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해남에 바나나 주렁주렁..'아열대 작물' 갈아탄 농민들
지난해 따뜻한 겨울 등 아열대 재배 가능
"마늘·양파도 이상기온에 가격 폭락올까 불안"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직 푸른 바나나들이 가지에 매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해남지역 첫 바나나 농장 주인 신용균(74)씨는 "바나나가 노랗게 익어 수확하기 시작하는 7월이면 해남도 바나나 산지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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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아열대도 수지맞는다
신씨가 바나나를 키우겠다 결심한 것은 '이상기온' 때문이다.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2월까지 광주·전남 겨울철 평균 기온은 4.8℃로 1973년 기상관측 이래로 가장 따뜻했다.
국산 바나나 재배는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제주도 지역에 집중됐다. 신씨는 "아열대 작물을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기온"이라며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온도를 18℃ 이상 유지해야 하는데 해남은 내륙에서 가장 남쪽이라 다른 곳보다 따뜻해 입지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씨의 비닐하우스를 찾은 11일은 비가 내린 탓에 약간 선선한 날씨였다. 하지만 바나나가 자랄 수 있는 생육조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러도 가동하지 않았다. 가을철로 접어드는 9월에도 해가 저문 뒤에만 보일러를 가동하면 된다.
국산 바나나는 수입산보다 친환경으로 재배하면서 신선도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신씨는 "바나나 소비자가 외국산을 꺼리는 이유가 농약과 방부제 우려 때문"이라며 "국산은 장기 운송이 필요하지 않아 농약 등을 쓰지 않으면서 나무에서 아주 노랗게 익은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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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물 키워도 이상기온에 가격 불안"
신씨는 "13살부터 농사를 시작해 60년 동안 벼·마늘·양파·호박·배추 등 안 키워본 작물이 없지만, 가격 등락 폭이 너무 심한 탓에 수지타산이 안 맞아 그만뒀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 9일부터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으로 생산 과잉돼 가격이 폭락한 전남 신안 등 남부지역 마늘(남도종) 1000t을 수매하기 시작했다. 20㎏ 기준 남도종 마늘 도매가격은 11일 7만5000원으로 지난해 6월 12만원 대비 37.5% 하락했다. 이미 정부 마늘 수매물량으로 1만t을 계획했지만, 가격이 급격히 하락해 1000t을 추가 수매하는 상황이다.
신씨는 "배추를 키워 팔 때도 가격이 폭락하면 5t 트럭에 한가득 채워 농산물 도매시장에 보내도 1대당 20~30만원밖에 수익이 나지 않았다"며 "인건비 떼고 나면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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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도 아열대 작물 재배 권장 왜?
해남군은 아열대 지역 농민에게 패션프루트·애플망고·체리 등 아열대 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신씨도 해남군으로부터 바나나를 기르는 데 필요한 농업기술 교육과 예산 지원을 받아 바나나 재배에 도전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농민들이 아열대 작물로 고소득을 올리고 배추나 마늘·양파 등 특정 품종에만 생산이 집중돼 가격 폭락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막을 방법이 아열대 작물 재배 등 품종 다변화다.
해남군 관계자는 "우리 지역은 여주나 부지화·참다래 등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이 125㏊로 전남 최대 규모다"며 "아열대 작물 육성이 기후 변화 현상에 대응하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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