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일주일분 마스크 보내요" 진폐환자 울린 택배상자

박진호 2020. 3.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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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 키우는 40대 여성 진폐 재해자 위해 마스크 10장 기부
경남 진주시 50대 여성 사연 읽고 마스크 24개 등 생필품 보내
서울 양천구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임모(44·여)씨가 진폐 재해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보낸 마스크. [사진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우리 가족 일주일분 마스크 보내요. 진폐 환자분들 힘내세요.” 지난 18일 강원도 태백에 있는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에 택배 상자가 배달됐다. 상자엔 ‘꼭 필요하신 분께 드리면 좋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안에는 개별 포장된 마스크 10개가 들어있었다.

마스크를 보낸 사람은 서울 양천구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임모(44·여)씨로 진폐 재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일주일분 마스크를 보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임씨는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이 요즘 학교에 가지 않아 여유분이 있었다”며 “폐가 안 좋은 분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은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온 가족이 마스크 사지 않기를 실천해 왔는데 앞으론 마스크를 구매해 어려운 곳에 보내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사람 위해 마스크 사지 않기 운동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중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남편이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최봉희(71·여)씨 집에도 이날 방진 마스크 20개, 일반 마스크 4개, 손 소독제, 장갑, 라면, 치약, 비누 등 생필품이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이 택배 상자는 경남 진주시에 사는 김정숙(50·여)씨가 보냈다. 김씨는 “마스크가 없어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들다는 기사를 보고 남편이 쓰는 방진 마스크가 집에 조금 있어 도움될 것 같아 보내게 됐다”며 “요즘은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 매주 5부제를 통해 2개씩만 구매할 수 있어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씨 부부는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일회용 마스크를 여러 번 세탁해 쓰면서 버텨왔다. 그마저도 떨어지자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에 도움을 요청해 어렵게 면 마스크를 구해 병원에 가기도 했다. 또 5부제가 시작된 뒤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약국 앞에 줄을 서야 했다.

최씨 남편은 30년간 태백지역에서 일한 광부로 재가진폐환자다. 그는 일주일에 3번 태백과 원주에 있는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 최씨는 “당분간 새벽부터 나가서 줄을 안 서도 돼 너무 고맙다”며 “아직도 주변에 상황이 어려운 70~80대 진폐 재해자들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원·경북·충남·전남 진폐 재해자 5240명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중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공적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강원랜드 복지재단에 따르면 태백에 거주하는 진폐 재해자는 1328명, 정선 629명, 삼척 618명, 영월 213명, 기타 995명 등이다. 또 경북 문경 581명, 충남 보령 530명, 전남 화순 346명까지 합치면 총 5240명에 이른다. 진폐증은 석탄산업 종사자에게 발생하는 호흡기질환이다. 석탄 가루 등 분진으로 폐가 굳어져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질병이다.

황상덕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장은 “ 진폐 재해자의 어려운 상황을 접하고 마스크를 보내주신 성의가 너무나 고맙다”며 “마스크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해졌다. 보내주신 마스크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말했다.

태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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