월 5만~7만5000원씩 임대료 보조를 하고 있다.”

-너무 소액 아닌가.

“대부분의 국가는 자기소득의 3분의 1을 넘는 월세에 대해 보조를 하고 있다. 월급이 300만원인데 월세로 110만원을 내면 10만원을 대주는 식이다. 공공임대주택은 낙인효과가 있다. 분양 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를 같은 동에 섞어놓아도 초등학생들이 ‘쟤는 임대주택 산다’고 다 안다. 임대주택을 특정 지역에 대규모로 공급하면 슬럼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은 임대주택 비율을 낮췄고, 영국도 임대주택 200만호를 기존 세입자에게 불하하는 정책을 폈다.”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다주택자 세금 부담 강화를 중심으로 하는 추가 부동산 대책이 임박했다.

“보유세를 높여서 세금을 더 걷는 건 괜찮다. 그런데 보유세와 집값 안정만 놓고 보면 관계가 별로 없다. 보유세 제일 높은 나라가 영국과 미국인데, 도시별로 차이가 있지만 집값이 폭등했다. 보유세가 제일 낮은 나라는 독일인데, 거기도 폭등했다. 보유세를 올리면 집값이 한 번은 떨어지지만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다시 움직인다. 정부가 양도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올리자고 했는데, 둘 다 올리고 있다. 양도세와 보유세를 합치면 우리가 OECD에서 1~2등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 집값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전염병과 부동산의 상관관계는 어떤가.

“1200년부터 1500년까지의 땅값을 조사한 미국 학자가 있는데,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지만 지가의 급격한 하락은 없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때는 집값이 단기적 충격 이후 조금 올랐다. 당시에는 자동차 개발 같은 신기술이라든가 철도 개설 같은 호재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집값이 올랐다는 거다. 2002년 사스 때 홍콩은 70%까지 거래가 줄어들었다. 집값은 2% 정도 빠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코로나19 때문에 집값이 크게 빠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 앞으로의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단기적으로 빠질 거다. 집값에 미치는 변수가 수백 가지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경제다. GDP가 좋으면 집값도 올라가고, GDP가 꺾이면 집값도 빠진다. 이제 집값도 조정을 받아야 될 것이라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초양극화 현상이 올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낮은데 돈이 많이 풀려있으면 서울, 지방 대도시, 관광지처럼 될 곳에만 쏠린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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