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로그인]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일하러 가는 베트남 사람들

인천=정창교 기자 2019. 12.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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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와 베트남어로 게시된 “외국인 노동자 고용 안내문” (중국 윈난云南성 허커우河口 촬영, 2019년 8월 3일)

2019년 3월 베트남 국영 디지털 방송국의 농업, 농촌, 농민 전문 채널인 VTC 16의 “농민의 삶(Cuộc sống nhà nông)” 프로그램은 중국의 윈난(云南)성과 면하고 있는 베트남 라오 까이(Lào Cai)성의 한 소수민족 마을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엄마 없는 마을(Bản Vắng Mẹ)” 이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마을 내 절반 이상의 성인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 몰래 가서 일하는(lao động chui) 상황이 벌어졌고, 지방 정부가 거주민 파악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부모 없이 노인들과 함께 남겨진 아이들의 상당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어린 동생들과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어 미래가 막막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베트남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나가는 상황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냉전시기에는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 등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노동자 수출”이 이루어졌다. 베트남 경제지인 VnEconomy의 보도에 따르면(2019년 7월 29일) , 2007년에서 2017년 사이 백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해외에서 일했고, 매년 평균 약 93,000명이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으며, 그들의 송금액은 매년 약 3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불법이주조직을 통해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던 베트남인 39명이 컨테이너 안에서 질식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고가 일어나, 일자리와 고임금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베트남을 떠나는 노동이주 전반에 대한 베트남 사회의 관심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TV 프로그램의 내용처럼, 베트남인들에게 “국경 저편” 즉 중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상황은, 정부가 주도하고 관리해온 “노동자 수출”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민감한 문제이다. 1979년에 벌어진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전쟁은 10여 년 이상 양국간의 교류관계를 거의 대부분 단절시키고 깊은 정치적 불신의 골을 키웠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달성한 이후, 1996년에서야 중국과의 “국경경제지구” 시범사업(꽝닝Quảng Ninh성의 몽까이 Móng Cái)에 나섰고, 마침내 2001년 수상의 결정문( Số: 53/2001/QĐ-TTg)을 통해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인프라 투자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관문들에 현대식 시장들이 건설되었고, 국경을 사이에 둔 양국의 주민들이 비자 없이 “통행증”만으로 월경(越境)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베트남 북부 국경지역 7개 성의 농촌 주민들이 국경무역상인이자 노동자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2007년에 이미 중국 서남부 국경지역에 위치한 윈난성의 허커우 야오족 자치현(河口瑶族自治县)에는 베트남 시장이 형성되고, “2,000여 명이 넘는 베트남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일하고” (노동자신문 Người Lao Động, 2007년 1월 7일자) 있었다.

기존의 “베트남 시장”을 대신해 새롭게 문을 연 “중국, 월남성” 시장 (중국 윈난云南성 허커우河口 촬영, 2019년 8월 3일)

2019년 8월초에 찾은 허커우-라오까이 국경지역의 상황은 얼마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중국의 서남부지역에 거주하거나 ‘출근’하며 일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손수레 화물들을 끄는 베트남 노동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도로를 점거하고 늘어서 일부는 새치기 여부를 두고 중국땅에서 베트남어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 한 켠에서는 5년째 국경을 넘어와 노점을 하고 있다는 베트남 여성이 기다림에 지친 이들에게 간식을 팔고 있었다. 중국과 베트남 국경을 가르는 홍강변의 카페에서도, 머물렀던 호텔 근처의 대형 쇼핑몰에서도 베트남인 점원들과 마주치는 것은 너무나도 일반적이었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갈 통관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베트남 화물노동자들. 베트남의 대중국 수출품은 과일 등 대체로 농산품이어서 컨테이너 통관을 하는 반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육로 국경을 통해 수입하는 물품들은 소형 가전제품이나 공구, 부품 등이어서 상대적으로 소규모 화물들이 많은 편이다. (중국 윈난云南성 허커우河口 촬영, 2019년 8월 3일)

그러나 국경을 넘어와 시장과 무역업에 종사하는 베트남인들의 조건은 예전 보다는 힘들어졌다는 것이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베트남이 WTO에 정식 가입하고(2007년) 중국과 육로국경을 최종 확정한 이후(2008년), 양국 사이의 국경에 대한 관리가 보다 철저해지면서 무엇보다 밀수와 무단월경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 이것은 그 동안 “지역지식(local knowledge)”과 사적, 종족적 연망을 활용해 비공식적인 운송, 무역업에 종사하며 국경을 넘나들던 국경지역민들의 생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또한 농한기에 “일시적 노동(temporal labor)”을 행하던 농민들이 더 이상 겸업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다.

중국 남부 농촌지역의 공동화와 노동력 부족 현상은 이러한 베트남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특히 베트남과 수확시기에 차이가 있는 중국의 대표적 사탕수수 산지인 광시 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는, 설 명절을 보내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베트남 북부 산간지역 농민들에게 매력적인 일터로 부상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일당과 더불어,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본격적인 쌀농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이른바 “계절적 노동(seasonal labor)”을 통해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 특히 소수민족의 경우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요구 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중국 농장주들이 수확시기와 저임금 노동을 고려해 10대 등 미성년자들도 고용한다는 것도 베트남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월경을 감행할 동기를 부여했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노동이주를 위해 한 명의 베트남인 노동자가 지는 빚을 탕감하려면 외국에서 평균 11달을 일해야 한다(VnEconomy 2019년 7월 29일)고 할 때, 그러한 빚을 질 여력도 없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적 유예도 어려우며, 현실적으로 베트남의 농가소득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도 어려운 농가의 상황에서는, 중국의 농촌에서 불법 농업노동자로 일하는 것이 그나마 경제적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매년 설 연휴 직후 베트남 북부 국경지역 성의 이민국에 농민들이 대거 몰려와 “국경 통행증 신청 대란”이 벌어지는 상황은 이제 일반적인 사회적 경관이 되어가고 있다.

한편, 중국의 국경지역 지방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베트남 노동자 고용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안정화에 나서고 있다. 2015년부터 중국은 “예비 계획”을 마련해 지정된 공장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것을 허가하고 있다 (Xinhua 2017년 11월 13일). 합법적인 노동이주 기회가 확대되면서, 브로커들이 개입된 불법 노동이주도 보다 활발해 지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과 직접 국경을 면하고 있는, 광시성이나 운남성지역 뿐만이 아니라 광동지역까지 가서 일하는 베트남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중국 광시대학의 2013년 보고서가 진단하고 있듯(Xinhua 2016년 8월 30일), 베트남의 인구구성상 매년 백만에서 백오십만 명이 새로운 노동연령층에 더해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베트남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고 직접적으로 국경을 넘는 일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향하는 베트남인들이 증가하면서, 예상되는 많은 문제들도 터져 나오고 있다. 불법 노동이주자에 대한 임금체불과 열악한 노동-주거 환경, 그리고 여성 및 미성년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학대, 브로커들의 사기 범죄 소식들은 양국간의 민감한 정치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강제 송환, 산업재해를 입고 보상 받지 못하고 되돌아 온 베트남인들, 심지어는 연락이 두절된 사례 등, 베트남과 중국 양국간의 공식적인 노동자 지위와 노동권 보장에 대한 합의가 아직까지는 부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여러 사건들은 양국간의 민감한 남중국해/동해 영유권 분쟁상황과 더불어 민족주의적 반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양국 국경 사이의 주요 취약지역에서 2018년부터 조용히 추진되어 온 철제장벽 건설 사업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일부 베트남인들은 과거 국경전쟁 이후 지뢰를 매설했던 양국의 적대적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임금상승과 노동시장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중국의 상황과 노동인구 과잉과 일자리 부족 상황에 놓여있는 베트남의 상황이 앞으로 어떠한 상호 작용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만 과거처럼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제주의적’ 분업과 노동자 연대에 관한 기대를 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쯤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국경을 넘어 일자리를 찾아 중국을 향하는 베트남인들은 이제 중국의 농촌과 도시의 공업단지 모두를 향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 사회에도 그리고 중국사회에도 큰 도전이자 변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 그리고 베트남이 중국에 제안하고 있는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 계획의 추진이 구체화 된다면 물류뿐만 아니라 이주의 흐름도 가속화 될 것이다. 양국의 미래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노동과 생존권, 그리고 시민권과 인권의 측면에서 양국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심주형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HK+연구교수).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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