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은 시한폭탄..마스크 빨아쓰는데 조심만 하라는 정부"

김현예 2020. 3.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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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예방적 요양병원 코호트' 시행에도
음압병실, 간병인 숙소 없는 현실 반영 안돼
요양병원이 마스크와 보호구 부족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에 놓여있다. [중앙포토]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으니 소독해서 쓰고 있어요."

8일 오전 통화한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원장은 한숨을 쉬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에도 고령의 중증환자들이 몰려있는 요양병원은 마스크를 비롯해 의료진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비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익명을 전제로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가방에 2주 치 상비약과 속옷을 항상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언제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와 (14일간) 격리 조치될지 알 수 없어서다.

그의 병원엔 200여 명의 환자가 있다. 고령인 환자 상당수가 뇌경색이나 치매,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고혈압과 당뇨 등의 질환도 있다.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기저질환자들인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사망자 중 대부분은 고령의 기저질환자들이었다.

게다가 종교시설이나 병원을 제외하고 코로나19의 집단 감염이 발생한 곳은 요양시설 등이 많다. 8일 현재 경북 봉화 푸른요양원에서만 51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경북 제일실버타운에서도 1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요양병원이 코로나19 감염의 시한폭탄이자 취약한 고리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감염에 취약한 고령의 기저질환 환자가 몰려 있는 요양병원의 '방어막'은 정작 허술하기 짝이 없다. 허술하다 못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마스크다. 보건소에서 이 병원에 지급한 것은 덴탈마스크 250개와 손 소독제 10여 개가 전부다. 간병인을 포함해 총 140여명인 직원에게 한 장씩만 지급해도 이틀도 못 버티는 양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매일 한 장씩 나눠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털아놨다. 그는 "의사는 마스크를 자체 구입하게 하고, 직원과 간병인에겐 2~3일에 한 장씩 배급하고 있다"며 "정부는 요양병원에 감염 확산을 조심하라고는 하는데, 실제 요양병원이 필요한 지원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직원들은 마스크가 부족하니 에탄올 스프레이로 소독해 2~3일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에탄올도 떨어져 가고 있어 소독기로 20분 살균해 쓰기도 한다. 그는 "오는 9일부터 병원협회를 통해 주문을 받는다고 하는데 정부의 발표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스크 지급 조건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직원은 4대 보험 가입자의 60%, 병상 수의 30% 만큼만 마스크 물량을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간병사'는 빠져있다. 그는 "간병인 전원이 중국인인데, 마스크 지급 인력에서 제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아시아드요양병원과 같은 건물을 쓰는 1층 한 병원에서 병원 관계자가 방역하고 있다. 부산시는 이 병원 사회복지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을 코호트 격리했다. 연합뉴스



중국인 간병인, 출입 제한 쉽지 않아

그는 "중국인 간병인에 대해서는 1월 24일부터 중국 방문이나 외출 시 14일간 격리, 간병 불가를 방침으로 정했지만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하거나 '물건을 사러 밖에 갔다 왔다'고 하는 등 사실상 출입을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병원에선 최근 간병인과 사회복지사가 각각 38도가 넘는 열이 나고 호흡기 증상이 있어 코로나19 검체 채취를 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지급 받았던 방호복을 입고 검체 채취를 한 뒤 검사기관에 보냈다. 그는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요양병원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요양병원 코호트'…병원 현실 모르는 소리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예방적 차원에서 요양병원 코호트 격리'를 실시한다고 한 데 대해서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정치 행위"라고 비판했다. 병원을 통째로 격리를 하는 코호트 격리를 위해서는 의료인 숙소와 음압기를 설치한 1인실 등이 필요하다.

요양병원은 '예방적 코호트'를 위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마스크와 보호복은 물론 이동식 음압기조차 지원이 없는 상황에선 공허한 이야기란 것이다.

그는 "보건소에서는 방역 보호복조차 지급 계획이 없다고 한다"며 "임시방편으로 격리공간은 병원에서 마련한다고 해도 이동 음압기 1~2대는 필요한데 최소한의 장비는 지원돼야 가능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문제는 방역 당국도 인지하고 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코호트 격리는 모든 시설에서 사실 하기는 쉽지 않다. 근무자들의 숙식이 원활한, 특히 숙박이 가능한 생활공간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 부회장은 "요양병원 의료진들은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다고 말한다"며 요양병원 분위기를 전했다. 부천에서 가은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기 부회장은 "우리 병원에서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면 마스크를 사서 빨아 쓰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 부회장은 이어 "코로나19로 가장 힘든 것은 결국 환자"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등 물자가 부족하고, 병원이 서로 신뢰를 못하다 보니 환자를 서로 떠넘기는 듯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 부회장은 "최근 한 병원에서 환자를 받았는데 입원한 뒤 확진자의 접촉자라는 통보를 받아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1인 1실로 격리를 하고 검사를 해 음성이 나왔지만, 현재까지 격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 부회장은 "요양병원에서는 현재 환자나 보호자가 신천지교인인 경우, 베트남 등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우에도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며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병원이송이 안돼 피해를 입는 것은 환자"라며 "환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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