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클릭]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 학도병 상륙작전 조명한 '한국판 덩케르크'

2019. 9. 30. 11: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쟁/ 곽경택, 김태훈 감독/ 104분/ 12세 관람가/ 9월 25일 개봉
상륙작전의 스펙터클을 일깨운 것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성과다. 바다로 침투해 육상으로 올라가는 정도로 알았던 ‘상륙’이라는 군사작전이 어떤 복마전인지, 그 잔혹한 살풍경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줬으니 말이다. 상륙정이 함선에서 내려지자마자 병사들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고개를 가눌 틈도 없이 생사의 기로가 나뉘고 또 죽어나간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이후 많은 전쟁 영화가 먼 곳에서 내려다보던 조망의 시선을 버리고 군인 곁에 바짝 붙어서 그 공포와 두려움, 혼란을 낱낱이 담아내기 시작했다. ‘핵소 고지’ ‘덩케르크’ 같은 외국 영화들도 그렇지만 한국 전쟁을 그린 전투 장면들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 역시 상륙작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당시 교란용 연막 상륙지로 쓰였던 세 군데 중 하나인 ‘장사리’를 영화적 시공간으로 선택했다. 주인공만 기억되고 엑스트라는 잊혀지는 영화계처럼 역사에도 주연과 조연이 있다. 한국 전쟁사에서 인천이 주연이라면 장사리는 이른바 ‘엑스트라 역사’로 사람들로부터 잊혔다. 영화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을 주목의 대상으로 끌어내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소환했다.

영화 ‘장사리’는 곽경택, 김태훈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서사와 비주얼을 나누어 각자의 장기를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여겨진다. 이야기 측면이 곽경택 감독의 특장점이라면 ‘아이리스2 : 더 무비’ ‘포화속으로’ 등을 연출한 김태훈 감독은 액션과 스펙터클 재현에 있어서 탁월한 스타일리스트다. 거두절미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첫 장면, 상륙 과정과 그 이후의 고지전은 김태훈의 솜씨를 십분 보여준다. 특히 고지 점령의 과정은 탁월하다. 근거리에 밀착한 채 아와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전쟁의 아비규환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전쟁의 공포를 사실적이며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장사리’ 이야기의 또 다른 차별성은 바로 ‘학도병’이다. 장사리 전투에 참여한 이들이 채 2주도 훈련을 받지 않은, 심지어 군번조차 부여받지 못한 미성년 학도병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지원병으로 구성된 학도병들은 훈련도 마치지 못한 채 장사리 전투에 배치가 된다. 총알받이가 될 운명에 처한 학도병들, 전쟁의 경제성에서 미끼에 불과했던 어리고 순수한 청년들에 대한 연민이 영화적 공감의 근원인 셈이다. 그런데 막상 전쟁 영화에 기대하는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은 거의 초반부에 전부 전개돼버린다. 러닝타임 104분 중 거의 대부분이 장사리 상륙 이후 구조선이 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그 공백을 학도병에 자원한 인물들 간의 갈등이나 숨겨진 사연 등이 채우는데, 그 사연이나 에피소드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예측 가능한 뻔한 이야기와 갈등이 묘사된다.

소년의 순수성이나 소년들을 전투의 희생양으로 내몰던 전쟁의 잔혹성은 한편으로는 상투적인 전쟁 서사의 전형이다. 얼떨결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 소년들의 안타까운 죽음 역시 많은 전쟁 영화에서 이미 다뤘던 주제기도 하다. 피를 나눈 형제가 인민군과 국군으로 갈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다거나,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전우애도 마찬가지다. 영화 ‘장사리’는 실제 역사에서 비롯된 만큼 뭉클한 감동이 있기는 하지만 딱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쉽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7호 (2019.10.02~2019.10.0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