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도심의 밀림 제주곶자왈도립공원

2019. 11.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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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열여섯 번째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서귀포시 대정읍 에듀시티로 178)은 제주영어교육도시와 접한 도심의 곶자왈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깊은 숲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길 양쪽으로 짙은 초록 커튼이 내려진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고 함덕을 걸었다. 함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가에 오래 되어 보이는 단층집이 있었다. 해변에서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데 오랫동안 의원으로 사용되었던 집인 듯했다. 오며 가며 보아도 사람이 사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한동안 조용히 내부공사를 하더니 식당을 개업했다는 안내판이 붙었다. ‘회춘 (回春) 정식’에 대한 세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의원 이름이 ‘회춘의원 (回春醫院)’이었다. 언젠가 한 번 가보겠다고 하던 참이었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한곳에서 자라나며 뿌리가 합쳐지고 크면서 하나가 되는 나무는 곶자왈에서 드물지 않다. 뿌리가 물을 찾아 바위 틈새를 파고들고, 감싸며 자라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뿌리이고 어디서부터 바위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전날 올레 15 킬로미터를 온종일 걷고 보니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적어도 닷새는 장거리 걷기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 쉬엄쉬엄 걸어서 간 식당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옛집의 내부 구조를 그대로 살려 깨끗이 정리만 해서 오히려 정감이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살펴보니 진료실과 주사실 그리고 환자 대기실이 그려진다. 식사의 질도 만족스러웠고 종업원들의 태도도 좋았다. 함덕에 가볼 만한 식당이 하나 더 생겼다.
바위들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나무가 자라면 그 그늘 속엔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바닥을 덮고 덩굴은 햇빛을 찾아 키 큰 나무를 타고 오른다. 덩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나무는 쓰러지고 그 자리에선 다른 나무들이 기회를 얻어 자라 오른다.
창가에 앉아 내다보니 가을 햇볕 아래 가로수가 근사하다. 모두 팽나무라고 생각했었는데 달포 전 아내가 들어와 가로수 나무 아래서 주웠다며 도토리 몇 알을 보여준 뒤로는 다른 나무도 섞여 있겠거니 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 살펴보니 나무 아래에 작은 도토리가 여럿 떨어져 있었다. 젊은 종업원에게 이야기 하고 나무 이름을 물으니 ‘조밤나무’라 한다. 육지에서 부르는 이름은 ‘구실잣밤나무’다. 걸으면서 살펴보니 함덕의 오래된 가로수 대부분이 폭낭이 아니라 조밤나무였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의 산책로는 대부분 나무데크 또는 야자매트로 포장되어 있어 숲에서 길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포장되지 않는 산책로는 가장자리에 돌을 두어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1992년 3월 인제대학교서울백병원에서 간경변을 동반한 말기간암환자에게 뇌사자의 간을 이식한 이후 건강 의학 관련 기자들과의 접촉이 매우 빈번해졌다. 이후 연말까지 몇 번의 뇌사자 간이식이 추가로 성공하면서 건강의학기자들은 지속적으로 장기이식과 뇌사 문제에 관해 의료진들의 의견을 요청해왔다. 이때의 인연이 삼십여 년 이어져 이젠 이들이 참 오래 만난 인생 선배로 여겨진다.
콩짜개덩굴은 제주의 곶자왈에서 고사리류의 식물과 함께 가장 흔하게 보이는 착생식물이다.
당시 나는 그들과의 첫 술자리에서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을 남겨 주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단 한 방울의 술도 이기지 못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때쯤 급우 몇 명과 함께  담임선생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소주잔에 포도주를 한 잔씩 따라 주시고는 사회에 나가서의 술 예절을 말씀하셨다. 그날 나는 그 소주잔으로 받아 마신 한 잔의 포도주에 취해 영등포역 벤치에서 인천행 전철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밤 9시였다. 5시간 가까이 잠들었었던  그 기억 때문에 그들과의 술자리를 마치 벼랑에 서 있는 듯 긴장해 시작했다.
반그늘의 숲에 새우란이 자리를 잡았다. 이르면 4월에 꽃이 피지만 아직 어려서 내년에 다시 왔을 때 꽃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오 실장부터 한 잔 받아.”
“아, 예.”
어느새 말을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맥주를 넘기는데 딸그락 소리와 함께 독한 술이 목으로 넘어왔다.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 양주가 목을 찌르는 순간 화들짝 놀라 잔을 떼었다. 그 이후엔 아무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볼을 톡톡 치며 ‘오 실장 가자’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두 시간이 지났단다.  
이후엔 ‘술 한 잔도 마시면 안 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덕에 30년 동안 병원홍보 부서에서 일하면서 마신 술을 다 합해도 소주병으로 한 병도 되지 않을 것이라 말을 하곤 한다.  
총 연장 7 킬로미터의 숲 속 산책로를 조성하며 숲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야자매트를 사용해 길 표시만 해둔 곳도 있다. 길이 나무와 바위 사이로 꼬불꼬불해 멀리까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궁금함이 커지는 곳이다.
그날 새별오름의 억새를 보러 갔었다. 일렁이는 억새꽃에 잠시 눈길을 사로잡혔다가 이내 그 아래의 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아예 오름을 넘어가 한 바퀴 돌고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지 꽤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새별오름에서 가을의 주인공은 억새꽃이 아니라 진한 보라색의 잔대꽃과 오각형의 자주쓴풀꽃, 그리고 늦은 가을까지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여러 가지 키 작은 꽃들이다.
제주엔 눈길 가는 곳마다 돌담이 있다. 밭에는 밭담, 숲에는 잣성 등이 있다. 숲에서 보는 돌담은 방목한 소나 말이 방목지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별오름을 들러 오후에 걷기로 한 곳이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었다. 곶자왈은 여전히 제주 밖에서 온 사람들에겐 낯선 단어다. 온통 돌과 바위뿐 둘러보아도 흙 한줌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았다. 이끼가 끼고 그 이끼가 습기를 머금자 풀씨에 싹이 텄다. 뿌리가 돌 틈을 메우고 풀이 조금 더 무성해지면서 나무와 덩굴이 들어와 자랐다. 떨어져 쌓인 나뭇잎 더미가 물을 머금으며 숲은 더욱 짙어졌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의 숲길에는 오름이 없어서 단 한 번도 숲 위로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없다. 4층 건물 높이 전망대는 다른 숲의 오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숲속에서 벗어나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의 시야는 오름만은 못하지만 숲 위로 우뚝 솟아 있어 나무와 숲을 내려다보며 관찰할 수 있다.
숯을 굽는 이들이 들어왔었고 경찰과 토벌대에 쫒긴 사람들이 들어왔었다. 연탄과 기름과 가스가 숯을 대신하면서부터는 숯가마도 버려졌다. 잘린 나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 하늘을 가릴 만큼 자라 오르면 송악과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르고 다래넝쿨도 늘어진다. 이렇게 바위와 돌 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와 덩굴과 풀이 빽빽하게 뒤엉킨 숲이 곶자왈이다.
들어갈 이유도, 필요도 없어 수십 년 방치되었던 제주도의 곶자왈에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오름과 곶자왈을 중심으로 관광객을 위한 휴양림을 조성하고 숲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사람들이 이 울창한 숲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낸 곳이 제주시 동부의 절물자연휴양림과 교래자연휴양림, 서귀포시 동부의 붉은오름자연휴양림과 서부권의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다.
전망대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시원함을 만끽하고 가까운 숲을 내려다보면 아직은 소나무가 이 숲의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키 큰 소나무 아래서 활엽수와 덩굴이 맹렬한 기세로 자라며 소나무들을 위협하고 있다.
새별오름에서 제주곶자왈도립공원에 가는 길은 적어도 내게는 험했다. 내비게이션 상으로는 거의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눈앞에는 귤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돌아 나와 마주 오는 차라도 있으면 어떻게 비켜줄 방법이 없는 좁은 길을 나와 가 보니 커다란 공터다. 내비게이션에 내장되어 있는 지도를 최신형으로 바꾸지 않은 탓이었다. 결국 큰길까지 나와서 제주곶자왈도립공원 매표소를 물어 겨우 찾아갔다. 새별오름에선 2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고 제주 국제공항에서 출발한다면 50분 정도 걸린다.
바위틈에 자라던 나무의 뿌리가 충분히 튼튼하지 못하면 한 번의 바람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기회를 엿보던 어린 나무들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햇빛 경쟁을 시작해 새로운 숲을 만들어낸다.
이곳 곶자왈 동남쪽 자락에 제주영어교육도시를 건설하며 농지와 숲에 학교, 아파트, 상가 등이 들어섰거나 들어서고 있다. 곶자왈의 품 안까지 택지가 조성되고 대단지 아파트가 자리 잡았다. 울창한 숲에 들어와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 두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작은 공간이 마련되고 거기에 제주곶자왈도립공원 매표소를 두었다. 지도상으로 보니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 개발 중인 제주영어교육도시의 뒷산처럼 남아 있다. 
숲에서 버섯은 쓰러진 나무의 분해를 촉진한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총 면적이 150만여 제곱미터이고 201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015년 8월 개장했다. 구간별로 테우리길, 오찬이길, 빌레길, 한수기길, 가시낭길 등의 이름이 붙은 산책길이 숲 속에 마련되어 있다. 숲속 산책길은 대부분 나무데크로 조성되어 있거나,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도심의 거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도 불편 없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이고 숲을 걸으며 누릴 수 있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산책로에는 이곳이 교육도시와 접해 있음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팻말들이 있다. 나무에 대한 설명이 있고 가려진 부분을 젖히면 나무 이름이 나타나는 이 형식의 팻말은 나무이름을 기억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남쪽으로 불과 10분 거리에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추사관이 있고 용머리해안도 멀지 않으므로 제주도 서남부 관광 계획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을 포함시킨다면 제주의 곶자왈을 눈으로, 피부로, 그리고 폐 깊숙하게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의 울타리가 워낙 곶자왈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어서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눈앞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울창한 밀림이 펼쳐진다. 마치 바닷가에서 한 걸음 내 디뎠을 뿐인데 수심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를 만난 느낌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곶자왈 내에서는 좀처럼 물을 볼 수 없다. 커다란 암반에 고인 물은 과거 방목하던 말과 소에게 먹일 귀한 수자원이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데크 길에 올라서면 그 순간 하늘은 나무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고 길 양쪽에 크고 작은 나무와 덩굴이 커튼을 치듯 벽을 세우고 있어 그 안으로는 눈길이 닿지 않는다. 훅 풍겨오는 숲의 냄새와 습기 가득한 공기가 느껴지면 모르는 새 가슴 깊이 빨아들이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무와 풀과 덩굴과 속의 길을 가며 머리를 스치며 흐르는 생각에 집중한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의 숲길을 살피며 세 시간쯤 걷는 동안 꽤 여러 곳에서 새우란을 보았지만 대부분 아직은 어려서 꽃을 볼 수는 없을 듯했다. 이 새우란 무리는 꽃이 지고 홀씨를 품은 꼬투리를 달고 있었다. 내년 4월 다시 꽃을 보러 올 이유가 생겼다.
간혹 보이는 표지판은 용암의 모양과 형성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나무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그 모양과 이름을 기억 속에 넣어보려 하나 살아오면서 눈으로 본 적이 없어 낯설 뿐이다. 가끔은 제주에 와서 자주 보면서도 그 이름을 알아 낼 수 없었던 식물 이름을 발견하기도 하니 숲속 걷기가 지루하지 않다.
곶자왈의 지표에 보이는 이러한 공간을 숨골 또는 풍혈이라 부른다. 지표 가까이에 있는 용암동굴의 천장이 무너지거나 무너진 암석의 틈에서 나타난다. 곶자왈의 대지가 숨을 쉬는 통로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산책길과 숲 해설이 적절하게 설계되어 있어 누구라도 안전하고 쉽게 제주도 곶자왈의 진면목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의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관광계획이 있다면 곶자왈 경험에 관한한 당연히 이곳이 최적의 장소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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