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두 동네의 묘한 온도 차.. "애써 담담한 대치, 조용히 웃는 도곡"
"2020년에 거주 이동과 거래를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청담·대치·삼성을 누르면 도곡·역삼 등 주변지역에서 반사효과가 나올 수 있어요."
서울 강남구 청담·삼성·대치동, 송파구 잠실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등의 내용을 담은 6·17대책이 발표된 지 하루가 지난 18일, 강남권 부동산 시장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 내 아파트는 구입을 해도 바로 입주하고 살아야 해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 지역 내 아파트 단지는 6만2000가구에 육박한다.
특히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강남구 대치동과 도곡동 일대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여부로 희비가 엇갈리게 되면서 셈법이 복잡해진 분위기다. 지하철 도곡역 2번출구 쪽으로 나가면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가 있고, 4번출구 쪽에는 도곡동 ‘삼성타워팰리스’가 있다. 이번 6·17대책으로 걸어서 겨우 13분 거리에 있는 두 아파트 단지에 온도 차가 생겼다.
도곡동 부동산 시장에서는 바로 옆 대치동이 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반사효과를 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타워팰리스 단지를 끼고 있는 A공인중개업소장은 "17일 대책이 나오자 사람들의 매수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자녀 집 마련을 목적으로 증여세를 감수하고 갭투자를 하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청담·대치·삼성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반사효과로 도곡·역삼동 등 주변 지역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안그래도 최근 타워팰리스 내 오피스텔에 대한 수요자의 관심이 늘고 있던 상황이다. 타워팰리스의 경우 저층은 주거형 오피스텔, 고층은 아파트로 구성돼있는데, 올해 3월부터 조정대상지역의 3억원 이상 주택 거래 시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 의무화하자,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오피스텔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인근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권 규제는 계속 늘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몇 군데만 핀셋으로 뽑아 추가로 강화하다보니 강남구 내 수요에도 새로운 흐름이 생기는 상황"이라면서 "여전히 강남에 진입하려는 사람은 많다"고 했다.
반면 규제 사정권 중심에 선 대치동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다소 달랐다. 현재 큰 동요는 없는 상황. 이를 두고 한 금융업계 부동산 전문가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지 않겠느냐"며 "워낙 강력한 규제이기 때문에 가격 조정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로 그동안 가파르게 올랐던 대치동 아파트 갭투자자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급매물이 잇따르는 등 가격이 꺾이지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역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이 동네는 정책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라면서 "큰 폭의 가격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사이에 있는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몇 달 전부터 강남권 전반이 거래가 얼어붙은 데다 이번 정책 발표 전에 나온 급매물도 대부분 소화됐다"면서 "당장 급매가 늘거나 가격이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작년 12.16 대책 이후로 어차피 강남권은 아파트를 살 때 대출이 안나왔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충분한 사람들만 접근해왔다"고도 했다.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의 경우 모든 금융권에서 대출을 금지하는 등 고가아파트 시장을 타깃으로 한 ‘12·16대책’ 이후 강남권 주요 아파트들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수요보다는 실거주 목적 또는 장기투자 수요층이 유입되고 있다는 평가가 깔린 것이다.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이 단지는 학군 수요가 뒷받쳐주고 있는 데다 신축이라는 메리트가 있어 가격이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그동안 크게 오른데다 규제 여건 상 상승 여력이 크지 않아 현 시세를 고점으로 보는 경우도 많아 거래는 더 위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두 아파트의 거래동향을 보면 래미안대치팰리스(래대팰)1단지는 지난달 26일 전용면적 85㎡짜리가 29억원(22층)에 거래됐다. 작년 12월에는 동일면적 11층짜리가 29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타워팰리스1~3차의 경우, 최근 대형면적 위주로 거래됐다. 5월 타워팰리스1차 164.9㎡짜리가 28억3000만원(26층)에, 동일면적 29억38000만원(43층)등에 손바뀜이 있었다.
하지만 대치동이 다 담담한건 아니었다. 래미안대치팰리스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아파트들은 이번 대책으로 제법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서울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만 분양권을 주는 규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1979년에 지은 은마아파트는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은지 17년째이지만 재건축사업은 답보 상태다. 정부와 서울시 등 규제당국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심의 지연 등으로 재건축사업이 멈춰선 가운데 또 하나의 거대 암초가 등장한 셈이다.
E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기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거주 환경이 열악한 곳도 있고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규제로 인해 2년 거주요건을 채워야하는 규제가 생겨 난감해졌다"면서 "팔고 싶을 때 팔지도 못하게 된 터라 실거주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대치동 지역 내 재건축사업 조합 설립 이전 재건축 단지로 은마아파트, 개포우성아파트, 선경아파트(1·2차) 등이 있다. 이번 규제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 중 2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조합원은 분양신청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6·17대책 발표 이후 일부 매물들이 나오고 있는 한편, 2년 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집주인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는 게 지역 공인중개업계의 얘기다. 이 지역은 학군 때문에 전세살이를 택한 사람들도 많은데, 임대를 해온 집주인이 실거주를 택하면서 전세시장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또 이번 대책의 ‘보완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은마아파트 인근 또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6·17대책 발표 이후 매물이 나오긴 했는데, 현재로선 가격을 크게 내린 매물은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대책 발표 후 2년 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집주인들도 많아 세입자들의 전세 문의가 잇따른다"면서 "이 지역 전세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치동에는 학군과 학원가를 보고 들어온 세입자들도 많다보니, 집주인이 실거주를 택하면서 전세 물량이 줄어 세입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토부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달 20억7000만원(13층), 20억4000만원(3층), 19억5000만원(10층) 등에 각각 거래됐다. 이 아파트 전세의 경우 이달 84㎡짜리가 6억5000만원(11층), 5억9000만원(13층), 5억원(5층)에 각각 거래 신고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책이 강남권 주택과 재건축 시장을 직접 규제하는 만큼, 투자수요를 위축시키고 실거주 위주 시장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거래 위축이 불가피해 향후 가격 조정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강남권에 대한 강력한 규제라 투자 수요가 줄어들고 실거주 중심 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권과 재건축 시장에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집값 하락 폭이 정부의 기대보다는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도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실수요가 아니면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은 안정될 것"이라면서도 "이는 수요를 일부 차단하면서 집값 상승 폭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어도 집값이 단기에 크게 하락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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