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못 하것소" 농민 분노 1kg 2000→720원, 밭 갈아엎는다

진창일 2020. 2.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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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도매가 1kg 2000원에서 올해 720원까지
'따뜻한 겨울' 경기도 등 대파 출하 늘어 폭락
"출하하면 손해" 수천만원 계약금 포기하기도


"3년 전만 해도 1㎏에 2000원이었는데…."

지난 13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한 대파밭을 한 농민이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3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한 대파밭 사이로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바삐 움직였다. 성인 무릎 높이를 훌쩍 넘길 만큼 자라 출하를 코 앞둔 대파를 짓이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 밭의 주인 최정균(70)씨다.

최씨는 "대파 1㎏에 2000원 하던 시절은 이제 추억일 뿐이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대파 도매가격은 1㎏당 720원이었다. 3년 전만 해도 대파 1㎏이면 2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대파값이 좋을 때 밭떼기 거래를 하면 100평에 300만원을 웃돌았다. 지금 시세는 100평에 25~50만원 수준이다.

이날 최씨는 비료값이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트랙터에 올랐다. 최씨가 갈아엎은 대파밭은 농협과 계약재배한 3800평 규모로 정부와 지자체의 농산물 가격 안정화 사업에 따라 산지 폐기되는 대신 100평당 64만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계약금 4000만원 포기하는 유통상인도"

지난 13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한 대파밭을 한 농민이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최씨는 지난해 11월 1만2500평 규모의 또 다른 대파밭을 놓고 한 유통상인과 100평당 110만원에 밭떼기 거래하기로 계약했었다. 계약금만 4000만원이지만, 대파를 수확해 가겠다는 소식이 없다.

최씨는 "못해도 1억원에 달하는 큰 계약인데 유통상인이 계약금을 포기해서라도 출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현 시세가 100평당 50만원 정도인데 출하비용까지 또 손해를 볼 바에 계약금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고 했다. 최씨는 내년부터는 계속 가격이 폭락하는 대파 대신 땅콩 농사를 지어볼 생각이다.


"출하하면 손해" 푸른 대파밭만 덩그러니

지난 13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한 대파밭을 한 농민이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안군 자은면 곳곳에 아직도 수확하지 못한 푸른 대파밭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최씨는 "대파 1㎏ 출하가격이 720원인데 수확할 때 인건비, 도매시장으로 올려보내는 운송비만 해도 1㎏에 700원이다"며 "대파를 출하하면 되레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 수확도 안 하고 그저 값이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마냥 값이 오르기만 기다릴 수도 없다. 대파는 4월께 꽃이 피면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다. 날이 풀리는 봄철까지 기다렸다가 대파밭을 갈아엎으면 땅에 묻힌 대파 잔해물에 벌레가 꼬여 파종할 수 없어 다음 해 농사를 망친다.


이상기온에 대파값 폭락 "날씨가 웬수"

올해 전남 겨울 대파 재배면적은 신안 1535㏊, 진도 1137㏊, 영광 332㏊, 해남 189㏊ 등으로 신안이 가장 넓다. 진도가 전국 대파생산량의 37%, 신안이 30%를 차지할 정도로 전남은 겨울 대파 주산지였지만, 한파 없는 이상기온 때문에 다른 지역까지 대파 공급량이 늘었다.

대파는 땅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수확하면 뿌리가 찢어져 상품성이 없어 겨울에도 따뜻하고 모래땅인 진도나 신안에서만 겨울 대파를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한파가 없어 전남지역보다 서울까지 운송비가 덜 드는 경기도나 강원도 등에서도 대파 공급량이 늘었다.


전남 겨울 대파 폐기도 역대 최대

전남도는 6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총 1만3000t의 겨울 대파를 폐기한다. 최씨처럼 출하를 포기하고 대파를 갈아엎는 밭의 면적만 359㏊다. 최씨는 1차 보상 대상자로 대파 출하를 포기하는 대신 100평당 64만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2차 보상 대상자들은 100평당 50만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보상금도 못 받을 수 있는 농가보다 최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대파 산지폐기 등 채소가격 안정제 사업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 지역농협에 더해 농협과 계약재배한 농가 자부담 금액까지 투입된다. 이 때문에 농협과 계약재배 물량을 우선 보상한다.


신안=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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