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낚시터서 빗물 퍼내고..따뜻한 날씨가 미운 겨울축제 눈물

박진호 2020. 1.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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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용대리 황태덕장 이상기온 황태 널지도 못해
제주에선 유채꽃, 부산에선 홍매화 꽃망울 터트려
겨울비가 내린 지난 7일 오전 강원 화천군 산천어축제장에서 공무원들이 얼음낚시터 행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빗물을 퍼내고 있다. [연합뉴스]


‘소한(小寒)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 춥지 않다가도 소한 때가 되면 추워진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24절기 중 23번째 절기로 소한 때가 보통 1년 중 가장 춥다. 하지만 소한인 지난 6일 이후 한반도의 기온을 보면 지금이 겨울이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상기온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겨울축제 1번지’ 강원도다. 포근한 날씨 탓에 겨울축제가 줄줄이 연기·축소되자 일부 지역은 ‘기원제’까지 열었다.
지난 9일 인제빙어축제가 열릴 예정인 인제군 남면 부평리 빙어호. 축제 관계자들이 제단을 만들고 축제 성공 개최의 마음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이들이 기원제를 하게 된 건 최근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서 얼음이 얼지 않아서다. 지난 7일에만 인제에 51.5㎜의 비가 내렸는데 이는 1971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1월 최고 강수량이다. 기원제에 참석한 김광철 인제 부군수는 “축제 개막이 오는 18일인데 축제장에 얼음이 얼지 않아 걱정이 많다”며 “얼음이 얼고 축제가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절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겨울 축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지난 9일 인제 남면 빙어호 일원에서 기원제 행사가 열렸다.[연합뉴스]


겨울비에 화천 산천어축제 두 번째 연기
세계 4대 겨울축제로 꼽히는 화천 산천어축제는 개막이 또다시 연기됐다. 화천군은 지난 6~8일 내린 비로 화천천의 얼음이 녹자 11일로 예정된 축제 개막을 취소했다. 지난 7일 500여 명의 공무원이 메인 프로그램인 얼음 낚시터를 지키기 위해 축제장에서 흘러 들어가는 빗물을 삽으로 퍼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산천어축제는 당초 4일 개막 예정이었는데 얼음이 얼지 않아 11일로 개막이 연기됐다. 개막일을 잡아 놓고 두 번이나 취소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평창송어축제는 오대천의 얼음이 녹으면서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축제장을 임시 폐장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올겨울 날씨가 따뜻한 것은 북으로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세력이 약하고, 남으로는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 습한 고기압이 한반도에 길게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비가 많이 내리는 것과 관련,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남쪽에서 올라온 습한 기압골에다 기온도 높아 공기중에 수증기가 많은 상태”라며 “강원도 산간지역은 동풍까지 부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더 많은 비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눈의 고장 강원 평창에 최근 이례적으로 겨울비가 내리면서 평창 송어축제장이 물바다로 변했다.[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주민이 빗물에 녹아 버린 황태 덕장을 착잡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스키장마다 슬로프 전면 개장도 늦어져
황태의 고장 인제군 북면 용대리 주민들도 날씨 때문에 근심이 많다. 황태가 얼지 않고 썩을까 봐 덕장에 널지도 못하고 있다. 황태가 썩지 않게 하려면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일주일 이상 지속해야 하고 눈·바람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용대3리 이영용 이장은 “평소 같으면 황태 작업이 모두 끝났을 시기인데 따뜻할 때 널면 썩을 수 있어 작업을 못 하고 있다”며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황태 주요 생산지인 용대3리 230가구 주민 대부분은 덕장이나 황태 가공·판매업을 하고 있다.

스키장들도 답답하기 마찬가지다. 2018평창겨울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평창군 용평면 용평리조트는 28개의 슬로프 중 최상급 슬로프 4개를 열지 못하고 있다. 평년 같았으면 12월 말 전면 개장을 해야 했는데 포근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면서 인공눈을 뿌릴 수 없다고 한다.

리조트 관계자는 “인공눈을 뿌리려면 영하의 기온이 유지돼야 한다”며 “9일부터 기온이 조금 떨어져 눈을 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개장한 슬로프는 50㎝ 두께로 다져놓기 때문에 비가와도 눈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지 못해 스키를 타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이상기온이 계속되면서 남부지방 곳곳에는 때 이른 '봄꽃'들이 개화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광주 서구 치평동 공원에 개화한 동백꽃,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에 핀 홍매화, 제주시 제주대 캠퍼스에 개화한 철쭉, 서귀포 안덕면 산방산 앞에 핀 유채꽃. [연합뉴스]


제주도 23.6도까지 올라 반소매 티만 입기도
반면 포근한 기온이 이어지자 제주와 부산·대구·포항 등 전국 곳곳엔 봄꽃이 활짝 피었다. 특히 제주의 경우 지난 7일 낮 기온이 23.6도까지 오르면서 역대 1월 기록을 갈아치웠다. 1923년 기상 관측 이래 97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이다. 이로 인해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인근에는 유채꽃이 만개했고, 제주대 캠퍼스에는 4~5월에 피는 봄꽃인 철쭉이 피기도 했다.

제주대에서 만난 학생들은 겨울임에도 반소매 티 차림이었다. 김도연(21)씨는 “본래 추워야 할 계절인데 최근 덜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완전히 여름처럼 더워 외투를 입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산도 이날 낮 기온이 18도까지 오르면서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또 대구 수성구 수성못 일대와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 도로변에서는 개나리가 펴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기상청은 장기예보를 통해 “당분간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겠으나 기온의 변화가 크겠고 일시적으로 북쪽 찬 공기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떨어질 때가 있겠다”며 “강수량은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겠다”고 설명했다.

인제·제주·부산·대구=박진호·최충일·이은지·백경서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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