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물원투어]식물원 걷다보니 불교·마야 역사여행 한바퀴

오상도 2019. 11. 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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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물원의 온실 '열대관' / 서울식물원 제공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꼭 모자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외투는 벗는 게 좋아요."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던 지난 5일 도심 속 오아시스를 꿈꾸는 서울식물원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식물원 곳곳에 숨겨진 '초록이들'을 안내할 해설사는 일행에게 주의사항부터 들려줬다. 이날 담당자는 15년 경력의 윤난형 해설사(47). 오전ㆍ오후로 나뉘어 하루 2회 40분씩 이어지는 해설 프로그램은 온오프라인으로 미리 예약해야 들을 수 있었다. 20명씩 팀을 이뤄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날 탐방코스는 세계 유일의 접시형 온실인 열대ㆍ지중해관이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옛 김포평야에 들어선 서울식물원은 공원과 식물원이 결합한 서울 최초의 '보타닉(botanic) 공원'이다. 거대한 주제정원과 호수원ㆍ습지원ㆍ열린숲ㆍ식물연구소 등으로 나뉘는데, 주제정원에 자리 잡은 꽃처럼 활짝 핀 축구장 넓이의 25m 높이 건물이 온실이다.

바깥 날씨와 달리 온실 안은 습하고 더웠다. 나무에 걸린 온도계는 섭씨 24.5도, 습도 31%를 가리켰다. 윤 해설사는 "열대관은 평균 25도 안팎, 지중해관은 18도 내외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열대식물이 냉해를 입지 않게 관리하는데 따로 정해진 최고 온도는 없다. 덕분에 한겨울에도 온실에 들어서면 겉옷을 벗는 건 필수다.

그런데 모자는 왜 필요할까. 윤 해설사는 특유의 온실 모양과 연관지었다. "온실은 보통 그릇을 엎어 놓은 돔 형태인데 이곳은 오목한 접시 모양"이라며 "천장을 접시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ETFE라는 첨단소재는 가시광선 투과율이 90%에 달해 얼굴이 금방 시커멓게 탄다"고 말했다. 넓직한 육각형 모양의 ETFE 한 장마다 호스가 연결돼 공기층 압력을 조절하고, 최대 100㎝의 적설량까지 견딜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또 비나 눈이 오면 접시 모양의 천장 가운데로 모이는 물은 저장고에 모아뒀다가 정수를 거쳐 관수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식물원의 온실 '지중해관'을 찾은 학생들이 투어프로그램 도중 해설사의 설명에 귀기울이고 있다. / 서울식물원 제공  
위 따옴표
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식물원 온실투어 해보니
하루 2회 40분씩, 예약 필수…열대·지중해관 500여 종 식물
阿 바오바브나무, 신의 열매 카카오나무 등 역사·문화 배워

수신기를 귀에 꽂자 주변 소음은 사라지고 해설사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본격적인 온실 투어도 시작됐다. 이곳에 사는 500여종 식물 가운데 첫 만남은 벵갈고무나무와 이뤄졌다. 작은 인공폭포를 지나자 영화 속 정글에서 마주했던 거대한 초록잎 나무가 등장했다. 해설사가 나무의 용도를 묻자 일행 중 "(나무의 고무로) 줄과 장갑을 만든다"는 답이 튀어나왔다. 정답이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가 숲으로 보일 만큼 성장한다는 이 나무는 반얀 혹은 인도반얀으로도 불리는데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선 나무 아래 사원을 짓기도 한다. 이 나무에는 기생식물인 박쥐 모양의 박쥐란이 붙어있었다. 바로 옆에선 식용이 어렵다는 초록빛 야생 바나나와 미세먼지를 먹는 '인사템' 수염 틸란드시아도 눈에 띄었다.

윤 해설사는 인도보리수 밑에 이르러 "나무의 이름이 무엇일까요"라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무 아래서 석가모니가 해탈했다는 식물의 세 가지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학명은 피쿠스 릴리지오사, 국명은 인도보리수, 과명은 뽕나무과였다. 꽃이 무화과나무처럼 열매 안에 숨은 이 나무 아래서 작은 깨달음을 얻은 뒤 발길을 재촉했다.

대다수 식물이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돌아 이곳에 온 만큼 온실 곳곳에는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가 숨어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 대추야자나무, 마야문명에 신의 열매를 제공한 카카오나무에선 잠시 역사 얘기가 흘러나왔다. 온실 안 작은 연못에선 잎의 갈라짐과 모양으로 연과 수련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드물게 볼 수 있다는 대형 아마존 빅토리아 수련의 연분홍 꽃도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지중해관에 들어서자 기온이 다소 떨어지며 서늘함을 느꼈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카나리아야자부터 코끼리 발 모양의 덕구리난, 수면 효과 탓에 코알라를 졸게 만든다는 유칼립투스까지 다채로운 식물들이 이어졌다. 수천 년을 산다는 아프리카 원산의 바오바브나무에 이르러선 40분 남짓의 여정도 끝을 예고했다.

윤 해설사는 잠시 눈길을 길섶 정원사 쪽으로 돌렸다. "식물원 곳곳에 숨어 관람객 눈에 띄지 않고 식물을 돌보는 정원사야말로 식물의 보모같은 존재"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식물을 연구ㆍ재배하고 관수ㆍ제초ㆍ전지ㆍ토양 관리까지 도맡는 전문직이지만 국내에선 낮춰보는 분위기가 있어 아쉽다는 얘기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투어도 아쉬움 속에 마무리됐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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