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내로 팔고싶은데 쉽지 않네.. 신탁 카드 만지작거리는 다주택자들

연지연 기자 2020. 5. 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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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은퇴자인 김모(65)씨는 반포와 잠실, 도곡동에 하나씩 모두 세 채의 아파트를 가졌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부담이 커진 탓에 5월 말까지 주택을 매도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김씨는 "지난해 11월에 거래된 실거래가보다 2억원을 낮췄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자꾸 1억원은 더 깎겠다고 해서 팔기가 어렵다"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가 생각한 마지막 방안은 신탁상품 가입이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상담도 받았다.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자 신탁상품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다주택자는 5월 말까지 주택을 매도하기 위해 시장에 호가를 몇억씩 낮춘 급매물을 내놨다. 양도세 중과 한시면제 조건은 6월 말까지지만, 종부세 과세 기준일(6월 1일) 이전에 팔아야 종부세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도가 쉽진 않은 모양새다. 12·16 대책에 따라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이 나오지 않는데다, 주택구매대금 전수조사가 강력하게 이어질 것을 우려해 매수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융통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도 주택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울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실수요자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부동산에 돈이 묶여, 내 집이 팔려야 다른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자금증빙에 문제가 없는 매수자들은 시세가 더 떨어질 것이란 기대심리가 있어, 급매에서 더 깎으려고 하니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주택자 중에서는 집이 팔리지 않을 것에 대비해 신탁 상품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복수의 강남·서초 지역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5월 말까지 불과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이다보니 신탁 상품도 동시에 알아보는 다주택자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신탁이란 소유자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이전하고 신탁회사는 부동산을 관리·개발·운용해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부동산을 신탁에 맡기면 그 기간 동안은 소유권을 금융사에 갖고있기 때문에 다주택자는 종부세를 포함한 재산세를 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이 12억원인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59㎡(26평), 공시가격이 약 17억원인 강남구 도곡 렉슬 84㎡(33평), 공시가격이 약 4억5000만원인 송파구 파크리오 35㎡(16평)를 소유한 3주택자는 올해 보유세(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의 합)로 1192만원을 내야 한다. 도곡 렉슬과, 잠실 엘스를 신탁으로 넘기면 보유세가 약 500만원으로 줄어든다. 약 700만원 가량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신탁상품은 수수료가 있다. 금융사마다 다르지만 통상 공시가격의 연 0.1~0.3%로 책정됐다. 도곡 렉슬과 잠실 엘스를 맡기면 합산 공시가격(21억원)의 연 210만~630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매년 오를 것으로 예고돼 있는 종부세를 다소나마 줄일 수 있고, 실질적으로 주택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점이 있다는 게 신탁을 고려하는 다주택자들의 생각이다.

서울 도곡동의 공인중개업소를 찾은 서재환(67)씨는 "자식도 이미 1주택자라 증여를 해주는 것도 녹록치 않고, 그렇다고 손주에게 물려주기엔 아직 어려서 증여세와 매년 나올 보유세를 감당할 수 없다"면서 "5월 말까지 팔리지 않으면 신탁상품을 통해 절세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금융권은 물밑에서 신탁상품 판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한 생명보험사는 최근 고액 자산가들을 모아 ‘세율 인상에 따른 부동산 투자 방법’에 대한 강의를 열었다. 애초 정원을 15명으로 정했지만, 문의가 많아 28명까지 자리를 늘렸다. 이 행사를 마련한 보험사 재무설계사(FC)는 "강남 3구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들은 매도하지 않고 버틸 때까지 버티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면서 "정책은 유한(有限)할 거란 생각으로 신탁상품을 ‘소나기 피하는 우산’ 정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했다.

다만 신탁상품 가입에 따른 위험도 있다. 신탁상품으로 종부세를 회피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 신탁 부동산에도 종부세가 합산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될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신탁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에게 종부세 회피는 상품 취지에 어긋난다고 설명을 하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때 가서 새로운 방안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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