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촉발한 脫중국 리쇼어링(본국 이전)·니어쇼어링(인접 국가로 이전) 확산

명순영, 강승태 2020. 5. 2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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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중국은 4조위안(당시 약 800조원)을 2년 동안 쏟아붓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도로·철도 등 대형 건설사업을 앞세운, 이른바 ‘차이나판 뉴딜정책’으로 금융위기 파고를 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 “중국이 세계 경제가 국제 금융위기를 헤쳐나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박수를 쳤다. 이때만 해도 전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했다. 전 세계 강대국을 의미하는 G20, G7을 넘어섰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G2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지는 해’, 중국은 ‘떠오르는 해’로 평가받았다. 그야말로 슈퍼파워 중국이었다.

한국도 중국 열풍에 휩싸였다. 값싼 노동력을 좇아 대기업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지었다. 인구 15억명 거대 시장을 노리고 내수를 뚫겠다며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중국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도 뭉칫돈이 들어갔고, 중국어 배우기와 중국 유학은 붐을 이뤘다.

10여년이 지난 2020년, 판은 또다시 뒤집혔다. ‘팍스 차이나’는커녕 전 세계가 ‘脫중국’을 외치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이 중국 위상을 180도 바꿔놨다.

▶미중 2차 무역전쟁 조짐

▷中 보유한 美 국채 상환 거부론

전 세계가 ‘글로벌 공장’ 중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 시발점이 코로나19가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며 지난 1월 합의한 1차 무역합의가 실행되기 전 2차 무역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 1차 합의문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년 동안 서비스·공산품·농산물·에너지 등 4개 부문에서 2000억달러(약 245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 안팎에서는 ‘불이행’에 무게를 싣는 전망이 잇따른다. 중국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8%를 기록하고 글로벌 무역이 중지되는 등 중국 사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생각은 다르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경제적 성과를 내세우기 위해 중국의 약속 이행은 필수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1차 무역협상을 파기하겠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1차 합의 불이행이 현실화하면, 코로나19를 계기로 2차 무역분쟁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기업의 중국 내 공급망을 다른 나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국채 매각 논란도 재점화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약 1조1000억달러로, 일본에 이은 세계 2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중국 내에서 중국 정부가 보유한 미국 국채를 본격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내 ‘국채 상환 거부론’이 흘러나온 것과 관련 깊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묻는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탕감안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상환을 미국이 거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한다면 미국 국채 가격은 폭락하고 금리가 치솟아 미국 정부 차입 비용은 급증한다. 이 경우 달러·금융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무역전쟁은 시작됐고 글로벌 공급망의 재조정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부품 재고를 더 많이 비축하고 생산 상당량은 본국과 가까운 곳에서 고도의 자동화 설비를 활용해 만드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국 정부 어떻게 대응하나

▷美·EU·日 잇따라 中 의존 줄여라

미중 2차 무역분쟁이 아니더라도 미국 등 주요 국가가 중국과 거리 두기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뚜렷해 보인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산업 안보’의 절실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경제보복을 넘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서 탈중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호건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이 “EU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국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판단에서다.

리쇼어링(생산기지의 본국 귀환)이나 니어쇼어링(잠깐용어 참조)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리쇼어링 기조는 사실 버락 오바마 전임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오바마 정부는 유턴 기업 공장 이전 비용을 20% 보조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까지 낮춰 자국으로 귀환하는 공장을 환영했다. 법인세율을 21%까지 내리며 세제 지원책을 펼쳤다. 탈중국 바람은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더욱 강화됐다. 의회 내 대중국 강경파 의원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자고 주장한다. 톰 코튼 상원의원 등은 중국산 의약품과 재료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금지하고 원산지를 표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리쇼어링을 위한 정책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미국 정부는 중국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미국 제조기업 이전 비용을 100% 지원해야 한다”면서 “공장과 장비, 지식재산권과 재건 등에 대한 경비를 지원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탈중국’에 합류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긴급경제대책 예산 117조엔 가운데 ‘공급사슬 개혁’에 2435억엔(약 2조8000억원)을 배정했다. 일본 기업이 중국 생산공장을 이전할 때 비용의 3분의 2까지 지원한다. 일본뿐 아니라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제품을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할 때도 지원한다. 지난 4월 중순 가전 중견기업 아이리스오야마가 유턴을 결정하는 등 기업들도 빠르게 호응하고 있다.

가장 정신이 번쩍 든 곳은 유럽이다. 유럽 국가들은 코로나19로 중국산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구입하기 위해 전세기까지 보내야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오프쇼어링(생산기지의 타국 진출)은 지속 불가능하며 EU는 산업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脫중국 글로벌 기업

▷구글·MS에 이어 애플까지

정부만 탈중국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상당수 글로벌 기업은 탈중국을 몇 년 전부터 준비 중이다. 전염병 등 위기에 취약한 중국의 대처 능력은 글로벌 기업의 중국 불신을 키웠다. 이 때문에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급격히 바꾸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R&D 등 핵심 사업 중국 의존도를 확실히 줄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유럽의회 대중국 관계위원회 의장은 “코로나19로 최근 몇 달간 중국은 유럽을 잃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글은 보급형 스마트폰인 ‘픽셀4a’를 앞으로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또 올 하반기 선보일 차세대 스마트폰 픽셀5 모델은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노트북·태블릿PC인 서피스 제품을 올 하반기부터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애플은 아이폰 생산 일부를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애플은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자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했다. 생산거점이 한곳에 집중될 경우 발생하는 리스크를 분산시키겠다는 전략이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그 속도가 빨라졌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아이폰에도 고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는 등 압박을 가한 것도 정책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 탈중국 대안 1순위로 꼽히는 국가는 베트남과 인도다. 특히 인도는 중국만큼 시장이 큰 반면 임금 수준이 낮아 중국 대안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전 세계 기업이 공급망을 중국에서 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추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봤다.

윌리 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무역전쟁과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중국+1국’ 혹은 ‘중국+2국’ 정도의 다변화를 모색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대탈출 가능할까

▷일부 기업 이전은 하겠지만…

탈중국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세계 많은 정치인이 탈중국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과 달리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단 어떤 나라도 중국 물류 시스템이나 방대한 시장을 대체할 수 없다. 세계 10대 항구 중 일곱 개가 중국에 있다. 20년 이상 구축된 중국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대체할 만한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일부 기업 공장 이전은 가능하겠지만 국가 혹은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을 버리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앞으로 계속 세계의 공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3월 주중 미 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미국 기업 70% 이상이 팬데믹에도 중국 외부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커 깁스 상하이 미 상공회의소 회장은 “커들로 위원장이 미국 기업 이전 비용을 모두 대겠다고 했으나 회사를 옮기는 건 여행 가방 싸는 것과는 다르게 복잡한 과정”이라고 했다.

▶한국 대응 어떻게

▷말만 리쇼어링 곤란…규제 풀어라

각국 정부의 리쇼어링 움직임과 현실적으로 중국을 버리기는 어렵다는 분석은 한국 기업에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기업 상당수는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LG디스플레이 광저우 OLED 공장, SK하이닉스 우시 반도체 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배터리 3사(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역시 중국에 공장이 있다. 이들 공장은 하나같이 조 단위 투자금액이 집행됐다.

특히 LG디스플레이 광저우 OLED 공장은 코로나19와 함께 입국 제한 등 영향으로 가동이 늦춰졌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가동 예정이었으나 올해 3분기는 돼야 본격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OLED 사업 전략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LG디스플레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위기를 전방위적이고 구조적인 국내 산업 재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리쇼어링’ 얘기가 나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이미 나가 있는 공장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신규 공장은 다르다. 시장 접근성과 낮은 생산비용을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온 해외 진출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효성이 좋은 예다. 효성은 베트남에 지을 예정이었던 ‘아라미드’ 공장을 울산에 짓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장기 관점에서 국내에 공장을 짓는 것이 해외 진출보다 낫다고 판단해서다.

정부 역시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며 유턴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향이 ‘정책적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단기적인 세금 감면보다는 불안한 노사관계 해결,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근본적인 투자 환경을 바꿔야 한다”며 “정부가 유턴을 가로막는 규제는 무조건 해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니어쇼어링 근거리 아웃소싱. 본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인접 국가로부터 아웃소싱하는 개념. 최근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추세가 늘면서 리쇼어링 대신 동남아 등지로 니어쇼어링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9호 (2020.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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