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안개 헤치고 황금들판 달리는 미니열차와 고향역"

곽경근 2019. 10. 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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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안개 헤치고 황금들판 달리는 미니열차와 고향역"

 

복잡한 도심을 잠시 벗어나 자연 속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어느 가을 날. 시간마저 멈춘 듯한 무인역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 소재한 청리역이 바로 그곳이다.

-벼베기 한창인 가을 들녘 관통하는 무궁화 열차-

-청리역은 마음 속 고향역 같은 곳-

이른 아침 안개를 헤치고 일부 벼베기를 마친 가을 들판을 기적을 울리며 열차가 달린다.

오전 7시 35분 청리역을 출발한 김천행 무궁화 열차가 건널목이 가까워지자 힘차게 신호를 울린다. 곧이어 희뿌연 안개를 뚫고 ‘은하철도 999’처럼 힘차게 열차가 달려온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순간은 불과 10초 내외이다. 기다렸던 셔터를 마음껏 눌러댔다. 앵글을 바꿔 볼 새도 없이 열차는 순식간에 고가도로 밑으로 사라졌다.

김천에서 영주를 오가는 경북선 무궁화호는 객차가 3량에 불과한 미니 열차다. 안개는 일교차가 큰 날 많이 발생하는데 취재를 간 첫날은 너무 날씨가 맑아 그림이 밋밋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많은 안개가 발생해 그리 흡족한 사진을 얻지 못했다. 여행 기자는 평소 덕을 많이 쌓아야 좋은 그림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맞는 이야기 같다. 맑은 날에는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 아래 노란 들판 사이를 내달리는 열차를 담을 수 있다.

고향열차 메인 사진 포인트는 청리역 인근의 고가도로 위다. 이곳에는 사진가들이 촬영을 위해 여기저기 철망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하지만 사진가들을 위해 훼손된 구멍을 막기는커녕 청리면에서인지 상주시에서인지는 몰라도 고가 아래 입구에 미니 주차장까지 만들어 주었다. 넉넉한 마음가짐과 배려에 감사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카메라와 드론장비를 정비해 인근 청리역으로 향했다.

청리면은 변화의 물결에서 빗겨간 듯 작은 시골 소읍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청리역 역시 승객의 숫자가 점차 줄면서 2014년부터 무인역으로 운영 중이다.

2014년 무인역이 된 청리역과 주변은 아직도 7~80년대 풍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역전 다방의 상호가 반쯤은 헤졌고 면 소재지 답지 않게 사람들의 왕래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시간마저도 청리역에서는 느리게 갈 것 같은 느낌이다. 역 휴게실에서 김천 장을 보고 오는 길인 윤자순(72) 할머니를 만났다.

“25살에 시집와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사는데 효자아들이 매일 집에 들른다.”면서 “청리면은 참 살기 좋은 곳이다. 다른 곳이 태풍 불고 물난리가나도 여기는 끄떡없다. 먹을 게 풍부하니 인심도 좋다. 하지만 장날 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안보여 그게 좀 서운하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 본 후 인근의 들판을 찾았다. 어느 새 구름이 걷히고 오곡이 영글어가는 풍성한 가을 들판이 넓게 드러났다. 감의 도시 상주답게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이삭 넘어 철길 옆에도 감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여기저기서 가을 태풍을 이겨낸 벼를 수확을 하느라 콤바인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들을 쫒느라 가을 내내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던 허수아비도 서서히 자신의 몫을 다해가고 있다.

청리들판을 지나는 경북선 미니열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5번 오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왕복 하루 10번 촬영이 가능하다. 장소를 바꿔가면서 짧은 시간 사진을 찍고 나면 그다음 열차가 올때까지는 여유롭다. 모처럼 잘 여문 알곡만 바짝 다가가 촬영 해보고 메뚜기들의 가을사랑 장면도 담아보고 농부들과 허튼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루가 다르게 산과 들이 가을색으로 갈아입는 요즘이다. 모처럼 시간이 허락된다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을 찾아 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좋지만 시골역 벤치에 앉아 시상에도 빠져보고 가을 들판을 가로지르는 미니열차의 횡보를 여유롭게 지켜보는 보는 것도 추억의 가을 여행의 될 듯하다.

※ 청리역 가는 길과 열차시간

수도권에서 상주 청리역(청리면 원당리 소재)을 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낙동 JC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 달리다 남상주 IC에서 나가면 가깝다.

경북선은 경상북도 김천시에 소재한 김천역부터 경북 영주시의 영주역까지 115km에 이르는 철로를 달리는 노선이다.

다른 노선과 달리 선로의 개량이 최소한만 이루어져 느릿느릿 재래선 만의 여유와 정취를 느끼며 여행하기에 적당하다.

청리역에서 김천 방면으로 가는 열차는 오전 7시35분, 9시25분, 낮 12시35분, 오후 4시4분, 6시4분 출발한다. 영주 방면은 09시40분, 11시58분, 오후 4시19분, 저녁 7시 25분, 8시 35분에 각각 떠난다.

 상주=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드론촬영=왕고섶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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